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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너머 자유 - 분열의 시대, 합의는 가능한가 ㅣ 김영란 판결 시리즈
김영란 지음 / 창비 / 2024년 3월
평점 :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법조인 중의 한명이 된 김영란씨의 신작 아닌 신작이다.
국내 1호 여성 대법관이면서 세간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붙여 김영란법이라고 부르는 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의금지에관한 법률을 추진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책이 신작이면서 신작이 아니기도 한 이유는
원고가 책 자체를 위해 쓴 것이 아니라 그녀가 가르치는 법학대학원에서 진행한 강의를 토대로 책으로 엮었기에 그렇다. 일반 독자를 위해 정돈된 강의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김영란씨는 정보사회가 되면서 점점 더 세력화하고 있는 여론과 그 여론의 기분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판결 또는 법적안정성 때문에 법의 감옥 안에서만 망치를 두드리느라 시대성을 잃어가는 기술적 판결에 대한 유감을 표하면서 여러가지 사례를 통해 우리 법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첨예한 해석으로 분분하여 사회와 법원종사자의 의견이 양분됐던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는데
그 기저에는 기준을 두고 있는 저작물이 있으니 존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다.
존 롤스는 2002년 타계할때까지 하버드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위의 책과 함께 <정의론>, <공정으로서의 정의>, <만민법> 등의 저서를 남긴 대표적인 미국 철학자이다.
판결의 어려움을 야기하는 극도로 팽팽한 사회적 문제가 있을 때
공공적 합의를 이루어야 하는데 각자가 지니는 포괄적 신념체계가 아니라 공적 이성에 의한 중첩적 합의에 의해야 한다는 존 롤스의 생각이 김영란씨의 뇌리에 닿았고
이를 바탕으로 판례를 살피며 한국의 법과 함께 우리 사회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성찰하는 책이다.
책은 일반 독자도 접근가능한 교양물이기는 하지만
법률가들이 쓰는 언어가 그대로 담겨 있다는 단점을 지닌다.
판결물을 인용한 경우야 어쩔 수 없다쳐도 저자가 쓴 내용까지 전형적인 법률가의 문장으로 되어 있어 만연하기 그지 없는 법률어에 난독을 가진 사람에겐 고욕일 수 있다.
법과 사회가 서로 눈치를 보면서 숨가쁘게 엎치락뒤치락 하지만 망치는 결국 한쪽의 편을 드는 소리를 땅땅 칠 수밖에 없다.
판결이 아직 사회를 따라가지 못해도 시간이 흘러 사건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그렇게 대한민국은 뚜벅뚜벅 걸어간다.
역사 마디를 이루는 미시사의 치열한 현장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