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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추악한 배신자들 - 조선을 혼란으로 몰아넣은 13인
임채영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한 사람에 의해 나라가 좌지우지되는 왕조국가 조선. 왕실의 적통성이 떨어질 때 신하들의 혁명으로 새로운 왕이 들어앉고, 약한 왕을 허수아비로 내세워 마음껏 주무르고, 왕비도 수렴첨정이란 이름으로 쥐락펴락하던 시대.
늘 역사극에서 조명받는 태조, 세종, 정조. 안 좋은 쪽으로 주목받는 연산군, 광해군. 보통 이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역성혁명으로 고려를 뒤엎고 세워진 조선이라는 나라는 붕당정치의 끊임없는 정치의 소용돌이에서 죽고 죽이는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동시대 일본과 중국도 형편은 다르지 않았다. 나라가 이합집산하고, 막부별로 세력 다툼을 했다. 그러나, 이씨조선이라는 기치와 폐쇄적인 자세로 인해, 동북아에서 국력이 비슷하게 출발하여 뒤떨어지게 막을 내리는 역사로 줄달음쳤다.
이 책을 통해 소개된,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개인의 이익을 중요시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누구나 본능적으로 이렇게 한다. 충신이라 하여 왕 한 명에게 충심을 다한다고 하나, 왕이 무지하여 소인배에게 속는 수준이면 충심은 덧없다. 중앙집권적으로 보이지만, 굉장히 허약했던 왕권과 개개인의 공정한 경쟁이 허락되지 않던, 인맥위주의 정치. 문호를 개방하는 데에 치명적으로 늦어버린 시대착오. 여기에 영리하면서도 개인의 이익을 국익으로 포장할 줄 알던 개인들의 치밀한 싸움이 야합했다.
서로를 견제할 수 있는 환경만 되었던들, 이들의 이름이 여기에 추악한 배신자로 기록되지는 않았을 터. 시스템의 부재라는 데 통감한다. 물론 한 편의 이야기만 듣고서 이들 모두를 배신자로 낙인 찍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정조의 입장에서 보면 베겟머리 송사로 사도세자를 제거한 정순왕후가 그리도 미운 사람이지만, 그녀도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납작 엎드려 때를 기다렸던, 여인네였다.
전국시대의 일본을 보면 사람 알기를 마소보다 못하게 알고, 인질삼아 결혼하고, 협정이 깨질 때 이혼하며 백성은 성에 속한 하나의 소유물로 안다. 도덕이 상실된 모습도 보인다. 정치의 어두운면, 서로 나뉘어 파당을 짓고 다투는 것은 세계 공통이다. 다만, 누군가 수습할 만한 강한 통치와 함께, 다른 인재를 등용할 너른 가슴을 가진다면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이 차이다.
책을 읽으며 왜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까 의문이 많이 들었다. 그러면서, 비겁하게 ‘어차피 망할 나라, 일본 손에 넘어갈 나라이니 피해를 최소화하자’고 말했던 이완용의 말이, 정면승부를 피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뼈저리게 깨닫게 해줬다. 최후 한 사람이 남더라도 원칙은 원칙이며, 외교상에도 요지가 있다. 외교권과 군사권은 넘겨주어서는 국력의 회복이 어려워진다. 차라리 돈을 주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학자로서, 정치가로서 앞서간 안목없이, 망망대해의 낙엽처럼 외국의 침범앞에 조무라기가 되어버린 조상들의 이야기에 허망해진다. 직지심경, 한글, 해시계의 나라가 정치의 실수로 이렇게 역사 속에 뒤쳐진다면 앞서간 조상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