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1 : 규슈 - 빛은 한반도로부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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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1 규슈

- 빛은 한반도로부터 -

유홍준 / 창비 / 357

 

 

일본정부관광국 통계에 의하면 2014년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수는 275만명이 넘는다. 올해 1월달에만 35만명으로 사상 최고수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일본을 찾는 외국인중 가장 많은 숫자다. 곧 중국인이 추월할테지만.

 

여행블로그를 찾아보면 일본을 찾는 한국관광객은 대부분이 먹을거리에 집중하고 있다. 단체여행은 관광지 중심, 개별여행은 먹을 것 중심이다. 일본이 원체 먹을거리가 풍부하고 디저트도 발달해서 시골에조차 놀랄만한 맛집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입이 매우 짧아 맛집에 관심없는 탓이기도 하지만 여행의 과정이 맛집이 다가 아닐텐데 어쩜 한결같이 맛집만 파고드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거년 일본여행에서는 역사문화를 중심으로 구경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명소구경에도 시간이 모자라 실패한적도 있다. 차가 없이는 불가능한 부분도 있고.

 

그래서 여행사를 하는 친구에게 역사문화 중심의 고품격여행을 시행해보라 권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인솔자에 따라 호오가 갈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고리타분한 이야기는 싫어한다고 한다. 특히나 일본의 경우는 한국의 역사와 일본의 역사에 다 밝아야하고 문화적인 소양도 있어야하며 일본어까지 가능해야 하는데다 유머감각도 필요하니 그런 인솔자나 가이드가 얼마나 되겠는가. 곰곰 생각하니 일본어를 못하고 유머감각도 없지만 나머지는 내가 하면 되겠다 싶어 호기롭게 내가 할테니 모객하라 했더니 일어를 못해서 안된단다.

 

그러나 인솔자가 필요한 단체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관광지나 맛집 못지않게 일본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대한 관심이다. 그런 목적의식이 없다면 애초에 역사문화 관광은 불가능하다. 그게 가능한 사람이 유홍준이다. 해박한 지식과 인문학적 예술적 배경에 입담까지 갖추었으니. 그래서 목적의식을 가진 답사단이 항시 대기하고 있고 국내를 돌아보고선 이제 해외까지 활동반경을 넓혔다. 나도 답사단에 들어가고 싶다.

 

일본은 원체 한국과 깊게 얽히고 설킨 역사를 가진데다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문화 풍토가 있어 한국인이 가장 가고싶어하는 외국이다. 잊을만 하면 되풀이되는 독도망언이나 위안부망언도 있고 근년에 쓰나미로 방사능오염의 걱정도 있었지만 많은 한국인이 일본을 찾는다. 그중에 역사나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방문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생각보다는 많을 것이라 믿는다. 이 주제와 관련된 답사기를 몇권 읽었고 나이가 지긋한 분들 중에는 요란한 관광지보다 풍광이나 유래를 따지는 조용한 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는 1권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매우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가지고있던 신판 전질은 사정상 어디론가 가버리고 구판 1,2,3권만 책꽂이 한켠에 남아있다. 일본편은 벌써 3권이 모두 나왔는데 이제야 1권을 읽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일본속의 한국문화라는 식상한 소재를 유교수도 재탕하는가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일본의 고대사는 한국사와 분리해서는 전개될수 없으니 일본 고대문화에 한국의 흔적이 짙건 옅건 남아있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게다가 임진왜란이후 일본으로 건너간 각종 기술과 문화재 역시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이 지워질수 없다. 그러나 신문이나 도서등 여러 매체에서 이를 다루는 지극히 민족적인 관점은 본말이 전도되어있다. ‘일본의 여러 문화는 한국에서 왔다’. 맞다. 그런데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일본이 한국을 공식적으로 형님으로 받들어야 한다는 말인지. 아니면 일제치하 그들이 저지른 만행을 잊을수 없어 그렇게라도 정신적 분풀이를 하려는 것인지 알수 없다. 독도문제나 위안부문제를 일본의 전부로 인식해서는 안된다. 일본에 극우파가 있지만 한편에는 한류팬도 있고 윤동주를 기리는 모임도 있다. 인터넷에 도배되듯 일본이 그리도 싫다면 일본여행을 못가게 하고 일본관광객도 못오게하고 일본제품을 쓰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게 가능한가? 고대에 일본에 문화를 전해주었다고 우쭐할 필요는 없다. 그럼 지금은 왜 이모양인지 답할수 없으니.

 

다행히도 이 답사기는 일본속의 한국문화를 찾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유교수의 문제의식은 그런 유아적 사고방식은 아니어서 일본에 도자기를 전해준 우리나라의 도자기수준이 한참 뒤떨어져 있음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한다.

답사경로는 북큐슈와 남큐슈로 나뉜다. 한반도 도래인이 가져온 청동기문화인 요시노가리 유적지, 임진왜란 전초기지인 히젠 나고야성, 무령왕과 고려불화가 있는 가라쓰, 조선도공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아리타와 이마리, 나가사키 데지마, 후쿠오카 다자이후 관아터와 텐만궁, 백제식 수성, 도공 박평의와 심당길의 자손이 살아있는 가고시마, 미야자키 남향촌의 백제마을, 가고시마 선암원과 상고집성관 등이다.

 

일본사에서 구석기시대는 연륜이 짧고, 신석기시대에 해당하는게 조몬 문화인데 조몬토기는 시대도 매우 이른시기로 올라갈뿐더러 그 우수함에 놀란다고 한다. BC 300년에 조몬시대가 끝나고 청동기시대인 야요이문화가 시작되는데 이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는 곳이 요시노가리 유적지다. 이 청동기는 한국계로 한반도에서 들어온 것인데 일본인들은 꼭 청동기문화가 한반도를 거쳐 들어왔다고 표현한다. 이를 매우 재미있는 예로 표현했다. ‘아버지가 용돈을 주셨는데 이를 아버지회사의 돈이 아버지를 거쳐 내게 들어왔다고 말하나어쨌든 중국의 청동기문화와 한반도 즉 고조선의 청동기문화는 확연히 다르다.

 

현해탄(玄海灘). 난 이말이 대한해협의 일본식 표현이라 써서는 안되는 용어인줄 알았다. 마치 독도를 죽도로 부르는 것처럼. 그런데 정작 일본에는 현해탄이라는 말이 없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 사이 바다의 지리적 명칭은 대한해협, 세분하여 쓰시마섬을 기준으로 북쪽은 부산해협, 남쪽을 쓰시마해협으로 부른다. 그런데 가라쓰 앞바다에 현계도(玄界島)라는 섬이 있어 이 앞바다를 현계탄 즉 겐카이나다 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가라쓰에서 후쿠오카까지의 바다를 현해국정공원으로 지정하였다고 한다. 현해탄이라는 이름은 관부연락선이 다니면서 붙여진 이름이라니 불과 100여년 밖에 안된 이름이다. 그것도 한국사람이 만든 이름이다. 윤심덕이 자살한 바다고 임화가 노래한 바다다.

 

가라쓰, 아리타의 가마와 자기를 소개하면서는 일본속의 한국문화가 아니라 일본문화로 발전 성공했다는 표현을 하며 본고장 조선의 도자문화는 왜 오늘에 이르지 못했는지 반성하고 있다. 이런 반성은 뒤에 가서 다시 장인을 존중하라는 교훈으로 다시 소개된다. 일본에 잡혀간 수많은 도공들은 일본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1617년 쇄환사로 일본에 다녀온 이경직의 기록(부상록)을 인용하여, 조선인 포로를 데려오려 하였으나 돌아가기 원하는 자가 극히 적었다고 한다. 조선과는 달리 그만큼 대접받고 일을 했다는 뜻이다. 글중에 임난시 납치된 도공들은 모두 지방의 도공이라 광주요의 기능엔 이상이 없었을 거라고 썼는데 그렇지는 않다. 내가본 실록 기사에 의하면 임난이후 왕실에 공급할 자기를 구울 기술자를 찾지못해 이러다 영영 맥이 끊길까 염려된다는 내용이 있다. 잡혀갔든지, 실종되었든지, 도망갔든지 아니면 전란의 와중에 죽었든지다. 요는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도공 뿐아니라 기술자를 천대하는 분위기가 만연했으므로 굳이 힘든 노동을 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고 기술자 내부적으로도 죽기 직전에야 제자에 전수한다는 며느리도 몰라식 비밀주의가 기술의 전수 이전 발전을 가로막았을 뿐이다.

 

그 외에 백제 멸망시에 왜에서 근3만의 군대를 보내 백제를 도왔던 부분을 설명하며 한국 고대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와 왜까지 5국시대로 불러야한다는 주장은 참으로 음미할 가치가 있다. 현재 기준으로 국가와 민족을 따질수 없기 때문이다.

 

항상 감칠맛나는 문장에 박학다식이 넘쳐나는 글이지만 가끔의 실수가 옥의 티로 남는다.

p.33에 한반도에서는 이미 기원전 1000년부터 청동기시대에 들어가......

이 부분은 고교 한국사교과서에 기원전 2000~1500년 만주와 한반도에서 청동기가 시작되었다고 써있다.

p.135 저자는 일본의 천황이라는 이름은 그나라의 고유명사일 뿐이므로 굳이 일왕으로 격하시킬 필요없다고 했는데 도산신사를 설명하는 글에서 응신천황을 오진왕이라고 두 번이나 표현하는 실수를 범했다.

p. 350 상허선생 말씀중 흥어시 입어예 성어악의한자표기를 입어예(立於藝)라 했는데 입어례(立於禮)의 잘못이다. 잘못 알고있을리는 없으니 잠시 혼동했나보다.

 

2편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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