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옳다.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해냄>
2018.10.10 *****
'당신이 옳다.' 제목이 먼저 내 눈보다 마음에 확 들어왔다. 내가 심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을 무렵에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심폐소생술(CPR)은 내용보다 내용을 정확하게 몸에 익히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위급한 상황에서 사람을 구한다. 이 책은 심리적 CPR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니까 그냥 책이라기보다 행동 지침서다. 이해하고 알아야 행동할 수 있으니 읽는다고 표현하지만 궁극은 '공감'행동 지침서다. 이 책을 읽고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만 안 할 수 있어도 공감의 절반은 시작된 거다. -'읽는 이에게' 저자의 남편의 글
그녀의 '공감 행동지침서'라는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가면 그녀의 남편이 나를 맞이한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이라고 하면서 내 아내에 대해서 아주 세세히 설명해주고 내 아내가 말하는 '공감'이라는 것이 사실은 이런 것이다라면서 조근조근 이야기해주는 것에서 나는 그가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는지 그리고 자신보다 아내를 얼마나 많이 알고 이해하는지를 알았다. 그런 남편의 진심어린 '공감'이 있었기에 저자 또한 공감에 대해 자신감 있게 얘기할 수 있었으리라. 남의 편이라서 남편이라고 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절대적인 나의 편이 되어주는 그런 남편이 있는 저자가 나는 마냥 부러웠다.
#심리학.
저자는 '공감'의 치유를 소박한 집밥같은 치유, 즉 적정심리학이라고 부른다. 위급한 상황에서 전문가를 찾기 않아도 나와 내 옆 사람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소박한 심리학을 적정심리학이라고 지었다. 그것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밑이 뚫린 항아리처럼 허한 우리의 감정과 마음을 치유해주는 '마음지침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랜드 피아노를 혼자서 들어올리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 철옹성 같기도 하고 안개 같기도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정확한 한 지점도 그랜드 피아노처럼 분명히 존재한다. 그걸 알면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그 지점이 바로 한 개별적 존재로서 그 사람의 고유한 '자기'다. 사람은 자기에 공감해 주는 사람에게 반드시 반응한다. 사람은 본래 그런 존재다. 자기 존재에 주목을 받은 이후부터가 제대로 된 내 삶의 시작이다. 거기서부터 건강한 일상이 시작된다. 노인도 그렇고 청년이나 아이들도 그렇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본문 p. 46
처음 직장에 들어가서 심적으로 힘들었을 때 '당신이 옳다'라는 말에 목이 말라 있었다. '너가 그럴 때는 분명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아마 그 자리에서 내가 왜 이렇게 힘든건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내 자신에게 묻고 나를 통찰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가 나의 존재에 대해서 무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는 확실한 신호이며 그것이 내 마음의 과녁에 꽂히면 나는 아마도 확실한 존재감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라는 질문 하나가 예상치 않게 '심리적 심폐소생술(CPR)'을 시작하게 만들기도 한다. -본몬 p.58
내 마음, 당신 마음, 감정에 대해서 말해본 적이 언제였을까? 기억도 나지 않는 걸 보면 그 질문을 평생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저 질문 하나로 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나면 항상 무언가 중요한 것이 빠진 것 같은 허한 기분이 들곤 했는데 서로의 관심사가 달라서 그런거겠지, 아니면 내가 심신이 피곤해서 듣고 있는 시간이 힘들었었나 보다하고 무심히 넘겨버렸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생각하면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뿐인 말잔치였음에 더욱 더 마음은 허했다. 결국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는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존재에 대해 집중하고 관심을 갖는 순간 우리의 존재 자체가 빛나고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갈 수있는 힘을 받기 때문이다.
예전에 'W'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 주변의 사람들이 더이상 주인공과 엮이는 상황이나 사건이 없으면, 즉 존재 자체가 불필요해지면 점점 희미해지거나 지워졌었다. 현재 우리는 점점 자신의 존재를 지워가거나 존재 자체를 드러내기를 어려워하고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우울증이나 다른 마음의 병으로 이전되고 있다.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은 나쁜 것으로 간주하고 우울증으로 간단하게 몰아버린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감정은 내 존재의 핵이다. 무력감과 우울은 지금 내가 나를 잠시 멈추어서 돌아봐야 한다고 알려주는 모스부호인 셈인것이다.
심리적 CPR은 '나'라는 존재 자체에만 집중해야 한다. '나'라는 존재의 핵심이 위치한 곳은 내 감정, 내 느낌이므로 '나'의 안녕에 대한 판단은 거기에 준해서 할 때 정확하다. 심리적 CPR이 필요한 상황인지 아닌지도 감정에 따라야 마땅하다. -본문 p.103
우리는 공감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있다. 타인의 고통에 무슨 말이라도 해야하는 것을 공감으로 인식하여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이라는 말로 서투르게 그리고 조급한 공감을 내놓는다. 하지만 진정한 공감이란 너의 고통에 진심으로 집중하고 있다는 '사람'이 존재하다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된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절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그 '한 사람'이 존재하면 그 사람 또한 존재로써 삶을 의미있게 살아갈 수 있다.
심리적 CPR이란 결국 그의 '나'가 위치한 바로 그곳을 정확하게 찾아서 그위에 장대비처럼 '공감'을 퍼붓는 일이다. 사람을 구하는 힘의 근원은 '정확한 공감'이다. -본문 p.110
#관계갈등
우리가 흔히 '공감'에 집중하느라 놓치고 있는 부분들이 있다. 그것은 언제나 나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나를 소홀히 하거나 억압하지 않아야 진정한 공감이 잘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제대로 알기 위해서 알때까지 조심스럽게 물어야 하고 정확하게 들어야한다. 공감의 과녁은 반드시 '존재 자체'가 되어야만 하고, 칭찬이나 좋은 말을 늘어놓기 보다는 그의 노력과 애씀에 맞춰져야만 한다. 그리고 그 감정에 집중해야만 진정한 공감이 되어 특별한 가르침이 없어도 그것만으로도 갓지은 따끈따끈한 밥이되어 그에게 삶의 힘과 깨달음으로 알아서 삶의 길을 찾아나갈 수 있다. 또한 지금의 상처보다는 현재의 감정을 먼저 매만지고 행동과 생각이 아닌 그의 마음은 언제나 옳다라고 인정하고 말해주는 것이 제대로 된 공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공감을 하면서 저지르는 실수는 공감은 나를 모두 내려놓고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맞추어서 공감을 해주는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자기 보호를 잘하는 사람만이 누군가를 도울 자격이 있다.
어떤 기간동안, 어떤 특정 맥락과 상황 속에서는 내가 참고 견딜 수도 있지만 나는 항상 그래야만 하는 존재,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는 자기에 대한 감각이 살아 있어야 공감자가 될 수 있다. '나와 너 모두에 대한 공감'의 줄임말이 '공감'이다. -본문 p.192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그러하듯 아이를 키우고 보살피면서 자꾸 아이가 '내 꺼아닌 내꺼 같은' 나의 소유인 거 같은 착각을 저지른다. 그래서 너와 나의 존재에 '여기에 넘어오지마'라는 선명한 중앙선을 쭉 긋는 일이 쉽지 않다. 저자는 그것을 자식을 바라보는 게으른 시선이며 이런 시선은 큰 둑의 작은 구멍이고 결국에는 둑 전체를 무너뜨린다고 경고한다.
너와 나의 진실한 소통인 '공감'에도 장애물이 존재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이다. 감정을 이분법적으로 나쁜 감정과 좋은 감정으로 나누는 것, 개별성이 배제된 기능적 역할에 충실한 관계, '우리'로 시작되는 집단사고가 그것들이다. 우리의 감정은 누가 평가하거나 판단하는 대상이 아님은 물론이고 아내는 이래야 하며 가장은 이래야 한다라는 삶은 내 존재가 빠진 삶이다. 그리고 '나'가 아닌 '우리'로 시작하는 삶 또한 '나'라는 존재의 부재를 놓치기 싶다.
공감이란 제대로 된 관계와 소통의 다른 이름이다. 공감이란 한 존재의 개별성에 깊이 눈을 포개는 일, 상대방의 마음, 느낌의 차원까지 들어가 그를 만나고 내 마음을 포개는 일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도 내 마음, 내 느낌을 꺼내서 그와 함께 나누고 소통하는 일이다.
-본문 p.247
얼마전 네 살짜리 딸아이를 혼낼때, 그녀의 잘못에만 주목하여 이래저래해서 너가 잘못했고 그러므로 오빠에게 사과하고 다시는 그러지 말라는 말만 잔치벌이듯 늘어놓았다. 하지만 아이는 울면서 오히려 나에게 더 악을 쓰며 화를 냈고 오빠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그녀도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만 사과하고 싶은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어보였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자기가 더 화를 내며 버티었다. 나는 그녀와의 대치에서 그녀에게 팔을 벌리며 꼭 안아주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녀의 몸과 내 몸이 포개어지고 그녀의 등을 손으로 어루만져주자 그녀의 들쑥날쑥 씩씩거리던 가슴이, 마음이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너도 화가 많이 났구나. 그랬구나'하고 공감을 해주자 화난 소였던 아이의 얼굴이 순한 양으로 금새 돌아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바로 공감의 힘이란 걸 깨달았다. 그녀의 잘못에 주목하여 채근하기 보다는 그녀의 존재와 감정에 주목해주는 것.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한 진실된 '공감'이 아닐까 싶다.
공감은 사람이기에 누군가의 공감을 원하며 사람이기에 할 수있는 가장 최고의 능력이 아닐까싶다.
이 책은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에게는 육아지침서가 될 것이고 직장을 다니며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들에게는 관계갈등 해소법이 될 수 있겠고 이 세상에 막 나온 청년들에게는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마음연고약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단언한다.
* 리뷰어스 클럽 서평단으로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