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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크랩의 파파 기도 - 전에는 해보지 않은 새로운 기도
래리 크랩 지음, 김성녀 옮김 / IVP / 2007년 3월
평점 :
대학시절, 래리 크랩의 결혼건축가란 책을 읽었었다. 아직까지도 싱글인 걸 보면 그의 책이 내게 미친 ‘결혼’에 대한 영향력은 별로였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농담이다. 뭔가 시니컬하면서도 절제된 감정표현, 지적인 것이 특징이었던 같기도 하고. 이 저자에 대한 나의 느낌은 그랬다. 오버하지 않는 사람. 이번에 파파기도를 읽게 된 무렵, 나는 무척 힘든 상황이었다. 기도도 싫었고, 오랜 만에 제대로 슬럼프였다. 교회도 싫고 예배도 싫었다. 사람 때문이었다. 오버하는 것이 싫고, 신앙이라면서, 응답이라면서 자기 기준으로 사람을 난도질하는 행위 따위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으니까.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조심스레 파파기도에 응모를 했고, 기적은 일어났다. 무슨 대단한 일이 벌어지거나 한 건 아니지만 나로서는 기적이었다. 마음이 변했으니까. 마음이 즐거워졌고, 기도하고 싶어졌다.
저자가 말하는 파파기도를 난 오해했다. 제목에서 ‘아바 아버지’처럼 ‘파파’에게 어리광을 부려도 된다는 말로 선입관을 잔뜩 가지고 연 책은 그런 내용은 아니었다. 솔직해질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하나님 앞에 꾸밈없이 기도하라고 권유하고 있었다.
응답이란 걸 받기 위해 자신을 허다하게 속인다. 고마운 척 하고, 감사하다는 치장으로 시작하며 온갖 요구를 늘어놓다가 기도는 끝난다. 설사 원망스러운 것, 기대하는 바가 있어도 교묘하게 속인다. 우리 아버지에게도 통하지 않는 속임수다. 사람은 눈빛으로도 진실을 전달한다. 긴 말이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릴 만드신 분한테 그런 간교한 꾀가 통한다고?
기도에 대해 완전히 오해하고 산 30년이다. 물론 교회에서 배우기도 했다. 하나님 자체를 즐거워하라. 그 관계를 추구하고 그분을 사랑하라. 하는 저자의 주장을 말이다. 이 부분이 책에서 언급한, 그분과 함께 있다보면 그분이 좋아하시는 일이 무언지 알게 되고, 그걸 구하는 것이 ‘이제부터는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시행하리니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라고는 배웠어도 "why"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윽박질렀다. 한쪽에서는 마냥 '구하면 다 주시는 분인데 왜 안 구하냐'고 야단이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하나님이 도깨비방망이냐 뭘 그렇게 구해쌓냐. 관계만 잘 맺으면 어차피 다 주신다.'하고 야단이었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바른 관계를 잡아주지 않았다. 애석하다.
출제자의 의도를 알고 푸는 문제는 쉽다. 하나님이 뭘 원하시는 지 알고, 그걸 구하는데 안 주실 리가 없다. 문제는 그분이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이 얼마나 자주 다르냐에 있다. 우린 사탕을 원하고 아버지는 몸에 좋은 섬유소를 원한다면? 있는 힘껏 몸에 안좋은 대로 먹고 성인병이 걸리도록 살면서 병은 안 걸리도록 해달라고 간청한다면? 전형적인 응답되지 않는 기도다. 이럴 때도 우린 하나님이 잘 응답해주시는 것 같을 때 “하나님이 제대로 그분의 일을 하고 계시는군”이라고 생각한단다. 맙소사! 저자는 너무 예리하다.
이 책을 읽으며 내 생각 속에 수술 메스가 들어왔다. 그리고 무거운 짐을 벗었다. 난 가장하는 기도를 싫어했다. 그러면서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괴로와 했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기도책을 읽어도 답이 없었다. 근원을 건드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냉철한 사람이라 무척 신뢰가 간다. 오버하는 사람이 쓴 글이라면 거부감이 들어서 읽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셨다. 오버하는 기도에 응답하는 분이 아니었다. 무조건 미주알 고주알 달라고 하면 주는 우리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셨다.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이미 모든 걸 다 아시는데 왜 내가 굳이 시간을 들여서 ‘언니가 사업이 어려운데요 하나님 도와주세요’하고 청해야 하는지. 물론 간청하는 기도도 필요하다고 나온다. 그런데,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하나님께 가지고 가서 하나님 앞에 내 정직하게 선다. 그리고 그분에 대해 솔직한 마음을 가진다. 정직하게 모든 것을 말 씀드린다. 내가 생각할 때는 언니의 문제가 이러하다고. 당신의 생각은 어떠시냐고. 바로 이 부분이 빠졌다. 하나님은 언니를 다루시기 위해 어려움을 보내셨을 수도 있고, 더 좋은 걸 위해 잠깐 겪는 어려움인지도 모르는데 당장 그 장애물만 치우라고 하나님한테 고함치는 꼴이었다. 하나님의 의견이 온다. 아하..그러셨군요.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하기 바라셔요? 이렇게 기도하고, 언니한텐 이렇게 말해주렴. 아 그러면 될까요?
파파기도는 관계를 말한다. 기도는 one way 가 아니라 two way였다. 하나님도 말씀하실 시간을 드려야 한다. 흔히 죽 늘어놓고는 응답하실 시간 잠깐 내드리고 기다린다. 아니다. 죽 늘어놓기 전에 시간을 드려야 한다. 문제를 가지고 가서 내놓고 그분의 의견을 받은 후에 간청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어떤 일도 아니다. 그분과 함께 탁구를 치고 있는 그 시간이다. 주거니. 받거니. 삶은 더 이상 힘겨운 전쟁터도 아니고 나홀로 외로운 싸움은 더더욱 아니다. 나와 함께 하는 그분이 계시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