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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책이었다.
왜 그랬을까?
책과 나에게도 어떤 인력이 존재한다면 아마 이 책이 그동안 나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끌어당기고 있었나보다.
사실 좀 여성적인 글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선택의 장애가 되기는 했다.
"여성적인 글은 지나치게 감상적이다." 이런 잘못된 인식에 기초된 그 때의 나였기에
그런 생각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글로 표현된 그 어떤 것에 대해 미리 갖는 마음을
갖지 않기로 했고, 그래서 읽었던 "더 리더"... 한마디로 최근 한달동안 8권정도의 책을 읽었는데
이 처럼 읽고 난 뒤가 개운한 책은 없었다.
뒷끝이 깨끗한 아주 쓴 에스프레소의 맛이랄까, 책을 맛으로 표현할 수야 없겠지만 어쨌든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장을 덮은 뒤 처음엔 눈물이 나중엔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만약 내가 글을 쓴다면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책장을 덮으면 미소가 떠나지 않는 그런....
'더 리더'
과거를 덮어 버릴 수 없는 전후 세대들의 갈등이니 뭐니 하는 철학적인 문제도 내포된 훌륭한
책이다. 뭐 이런 생각은 전혀 할 수 없었다. 왜냐면 난 그런 것들이 책을 읽으면 바로 들어오는
그런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았거든.
단지 이 소설은 '책 읽어 주는 행위' , 그 행위의 로맨틱함이 너무 잘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당장 따라하고 싶게 만드는 그런 사랑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읽어 나갈수록 내 아픈 기억들도 함께 떠올랐고, 중간 중간 책을 덮고 그 기억들과 마주
해야만 했다. 한나의 모습중 기억나는 모습들을 단편적으로 떠올리는 장면에서는 나도 그 장면들
이 단편적으로 떠올라 다시 호흡해야 했다.
사람들은 시간 속을 연속적으로 살아가지만 기억들은 불연속적으로 단편만 떠오른다.
내 머리 속에 떠오른 단편의 기억들, 그 추억들.
책을 읽으며 아픈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올랐고, 그 장면에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주하지 않으려고 했던 기억들이, 억눌러서 잊은 척하려 했던 기억들이 그동안 눌렀던 힘의
반작용으로 힘차게 뛰어 올랐다. 그래서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함께 했던 그 기억들이 어느새 친숙하게 여겨졌고
난 웃었다. 미소 지었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아픈 기억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그 기억들과 화해하게 해준다.
이젠 그 기억들조차 나의 모습으로 포함할 수 있을 것 같다.
수많은 아픈 기억들과 마주하지 못해 힘들어 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그 기억들과 화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난 이 책을 일년의 한 번씩은 읽으려 한다. 이젠 더 이상
아픈 기억은 없으니까. 떠올려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맛볼수 있는 그 위대한 역설의 참맛을 느낄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