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평전 - 개정판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전태일이 기성복 일을 하며 휴머니즘의 억압에 몸을 던질 때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밎춤복 일을 하며 스피시지즘의 억압에 영혼을 던져 도대체 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탐닉 속으로 빠져든다.

   전태일평전에 보면 전태일의 사랑이야기가 잠깐 나오는데 그를 모티브로 전태일을 오빠라고 부르며 따르던 여인을 후일 사랑하게 됨으로서 일과 사랑을 통해 사용자와 노동자, 진보와 보수의 관계를 규명해 본다.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많은 부분 전태일평전을 인용하였다. 인용 부분을 제외한 전태일이 나오는 주요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나는 왠지 오빠가 보이지 않는 것을 알고 다시 건물로 뛰어 올라갔다. 3층 어둠침침한 곳에서 갑자기 오빠가 나타나 나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아당겼다. 그리고 나의 입술에 진한 기름 냄새가 나는 키스를 퍼부었다.

오빠는 나를 밀쳐내고 정신없이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한동안 멍해 있던 나는 순간 뜨거운 그 무엇이 가슴을 쳤다.

오빠 안 왜!

나는 기겁을 하고 오빠한테로 달려갔다. 

오빠는 보이지 않고 커다란 불덩어리 하나가 활활 타오르며 사람들 속으로 달려 들어가는 게 보였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

불덩어리 속에서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불 짐승은 그 자리에 쓰러졌다. 나는 웃옷을 벗어 정신없이 불을 끄기 시작했다. 이윽고 불이 꺼지자 시커먼 숯덩이가 드러났다.

오빠, 오빠…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덜덜 떨면서 오빠를 내려다보며 울었다. 기자들이 뛰어와서 수첩을 꺼내들고 오빠에게 무언가를 물었다. (중략)



그제야 오빠는 잠잠해지며 깊은 안식에 들었다. 그러나 오빠는 바로 옆에서 줄곧 지켜보고 있는 나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옆에 있는 줄 몰라서 일까? 그렇다하더라도 어쩌면 그렇게 한번 찾지 조차 않는지? 나는 아연한 먼 나라로 뚝 떨어져 혼절한 느낌이었다. 너무나 슬퍼 아무 소리도 못하고 그저 지켜만 보고 있던 나는 이 뜻밖에 찾아든 충격 때문에 무슨 말을 건네기는커녕 숨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었다. (중략)

배가 고프다…


    그리고는 힘없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오빠는 끝내 나를 찾지 않았다.

나는 임종의 곡소리에도 침대가 옮겨지는 분주한 소리에도 슬픔인지 아픔인지 모를 멍멍한 혼절의 상태에 있었다. 그저 몽유의 걸음으로 시체가 가는 길을 따라갈 뿐이었다. 야단스런 장례식의 오열 속에서도 나는 내내 울지 않았다. 언제나 가족들이 중심자리에 있었고 오빠의 마지막 기억의 자리에서 밀려났듯이 나는 장례식의 소란으로부터 완전히 한쪽으로 밀려나 있었다. 나는 꽃 한 송이 향 한 번 피워보지 못하고 한쪽에 우두커니 서서 과연 오빠가 나를 지금 이 자리에서 지켜보고 있을까를 곱씹으며 오빠와의 영혼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생전의 오빠 같으면 저 많은 조문객들을 보며 흐뭇해할 테지만 세속의 욕이 끊긴 지금이야 정신을 차리고 나를 쳐다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헛된 갈애를 내내 끊지 못하고 있었다.

    ‘노동운동의 신기원을 이룩한 장렬한 열사의 죽음’

이렇게 세상이 오빠를 영웅으로 만드는 사이 나의 사랑은 오빠로부터 빠르게 소외되어갔다. 나는 오빠의 영웅심과 입맞춤 사이에서 오랫동안 방황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입맞춤은 영웅심의 노리개에 지나지 않았다. 그 영웅심이란 게 소외된 자와의 입맞춤을 위한 것이면서도 말이다. 인간은 그처럼 더러운 것이다. 썩어 문드러진 것을 위해 썩어 문드러지는 게 인간이다. 노동운동이라는 게 여성의 곪아터진 웅덩이에 남성의 심벌을 담그는 것이련만 그 새로운 운동이 새 고름을 만들 새 웅덩이를 쫓는 심벌놀이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와 그 자식이 과연 뭐가 다른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왜 그를 오빠라고만 했을까? 지금 이토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오빠의 이름 석 자를 왜 나는 한 번도 마음 놓고 불러보지 못했을까? 오빠를 그이라고 부르지 못한 것은 한 번도 나를 그녀라고 불러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세상의 그 누구도 오빠의 이름과 나의 이름에 그 어떤 연관을 지어 부르는 사람이 없었다. 생전에 오빠와 옷깃만 스쳤어도 노조간부가 되고 노동운동의 선구자가 되는 세상으로 변해갈 때 나는 청계피복노조에도 가입하기가 싫어 청계천을 떠났다. 
 

전태일을 운동권 시각에서만 보던 안목을 한층 넓혀 보았다. 그러나 모든 세상사가 그렇듯 좁은 것은 좁은 대로 넓은 것은 넓은 대로 의미가 있다.

어느 한 쪽 의미만 존재하는 세상 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다면 한 번 읽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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