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는 개인전만 부지런히 열어도 화가 대접을 받는다. 말하자면 미술계열의 예술은 신고제인 셈이다. 그렇다고 공모전에 입선 경력이 없어도 될 정도로 완전한 신고제는 아니다. 연고나 출신이 분명해야 하는 걸로 봐서는 어쩌면 허가제에 더 가깝다고 할 수도 있다. 홍대나 서울대가 아니면 해외라고 나갔다 와야 한다.

   우리나라 문학은 완전한 허가제다. 소위 말하는 등단을 해야 한다. 단행본 작가가 간혹 있긴 하지만 그것도 그 단행본이 상이라도 타야 작가대접을 받는다. 정식으로 등단하지 않은 작가의 글은 그 글이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허가 낸 매체에는 결코 실어주지 않는다. 그 글로 그 매체에 등단을 해야 하는 것이다. 기득권이라는 게 문학계처럼 강력한 곳도 없다.

   작가 스스로 그러한 강박 속에서 글을 쓴다. 등단 없이 좋은 글을 발표하고서도 나중에라도 죽자살자 등단을 마친다. 콤플렉스와 자존이 묘하게 얽혀 스스로를 옭아 맨다. 그만큼 자존이 덜 하다는 얘기도 된다.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자존도 선다. 

   음악은 어떤가. 음악은 그 다양한 장르만큼이나 천차만별이다. 신고의 천차만별이 아니라 허가의 천차만별이다. 인디밴드나 거리악사처럼 신고제라 하더라도 신고가 그대로 허가로 굳어 아예 장르가 다른 뮤지션으로 허가를 받는 게 되는 것이다.

   음악은 미술이나 문학과는 달리 인기가 허가를 좌우한다. 말하자면 음악으로 프로가 돼야 한다. 프로가 안 되면 아마추어고 프로가 되어야 비로써 뮤지션이라는 이름의 허가를 얻는다. 클레식처럼 완전한 심사에 의한 허가제도 있지만 말이다. 작곡과 연주(목소리)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개별적 지적소유권이 분명치 않아 허가가 대체로 복합적이고 불분명하다. 

   예술의 허가제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추어리즘의 자존이 잠자기 때문은 아닐까. 인정을 받아야 자존이 서는 것은 온전한 자존이랄 수 없다. 작가 자신의 문제만일 수 없다. 예술을 접하는 사람들의 보편적 아마주어리즘의 연약함이 더 문제다.       

   최근 교육의 평준화와 사이버문화 덕분에 아마추어리즘 환경이 갈수록 자존을 넓혀 가고는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프로의 자존을 묵살하는 수준에 이르지는 못하고 프로페셔널의 팬클럽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아마추어리즘의 강화가 프로페셔널의 형식적 권력을 완화한다면 예술의 형식 자체를 완화하는 장르의 파괴나 크로스오버 종합예술을 시도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종합예술이라 불리는 영화에서 우리는 허가제의 통합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감독과 배우와 작가와 자본의 집단체제가 허가를 인기에 집중시킨다. 인기가 곧 허가가 되고 있다. 온갖 영화제가 허가제의 표본이 되고는 있지만 신고 만으로도 얼마든지 인기의 심판을 받을 수가 있다. 그러나 대형자본이 이를 한사코 막아서고 있다.

   예술이 자본의 시녀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본 그 자체가 허가의 관건을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굴벽화도 사냥감의 크기나 마리 수에 의해 평가되었다. 사냥도 이미 개인의 일이 아니라 집단의 일이 되었으며 예술 또한 개인의 기호를 나타내는 게 아니라 집단의 홍익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사냥조차도 허가를 받아야 했으니 예술은 말할 것도 없다.

   신고를 하면 허가가 떨어져야 하고 허가가 떨어지려면 예술 외적인 것이 작용하게 되어 있었다. 이러한 예술 외적인 것의 병폐를 없애기 위해 엄격한 심사라는 또 다른 허가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그것이 이른바 등단이나 각종 콩쿠르의 관문이다. 그 관문은 관문으로 그치지 않고 아마추어에서 프로를 가려 내는 높은 장벽이 되어 급기야 인간관계마저 스타와 팬의 관계로 영원히 고착시킨다.

   스타와 팬의 굴절된 관계에 사람들은 자존을 쉽게 접어버린다. 스타도 바로 얼마 전에는 팬이었으며 자신과 같은 팬이 바로 얼마 후에는 스타가 된다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린다. 객관적 판단이나 기준이란 게 그렇게 무 자르듯 확연한 것이 아니라는 소중한 진실을 너무나 쉽게 내팽개쳐 버린다.

   허가 따위는 필요없다.

   스타 따위는 밤하늘로 꺼져라.

   이런 되지도 않은 자만은 기대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마추어리즘의 자존을 꾸준히 넓혀 나가는 비허가 집단의 은하수가 도도히 흐르는 맑고 투명한 하늘을 기대해 본다.

   나로 하여금 이런 글을 쓰게 한 계기가 있다. 서평을 쓰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서평자들이 소위 그 책을 쓴 작가와 자신을 너무 차별화 하는 것을 보고서다. 심리적으로 그렇게 접고 들어가서는 좋은 서평이 나올 리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네이브 지식IN 오픈백과에서 글을 선별하는 기준이 너무 경직되어 있는 걸 보고서였다. 문학 디렉토리에선 숫제 에디터들의 선별권 자체가 없는 듯이 보였다. 되지도 않은 글도 기성작가의 것은 등록되는데 기성작가의 것이 아닌 문학작품은 아예 등록 자체가 불가능한 듯 보였다. 그리고 시나 소설 수필 논문 등의 장르가 분명한 것이 아닌데도 장르를 지나치게 구분해 차별심사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전체를 보는 넓은 시야가 좁은 허가제를 신고제로 넓혀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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