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세트] [BL] 갈애(渴愛) (외전 포함) (총3권/완결)
이한 / W-Beast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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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애가 돌이킬 수 없는 것을 돌이키려고 하는 수와 공의 은밀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갈애는 갈 수 없는 길을 가려는 수와 공의 집착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밀애의 주인공이 조금 더 취향이라 밀애쪽을 조금 더 즐겁게 읽었습니다만 갈애도 굉장히 좋았어요. 갈애는 밀애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므로 밀애를 먼저 읽으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밀애를 읽으며 하일록과 여중희가 붙는 의자씬을 정말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저도 전형적인 취향이라. 모든 이들에게 강하고 수용소를 힘으로 지배하는 하일록이 자신의 한주먹거리도 안될 여중희에게 맞는 장면이었죠. 죽은 듯이 누워서 고스란히 얻어터지다가 졸개들이 여중희를 때리려고 하자 짐승같이 손대지말라고 고함지르는.

 

그래서 이 둘의 사랑은 어떤 의미가 있을지 궁금했어요. 어떤 과정을 거쳐 두 사람 사이의 애와 증이 사랑이 될 것인지.

 

여중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에는 너무나 나약한 인물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 빼고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에는 체력도 기술도 부족하고요. 그가 가진 것은 오직 자유에 대한 갈망. 그러나 그가 갈망하는 것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을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 자신만 헛된 희망을 품고 있을 뿐이죠.

 

하일록은 폭력만을 아는 인물입니다. 여중희의 폭력을 받아주며 자신의 사랑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약탈하는 방법밖에는 모르기에 몸과 더불어 마음까지도 약탈하려고 하지요. 약탈과 구속은 여중희가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기에 그들은 어쩌면 서로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곳은 상록원. 외재적으로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는 장소입니다. 세계는 이미 멸망했고 그들은 섬에 갇혔으니까요. 하일록에 대한 원한과 복수에 얽혀 여중희는 그 사실을 알게 되죠. 남몰래 가지고 있던 타인에 대한 애정도 부서지고 자유에 대한 갈망도 깨지면서 결국 여중희는 무너집니다. 그러나 사실 자유란 장소에 한정된 게 아니죠. 여중희는 내내 섬에 없는 곳을 갈망했지만 결국 핵심은 그 뒤편의 '진실이 너를 자유롭게 한다' 였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진실을 알고, 자신이 만든 지옥에서 벗어나며 진정한 자유를 체화합니다. 스스로가 만든 결핍에서 벗어나 결국 자신의 갈망을 이룬거죠. 그리고 하일록의 허기를 채워줍니다. 훌륭한 마무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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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트] [BL] 밀애(密愛) (총4권/완결)
이한 / W-Beast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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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없이는 리뷰를 쓸 수 없을 것 같지만 최대한 노력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혹시 모르니 스포가 싫으신 분들은 패스를 해주세요.

 

리뷰를 쓰기 전에 굉장히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써야 이 소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요. 음, 첫 시작은 이렇게 하죠. 저는 사실 이 소설에 대해 별 기대가 없었습니다. 이한님의 소설을 거의 모두 다 소장본으로 가지고 있지만요. 이 밀애도 역시 가지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구입했고 좋다는 평가를 보기는 했지만 왠지 손이 안 갔어요. 전작을 읽었을 때 문체가 상당히 특이해서 각을 잡고 읽어야한다는 선입견이 있었거든요. 게다가 피폐한 시대, 배경은 수용소, 인물들은 떼로 나오는 거친 남자들이라니. 제 취향과는 몇억광년쯤 떨어져 있는 소재였습니다. 그래서 진짜 기대하지 않고 이북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소장본을 파본검사만 한 채 OPP 봉투안에 봉인해둔 예전의 저를 존경합니다. 앞으로도 풀지 않고 곱게 모셔둘 생각이에요. 닳거나 떨어뜨리거나 손때가 묻을 수도 있으니까요. 취향과는 정반대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인상적일 수도 있나 싶습니다. 역시 필력과 이야기의 힘이란 모든 걸 넘어섭니다. 가독성도 굉장히 좋네요. 문체 때문에 걱정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비록 며칠을 꼼짝 못할 정도로 안타깝고 우울했지만 정말로 좋았습니다. 꼭 읽어보아야할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알 수 없는 시대,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모를, 벌써 몇년간 물자 공급선이 오지 않는 고립되어 있는 수용소. 진급을 위해서라면 아내도 팔아넘길 냉혈한 매부가 관리하는 곳, 의무실의 침대에서 산은 눈을 뜹니다. 자신이 왜 여기있는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었죠. 그리곤 다짜고짜 곤봉을 휘두르는 간수, 몸상태에 대해 질문하는 의사, 그리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수용소의 책임자라는 소령, 별칭 매부를 만나고 불안함에 떨며 운좋게 자신을 데리러 온 방 동료를 만나 방으로 돌아가요. 방에서 만난 건 특기 덕분에 특권수에 속한다는 동료들이죠.

 

산이 왜 기억을 잃었는지 여긴 어디인지 무슨 상황인지 산의 시점으로 전개되기에 저도 함께 혼란스러웠습니다. 지위를 가지고 있거나 (소령), 힘을 가지고 있는 (하일록) 사람들을 두려워도 하고 불안해도 하면서 수용소의 나날들이 흘러갑니다. 기억상실과 산의 불안감이 잘 표현되어 있어요. 그러던 중에 산은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됩니다. 다른 수용소에서 만났던 남자에 대해서. 그를 만나고, 사랑을 하고, 사랑을, 하고, 사랑을 찾고, 잃어버리고, 오해를 하고, 결국 다시 만나게 되는 순간까지 모두. 그러나.

 

이야기의 전말은 가장 마지막에 주인공과 산이 함께 했던 과거를 통해 짧게 서술됩니다. 행복한 순간도 있었지만 결국 비극은 내재되어 있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중에서도 나오죠. '원래 예민한 성정이었다'. 어머니의 태내에 쌍둥이 여동생이 함께 잉태되었던 것과 함께.

 

사랑했던 남자의 소식을 알기 위해 외부로 편지를 전달하다가 발각된 후 있었던 소령과 산의 면담에서 소령은 '교정기관은 재소자를 극단적인 절망으로 떨어뜨려서는 안되고 항상 희망이라는 출구를 남겨놓아야 한다.' 고 말합니다. 소령은 그러기 위해 공들여 수용소를 휘두르죠. 그런 시간 속에서 산의 희망은 주인공의 보호를 받으며 죽고 또 다시 태어납니다. 손에 쥔 것은 놓아버린채 돌이킬 수 없는 것을 돌이키고 또 돌이키려고. 결국 다시 돌아온, 관계의 가장 처음과 유사한 상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들이 행복하길 바라지만 쉽지 않을 것입니다. 희망을 남겨놓기 위한 아슬아슬한 주인공의 줄타기 속에서 산의 사랑과 희망은 계속 돌이켜지겠죠. 사실 이 이야기는 산의 기억상실이나 과거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결국 슬퍼 보이기도, 웃는 것 같기도 한 미묘한 표정을 보이게 된 사람에 대한, 힘겨운 나날들 속에서 그와 그의 삶을 위해 벽과 철조망을 쌓고 지켜보고 희망을 통제하는 버림받은 주인공의 은밀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죠.

 

그리하여, 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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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BL] 사랑을 이루어 주는 마도구
마사키 히카루 / 리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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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BL 입니다. 비엘 소설이 요새 엄청나게 쏟아져나와 퀄리티가 들쑥날쑥한데 비해서 번역해서 들어오는 소설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를 보장해주는 것 같네요. 아무래도 초기에는 잘 팔릴만한 작품들을 들여오겠죠.

 

이 소설을 처음 보았을 때는 살까 말까를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 삽화가 취향이 아니었거든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사보자 하고 첫장을 펼쳤는데 씬 삽화가!! 마음에 안들어!! 그래서 조금 으음 하면서 읽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기회가 몇번 있어서 일본 비엘 만화를 몇권 읽은 적이 있는데 약간 힐링되는 스토리, 남자답고 능글능글하지만 어떤 부분은 서투른 공과 일본 쪽 용어로 천연계에 해당하는 수가 자주 등장하더라고요. 기본적으로 잘 맞는 조합인데 이걸 비엘 소설로 읽으니 이런 분위기가 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천연계'라는 단어가 일본에서 온 말인데 음... 이것 이상으로 이 소설의 수를 잘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싶네요. 어벙하다기에는 그렇게까지 멍청한 느낌은 아니고 시골에서 갓 올라온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함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고 돈이 없고(!?) 곤경에 빠지고(!) 보기에 부끄러운데 부끄럽지 않고 말이죠. 분명 가끔 부끄러운 일을 하고 있고 애도 한껏 부끄러워하고 있는데 보는 사람은 뭔가 음 힐링되는 느낌이야 하고 볼 수 있는 그런 꼬물꼬물한 느낌. 악의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선의만 촬촬 흘러넘치는 부드러운 후광이 빛나는 수, 바로 유키히사입니다.

 

얘는 사랑을 깨닫는데도 별 거리낌이 없어요. 속세에 물든 나와는 다르네 하며 읽었습니다. 남자인 공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는데도 전혀 이상해 하지 않고요. 이런 쉬운 인정을 보니 굉장히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어요. 고뇌하고 고뇌하고 또 고뇌하는 가운데 자신의 감정을 인정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파란 하늘에 떠가는 구름처럼 환하고 가볍게 사랑을 알 수도 있는 거죠. 울부짖고 뒹굴고 밀고 미워하고 이런 것만 사랑을 보여주는 장치는 아니라는 깨달음을 순간 얻었습니다.

 

공은 일하러 가서 일본에도 없어 이름으로밖에 등장하지 않은 14p/177p (아이패드 가로방향 최고작은 폰트)에서 수가 공을 사랑한다는 걸 저도 알고 수도 알고 수 친구도 알고, 거기에 사랑의 대상이 남자인게 이상하지도 않은 상황 (친구가 식탁에 머리를 박았을 뿐...). 놀라운 일이에요. 그래서 독자는 아무런 부담없이 둘이 어떻게 이어지게 되는가를 흥미진진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구경할 수 있게 됩니다.

 

출장에서 돌아온 타카세는 유키히사에게 연애문제에 관한 소원만을 들어준다는 만년필을 선물합니다. 두 사람은 동거 중이라서 불타는 비엘러인 저는 잠시 망상에 빠져 상상속에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았지만, 사실 둘은 아직 순수한 상태죠. 아르바이트를 하던 술집의 단골손님과 종업원 관계로 소소한 사건을 통해 친해졌다가 유키히사가 살던 집이 개미로 인해 철거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타카세가 자신의 집에 와서 살 것을 제안하며 이루어진 동거일 뿐이에요. 그렇지만 글쎄요, 그게 과연 그냥 친해서일까요?

 

사랑을 자각도 했고 마도구도 받았으니 우리의 유키히사, 부끄럽지만 혹시 모르니 한번 써봐야죠. 열심히 이것저것 적어라 유키히사! 불타는 비엘러의 눈에는 너무 순수한 문장이지만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아니나다를까 우리의 천연 수, 적은 걸 또 들키고야 맙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부끄러운데 넘 좋은 거 아닌가요. 이런 가벼운 전개가 또 가끔 땡길 때가 있거든요.

 

제가 특히 좋았던 부분은 타카세가 마도구 때문에 이루어진 관계라며 유키히사를 피할 때 유키히사가 마도구로 소원을 적기 전부터 타카세를 사랑했다는 걸 명확히 알고 있었던 점입니다. 순수하고 착하지만 자신의 감정에 멍청하지 않은 거죠. 물론 그걸 말로 하진 못하지만... 그렇지만 뭐 말을 제대로하면 소설이 타카세가 돌아오자마자 20p쯤에서 끝났겠죠. 말만 못하는(?) 수와는 달리 오히려 타카세는 속세에 물들어 이 생각도 하고 저 생각도 하느라 관계의 진전에 매우 큰 걸림돌이에요. 이런 쓸모없는 양심. 그런 걸 왜 가지고 있나요. 재미있는 관계예요. 능글능글 어른스러워서 오히려 적극적일 것 같던 타카세가 아니라 유키히사가 진심을 털어 놓으면서 관계가 진전된다는 점이 말이죠.

 

결국 유키히사는 친구의 조언도 받고 도움도 받아서 오해를 풀고 결국 방랑하는 타카세 케이시로의 돌아올 곳이 됩니다. 돌아올 곳. 그 말 그대로 치유하는 느낌이 드는, 솜사탕 같은 비엘이었어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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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그럼에도 우리는
다노 / 동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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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주위에서는 들은 적이 없는데 드라마랑 소설에서는 굉장히 잦은 빈도로 일어나지요. 기억상실을 소재로 한 소설입니다. 키워드가 굉장히 매력적이라 자주 다뤄지는 거겠죠. 기억상실은 그 소재를 다루는 작가님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아하는 편이라 기대를 하며 읽었습니다. 여러 에피소드를 잘 연결했고, 기본적인 필력은 있는 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종결어미 -다 로 끝나는 짧은 문장이 연이어져서 설마 잘못 골랐나 생각했는데 뒤로 가니까 괜찮더라고요.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읽을 때는 언제나 생각하곤 합니다. 날 잊어버린 연인의 곁에 계속 있을 수 있을 것인가. 기억상실 이후와 이전의 사람이 동일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이 소설은 그 부분을 여자주인공의 아버지 요청으로 남자주인공이 떠나는 것으로 해결합니다. 이 부분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억상실에서 갈등으로 사용하고 있는 두 가지 - 남겨진 쪽에 포커스를 맞춘 신파, 기억상실한 쪽의 혼란 - 을 갈등요소로 쓰지 않고 있어서요. 사실 제가 좀 전형적인 걸 좋아라하는지라.

 

그렇지만 이런 수많은 매체에서 다룬 갈등요소보다 이 글처럼 두 사람이 다시 어떻게 만나게 되는가에 조금 더 포커스를 맞추는 것도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헤어진 두 사람이 어떻게 기억상실을 극복하고 서로를 다시 발견하고, 얻게 될 것인가, 그들의 매력은 무엇인가를 위주로 읽을 수 있으니까요.

 

우진이 진서 아버지의 요청으로 떠난 한국에 5년만에 다시 돌아오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아버지의 병원에 찾아가지만 문전박대당하고요. 그런 그에 비해 진서는 매우 잘 살고 있어요. 두 사람의 첫 마주침에서 진서가 우진에게 누구세요 라고 묻고, 그녀와 만난 우진이 집에 돌아가 호재에게 처참함을 토로하는데 참 아팠습니다.

 

사실 이야기를 깊이 읽어보면 남자주인공은 참 잃은 것이 많은 인물입니다. 직, 간접적으로 여주로 인해서요. 물론 엄밀히 따지면 원죄는 남자주인공의 아버지에게 있지만요.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남자주인공은 자신이 물려받을 수 있었던 지위, 아버지와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를 모두 포기하고 작중에서 아버지는 심지어 우진을 용서하지 않고 사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른 길로 가려고 아버지와 갈등한 점, 아버지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받으려고 노력하며 기억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주인공 진서를 혼자 계속 사랑하는 점이 마음을 많이 두드렸어요.

 

아버지와의 갈등이 그렇게 많이 부각되거나 우진의 심리상태가 상세하게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걸 너무 부각하면 사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건 좀 힘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었겠어요. 오히려 이렇게 아버지와의 갈등을 덤덤히 넘기는 것으로 그리는 게 갈등을 조금 더 쉽게 해결하고 남자주인공의 어른스러움을 조금 더 부각할 수 있었던 방법이었을 것 같네요. 한편으로는 쉬운 해결이 작품의 텐션을 떨구는 단점이 되기도 했지만요. 

 

사실 이 갈등은 처음의 병원 문전박대 장면이나 진서의 누구세요에서 충분히 잘 나왔습니다. 짧은 장면이었는데도요. 그런데 왜 이렇게 쉽게 해결된 느낌일까 생각해봤는데, 우진의 고난이 뒤쪽에서는 그렇게 많이 표현되지 않았고 감정이 너무 절제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여주랑 사랑도 해야하고, 바람 피우는 남조도 제거해야해서 바쁘기도 했을테고요.

 

소소한 부딪힘을 거듭하며 진서는 우진의 매력을 느끼고 점점 기억을 되찾습니다. 더불어 진서가 그동안 만나고 있던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도 밝혀져요. 이 남자친구가 매우 찌질한 인물이더라고요. 그대로 결혼까지 갔으면 정말 큰일이었겠구나 싶은 내용으로 우진과 진서의 운명이 조금 더 강조됩니다. 역시 쉬운 해결이 아닌가 싶기는 했는데 두 사람의 타이밍이 정말 잘 맞았고,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게 부각되는 에피소드로 읽으면 무리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똑같은 사람과 다시 한번 사랑에 빠진다는 건 언제나 감동적인 일입니다. 재미있는 일이에요. 기억을 잃기 전에도 잃은 후에도 똑같은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것은.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 이미 누군가에게 매력을 느낄 것이 운명지워져 있을 수도 있겠죠. 취향은 선천적인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렇지만 그런 사람을 두번 만나는 건 힘든 일이잖아요. 취향은 한결 같을 수 있지만 순간은 지나가는 법이니까요. 우진과 진서는 그대로 헤어질 수도 있었겠죠.

 

각 에피소드의 중요한 부분들마다 옆집 오빠이자 우진의 친구인 호재가 열심히 활약을 하는데 이 조연이 매우 집요정 같고 귀여웠습니다. 진서의 남친이 바람 피우는 걸 심부름센터를 통해 알아내고서도 상처가 될까봐인지 사진을 숨기려던건 잘 이해가 안갔지만 몇장 지나지 않아 또 진서에게 배달도 해주고 하니까요. 여러모로 집요정.

 

남자주인공의 변함없는 절절한 사랑과 여자주인공의 곧고 밝음이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습니다. 우진이 가족을 잃었지만 결국 다른 가족을 또 얻고 서서히 가족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가는 것과 진서가 기억을 잃었지만 결국 사랑과 기억을 함께 되찾는 것이 교차되며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집니다. 전체적으로 이야기들이 잘 연결된 편이었고 그 사이사이에 주인공들의 성격과 됨됨이가 잘 나와서 마치 제가 호재가 된 양 둘을 응원하며 읽었습니다. 착한 두 사람이 함께 인생을 완성해나가는 하나의 장을 함께 했던 것 같네요.

 

결국 우진과 진서는 과거와 기억상실이라는 큰 산을 넘고 행복해집니다. 잘 되어서 다행이에요. 마음이 아픈 순간도 있었지만요. 마지막 문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잃을 수도 있었던 사랑을 다시 만나기 위해.

 

그럼에도 우리는 버텨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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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BL] 잉태한 신검 ~푸른 눈의 교접~
코즈키 모미지 / B&J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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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비엘 소설은 굉장히 많이 읽었는데 일본 비엘은 처음 읽어봅니다. 내용자체가 일본 특유의 문화를 소재로 한거라 굉장히 신기해하며 읽었습니다. 역시 정서가 많이 다르긴 하네요. 그래도 공과 수의 매력은 만국공통인지 매력을 보여주는 장면에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세상의 멋짐은 만갈래정도의 길이 있지만 그 길은 하나로 통한다. 멋짐 위아더 월드를 느끼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가까이에 사는 저와 동생은 이상형이 꽤 차이나는데 일본 작가님과 공수 마음에 드는 포인트가 같다니 놀라울 따름이며, 그림작가님... 말잇못.... 사랑합니다 삽화가님.

티엘류를 생각하며 삽화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을 예상했는데 생각외로 가격대비 삽화도 굉장히 많았어요, 게다가 삽화의 공수가 다 마음에 드는 행복한 상황! 사실 그림에 공들이는 티엘에서도 그림 마음에 드는 경우가 잘 없는데 비엘에서 이런 잘생긴 남자들을 보게 되다니 이천팔백원의 행복이네요. 정말. 제가 사실 엄청난 얼빠거든요. 만화도 남자가 못생기면 못 읽겠고, 소설내에서 못생겼다는 묘사가 있으면 덮고 싶고. 여주가 못생겼어도 무조건 남주는 잘생겨야하는 거 아니겠어요? 핸섬이란 기본 옵션이죠. 영앤리치앤빅은 추가 기본옵션이고요. 그런데 그런 잘생긴 애들이 하나도 아니고 비엘이라 공수 둘이나 있어요. 초이득. 더블해피.

집안에 전해져 내려오는 도검을 되찾기 위해 호색한으로 소문난 공과 만나게 되는 수. 공은 새로운 즐거움을 자신에게 안겨준다면 도검을 보여주겠다는 제의를 합니다. 새로운 즐거움이란 무엇이겠어요. 누구나 다 아는거죠. 스!킨!쉽! 그렇기에 이 소설의 장르가 비엘 아니겠어요. 그렇지만 저와 같이 너무 나가시면 안됩니다.

 

사실 저는 제목에 '잉태'랑 '교접'이 들어가길래 헉 푸른 눈의 외국인과 교접해서 아기를 갖는 임신 수로구나!! 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제가 참 너무 많이 나가서 그만... 이성이 아니라 욕망으로 제목을 읽다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네요. 그리고 신검이 주인공인 줄로만.... 알았지 뭐예요. 저 같이 제목 보고 내용 유추했다가 처참하게 틀리신 분 또 계신지 궁금합니다. 하하.

내용은 위의 내용이랑 전혀 다른 내용이에요. 맞은 건 공이 푸른 눈이라는 것 뿐. 원령이 씌인 형의 아이를 구하기 위해 도검이 꼭 필요했던 야스호(수)지만 스킨쉽에 대한 당황스러움으로 공을 멀리하죠. 스킨쉽이라고 해서 뭐 끝까지 간 것도 아닌데 (아쉽!). 고작해야 키스 몇번에 좀 만졌다고 도망가다니 (나빠!) .수가 도망갔으니 공은 찾아오는게 당연했고 두 사람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마음의 벽을 허물고 결국은 동침하게 됩니다. 사실 공이 수에게 그런 제의를 하는 건 좀 갑작스러워서 공의 심리는 잘 이해가 안갔습니다. 공도 저랑 비슷한 타입인가봐요 (얼빠). 그리고 그 접근에 수는 결국 넘어가죠. 잘생긴 남자가 유유자적 자신을 당황시키며 성적 텐션을 높이면서 접근할 때 감정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고조되는 섹슈얼 텐션이 이 글의 특징인 것 같네요. 다른 일본 비엘도 읽어보고 싶습니다. 이런 게 또 있는지 이게 이 작품만의 특징인지가 참 궁금해요. 몸에서 당황하고 자극 받다가 결국은 순정으로 넘어가는 그런 거 말이죠.

결국 형의 아이와 도검을 찾는 원인이 되었던 원령을 퇴치하고 둘이 완전히 해피엔딩입니다. 원령이야기가 주요 줄기이긴 한데 그렇게 스릴호러로는 느껴지지는 않고 두 사람의 애정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져 있네요. 그래도 그 특유의 느낌이 일본색을 잘 전달해주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주인공의 캐릭터면에서는 공의 능글함이 잘 표현되고 있고 수도 잔잔하니 둘이 아주 잘 어울리고요.

처음 읽은 일본 비엘인데 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비엘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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