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오래된 상점을 여행하다 - 소세키의 당고집부터 백 년 된 여관까지
여지영.이진숙 지음 / 한빛라이프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도쿄의 오래된 상점을 여행하다
여지영. 이진숙.  글 그림
한빛라이프 / 336

 


오래되었다는 것은 무엇인가.
늘 새것만 추구하는  시대에 오래된 것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오히려 오래되었기에 가치가 있는 것일까. ‘오래될수록 좋은 것은 친구와 포도주 밖에 없다’는 서양속담이 떠오른다.  그러나 단순히 오래되었다는 것만으로 주목받기는 어렵다. 평균적 기대치 이상으로 시간이 흘렀을 때 누군가의 관심을 받을수 있다. 산이나 바위가 오랜 것이라고 우러러보지 않지만 집이 천년쯤 되었다면 단박에 관심을 끌 수 있다. 인위적인 것은 시한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 이책은 그저그런 여행기나 여행안내서가 아니다. 일본의 문화에 대한 것이고 그 문화의 내력을 이웃나라 여행자의 눈으로 본 책이다. 비슷한 환경의 한국과 일본인데 우리는 세계에 유례를 찾을수 없을 정도로 빠른 변화와 속도를 자랑하는 디지털 민족이다. 그런데 우리보다 먼저 변화와 발전을 경험한 일본은 우리에겐 없는 그 어떤 요소가 있다. 그것이 DNA인지 역사적 유산인지는 좀더 따져봐야겠지만 일본에는 분명 개성을 지키려는 오래된 노력들이 존재해왔다. 현재 기네스북에 올라있는 세계 최고령 기업은 오사카의 시텐노건설인데 무려 14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곧 백제의 장인이 시텐노지를 건축하고 그 자리에 남아 사찰보수와 건축을 가업으로 삼았던 것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일본에는 오래된 건축물이나 문화유산도 많이 남아있는데, 외형적인 것은 우리와 달리 외침의 흔적이 없었기 때문이라 이해할수 있지만  수백년된 기업, 가게가 지속되는 것은 분명 한국과 다른 어떤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 만의 밈(meme)일까.


이책은 왜 다른가를 따지는 책이 아니다.
우연찮게 한일문화를 다룬 책을 연속으로 읽게 되었는데, 지난번에 읽은 <당신들의 일본>(유순하)을 보면 일본의 장점과 단점, 한국의 장점과 단점이 신랄하게 비교되어 있다. 멋도 모르면서 일본을 비하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저력을 키우자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현재의 일본을 그대로 그리고 있다. 서두에 독자를 위해 간략한 일본 약사(略史)를 소개해주고 오래된 가업이 어떻게 지금껏 손님을 맞고 있는지 외인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뿐이다. 그러니 이 책은 한편 여행자를 위한 독특한 일본의 풍물 풍습을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분석이 아니라 묘사인 셈이다. 구경을 가든 맛보러 가든 역사를 파헤치려 가든 그건 탐방객의 자유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 소개된 가게들이 현재 그 자리에서 여전히 여전히 손님을 맞고있다는 사실. 평론가가 아니라 관객의 눈으로 본 일본의 무대다.


거창하게 일본의 삼대 경영의 신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그냥 소시민들이다. 우리에게 없는 것이 왜 일본에는 있는지 따지는 것은 매의 눈을 가진 연구자의 입장이고 탐방객은 그저 소개된 가게들의 맛과 멋을 음미하면 된다. 사람사는 세상은 다르면서도 비슷하므로. 그렇게 선입견없이 일본내 오래된 상점들을 구경하면서 여행을 다녀보자. 여지껏 알지 못했거나 알려고 하지 않았던 일본의 속살을 흥미있게 볼수 있다.


인간의 기본욕구인 식욕과 소유욕을 자극하고 해결해주는 그 이상의 어떤 것을 경험할수 있다. 흥망과 과정이 들어있고 의욕과 도전을 볼수 있으니 이 책은 한낱 맛집탐방기 따위가 아닌 충실한 일본문화 소개서다. 원인을 따지기에 앞서 현상과 실제를 보는 정확한 눈의 역할을 제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내가 이 책에 대한 소개글을 보고 흥미를 느꼈던 대목은 300년된 이쑤시개 가게였다. 300년된 이쑤시개 전문점이라니!!! 우리나라에는 300년된 기업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양산업이 된 동네빵집의 폐업홍수에 휩쓸려 홍대앞 리치몬드제과점이 없어졌다고 인터넷을 달군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이쑤시개 전문점 사루야는 1704년 창업하여 지금의 그 자리에서 그대로 8대째 가업을 이으며 성업중이다. 나는 이쑤시개를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우리집은 물론 어느집이나 이쑤시개는 있다. 중국집 광고용 증정품이나, 필요하면 마트에서 파는 대용량 이쑤시개 따위가 가정마다 존재한다. 굳이 이를 쑤시지 않더라도 과일이나 떡을 찍어먹을 때 요긴하게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이쑤시개를 썼을까. 지금은 전량 수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루야의 이쑤시개는 치아용과 화과자용으로 나뉘고 크기와 모양도 다르다. 버드나무 일종인 쿠로모지로 만들고 당연히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정성들여 세공한다. 고급음식점에서 품격있는 마무리용으로 주문하고 선물용으로도 많이 판매된다고 한다. 전통과 장인의 정성이 사양산업도 주식회사로 바꿔 당당히 살아남아 이름을 날리게 한는 것이다. 나무향이 감도는 사루야의 이쑤시개.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것들이 없을까.


문방사우를 파는 유벤도. 이곳도 100년이 넘었다. 그런데 서예경력 10년의 직원이 한국에서도 붓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은 좀 믿기 어렵다. 붓과 먹은 당연히 중국이 먼저고 질도 좋았겠지만 붓과 먹, 종이는 고려 조선의 대중 수출품이었고 대일 통신사행에서도 소문난 특제품이었다.

 

닌교초의 두부상점 후타바는 1924년 개업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두부 전문점이 90년이나 지속되었다는 사실 역시 감탄할만 하다. 그러나 일본두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조금 미흡하다. 두부는 중국에서 한대 회남왕이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실제 중국에서 두부가 대중화된 것은 당나라때로 보고 있다. 두부는 당시의 백제와 신라에 들어왔을 것이고 삼국시대 활발한 교류를 가졌던 일본에도 자연히 전파되었을 것이다. 1183년 나라의 신사에 두부를 받은 기록이 있다는 것은 이를 짐작케한다. 그러나 일본에 두부가 대중화된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임진왜란 이후다. 도자기, 차, 성리학 등과 함께 조선의 두부가 일본에 전해져 오늘의 일본두부를 있게한 것이다. 당시 조선의 두부는 본고장 명나라의 황제조차 감탄할 정도로 맛과 풍미가 뛰어난 대중음식이었고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포로중 두부제조법을 아는 백성들의 손에 의해 일본전역에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도자기든 두부든 인쇄술이든, 원조가 틀림없는 한국이라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조선은 기술자를 푸대접하는 사회였고 일본은 반대로 기술을 존중해주는 나라였다. 도자기나 두부가 일본에 전해져 한층 발전하고 정교해졌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는 단순히 청출어람이라는 용어 정도로 덮을수 없는 그 이상의 열정과 노력이 있어야 가능한 결과다. 받아들이고 배워서 발전시키고 일본화시키는 일본의 저력이다. 조선과 달리 기술자들은 일본에서 높은 대우를 받았다.


책의 본질에서 벗어난 서술이 길었는데 자기가 맡은 일을 완벽하게 하려는 완벽주의가 오늘의 일본을 만든 요인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 여러 과정과 결과가 수십 수백년 지속하는 가게를 낳게한 것이고 오늘날에는 하나의 문화상품 역할도 하고있는 것이다.

 

책은 도쿄를 15개 권역으로 나누어 각각 해당 거리의 특징을 약술하고 그 거리의 명물 상점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각 장의 말미에는 지역의 소문난 상점들을 간략하게 첨부해두었다. 100년 수십년된 점포가 수두룩하다. 또 여행객의 편의를 위해 상점의 위치와 전화, 가는 방법까지 상세하게 표시하기도 했다.


각 장의 배경이나 업종에 대한 설명에서는 저자들의 내공과 필력이 대단함을 느낄수 있다. 역사서나 인문서를 써도 충분히 통할수 있는 실력이다. 다른 분야의 좋은 내용을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느낀점은 이런 가게의 모습이 단지 도쿄만의 모습이라는 점이다. 일본 전역으로 넓히면 더 오래된 전통의 가업을 잇는 모습을 알마든지 볼수 있을 것이다. 부러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가질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인기직종이 아니라서 더 이상 가업을 승계하겠다는 젊은이가 없는 상점도 있다는 사실은 우리와도 비슷한 경우라 인지상정이로구나 생각케 한다.  흡족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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