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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그럼에도 우리는
다노 / 동아 / 2017년 9월
평점 :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주위에서는 들은 적이 없는데 드라마랑 소설에서는 굉장히 잦은 빈도로 일어나지요. 기억상실을 소재로 한 소설입니다. 키워드가 굉장히 매력적이라 자주 다뤄지는 거겠죠. 기억상실은 그 소재를 다루는 작가님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아하는 편이라 기대를 하며 읽었습니다. 여러 에피소드를 잘 연결했고, 기본적인 필력은 있는 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종결어미 -다 로 끝나는 짧은 문장이 연이어져서 설마 잘못 골랐나 생각했는데 뒤로 가니까 괜찮더라고요.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읽을 때는 언제나 생각하곤 합니다. 날 잊어버린 연인의 곁에 계속 있을 수 있을 것인가. 기억상실 이후와 이전의 사람이 동일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이 소설은 그 부분을 여자주인공의 아버지 요청으로 남자주인공이 떠나는 것으로 해결합니다. 이 부분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억상실에서 갈등으로 사용하고 있는 두 가지 - 남겨진 쪽에 포커스를 맞춘 신파, 기억상실한 쪽의 혼란 - 을 갈등요소로 쓰지 않고 있어서요. 사실 제가 좀 전형적인 걸 좋아라하는지라.
그렇지만 이런 수많은 매체에서 다룬 갈등요소보다 이 글처럼 두 사람이 다시 어떻게 만나게 되는가에 조금 더 포커스를 맞추는 것도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헤어진 두 사람이 어떻게 기억상실을 극복하고 서로를 다시 발견하고, 얻게 될 것인가, 그들의 매력은 무엇인가를 위주로 읽을 수 있으니까요.
우진이 진서 아버지의 요청으로 떠난 한국에 5년만에 다시 돌아오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아버지의 병원에 찾아가지만 문전박대당하고요. 그런 그에 비해 진서는 매우 잘 살고 있어요. 두 사람의 첫 마주침에서 진서가 우진에게 누구세요 라고 묻고, 그녀와 만난 우진이 집에 돌아가 호재에게 처참함을 토로하는데 참 아팠습니다.
사실 이야기를 깊이 읽어보면 남자주인공은 참 잃은 것이 많은 인물입니다. 직, 간접적으로 여주로 인해서요. 물론 엄밀히 따지면 원죄는 남자주인공의 아버지에게 있지만요.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남자주인공은 자신이 물려받을 수 있었던 지위, 아버지와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를 모두 포기하고 작중에서 아버지는 심지어 우진을 용서하지 않고 사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른 길로 가려고 아버지와 갈등한 점, 아버지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받으려고 노력하며 기억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주인공 진서를 혼자 계속 사랑하는 점이 마음을 많이 두드렸어요.
아버지와의 갈등이 그렇게 많이 부각되거나 우진의 심리상태가 상세하게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걸 너무 부각하면 사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건 좀 힘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었겠어요. 오히려 이렇게 아버지와의 갈등을 덤덤히 넘기는 것으로 그리는 게 갈등을 조금 더 쉽게 해결하고 남자주인공의 어른스러움을 조금 더 부각할 수 있었던 방법이었을 것 같네요. 한편으로는 쉬운 해결이 작품의 텐션을 떨구는 단점이 되기도 했지만요.
사실 이 갈등은 처음의 병원 문전박대 장면이나 진서의 누구세요에서 충분히 잘 나왔습니다. 짧은 장면이었는데도요. 그런데 왜 이렇게 쉽게 해결된 느낌일까 생각해봤는데, 우진의 고난이 뒤쪽에서는 그렇게 많이 표현되지 않았고 감정이 너무 절제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여주랑 사랑도 해야하고, 바람 피우는 남조도 제거해야해서 바쁘기도 했을테고요.
소소한 부딪힘을 거듭하며 진서는 우진의 매력을 느끼고 점점 기억을 되찾습니다. 더불어 진서가 그동안 만나고 있던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도 밝혀져요. 이 남자친구가 매우 찌질한 인물이더라고요. 그대로 결혼까지 갔으면 정말 큰일이었겠구나 싶은 내용으로 우진과 진서의 운명이 조금 더 강조됩니다. 역시 쉬운 해결이 아닌가 싶기는 했는데 두 사람의 타이밍이 정말 잘 맞았고,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게 부각되는 에피소드로 읽으면 무리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똑같은 사람과 다시 한번 사랑에 빠진다는 건 언제나 감동적인 일입니다. 재미있는 일이에요. 기억을 잃기 전에도 잃은 후에도 똑같은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것은.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 이미 누군가에게 매력을 느낄 것이 운명지워져 있을 수도 있겠죠. 취향은 선천적인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렇지만 그런 사람을 두번 만나는 건 힘든 일이잖아요. 취향은 한결 같을 수 있지만 순간은 지나가는 법이니까요. 우진과 진서는 그대로 헤어질 수도 있었겠죠.
각 에피소드의 중요한 부분들마다 옆집 오빠이자 우진의 친구인 호재가 열심히 활약을 하는데 이 조연이 매우 집요정 같고 귀여웠습니다. 진서의 남친이 바람 피우는 걸 심부름센터를 통해 알아내고서도 상처가 될까봐인지 사진을 숨기려던건 잘 이해가 안갔지만 몇장 지나지 않아 또 진서에게 배달도 해주고 하니까요. 여러모로 집요정.
남자주인공의 변함없는 절절한 사랑과 여자주인공의 곧고 밝음이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습니다. 우진이 가족을 잃었지만 결국 다른 가족을 또 얻고 서서히 가족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가는 것과 진서가 기억을 잃었지만 결국 사랑과 기억을 함께 되찾는 것이 교차되며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집니다. 전체적으로 이야기들이 잘 연결된 편이었고 그 사이사이에 주인공들의 성격과 됨됨이가 잘 나와서 마치 제가 호재가 된 양 둘을 응원하며 읽었습니다. 착한 두 사람이 함께 인생을 완성해나가는 하나의 장을 함께 했던 것 같네요.
결국 우진과 진서는 과거와 기억상실이라는 큰 산을 넘고 행복해집니다. 잘 되어서 다행이에요. 마음이 아픈 순간도 있었지만요. 마지막 문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잃을 수도 있었던 사랑을 다시 만나기 위해.
그럼에도 우리는 버텨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