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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 ㅣ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17
장 자크 루소 지음, 주경복 외 옮김 / 책세상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루소의 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은 아주 재미 있다. 그의 사유의 자유로움과 시대 사조에 붙박힘이 얽혀 만들어내는 발랄한 생각들을 엿보는 일은 내게 있어서 어느 낯선 세계를 여행하는 것 보다 흥미롭다.
살고자 하는 욕구가 서로를 피하게 한다면 정신적인 욕구인 정념은 서로를 가까이하게 한다고 그는 말한다. 마치 정신적인 욕구는 살고자 하는 욕구가 아닌 듯이 사랑, 증오, 동정심, 분노는 배고픔이나 목마름과는 별개인 듯이 말이다.
말을 하지 않고도 포식하고 싶은 먹이를 쫓는다지만 먹이를 쫓지 않고는 하고 싶은 말을 할 수가 없다. 억양, 외침, 비명 등의 정신적 정념적 욕구는 먹이를 쫓는 육체적 욕구와 별개일 수 없다.
정신과 육체가 극단으로 분리되던 과학혁명기를 살던 사람답게 그는 과학주의 물질주의의 심한 반감아래 이런 글을 썼다. 그냥 감탄사가 언어의 기원이었다고 하면 될 걸 가지고 이처럼 물심을 분리해 물질적 체계에 대립되는 정신적 정념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래서 처음의 언어들은 음악적이고 시적이었다고 그는 말한다.물론 오래된 미분화의 것들이 더 복합적이니까 음악적이고 시적이긴 하다.
그러나 색과 음을 대립해 놓고 색은 영속적인 것 음은 연속적인 것 색은 고정되어 있는 것 음은 움직이는 것 색은 죽어 있는 것 음은 살아 있는 것 색은 공간적인 것 음은 시간적인 것 색은 동시적인 것 음은 이시(異時)적인 것 색은 지속적인 것 음은 사라지는 것 색은 절대적인 것 음은 상대적인 것 색은 독립적인 것 음은 상호적인 것 색은 자연적인 것 음은 인간적인 것 색은 물적인 것 음은 영적인 것 색은 지각적인 것 음은 비지각적인 것 색은 직접적인 것 음은 간접적인 것 색은 이성적인 것 음은 감성적인 것이라고 사뭇 시대적 편견을 강조한다.
사실 루소 이후 미술사는 많은 변천을 거듭해 왔다. 루소는 음악의 전성기를 살면서 아직 미술의 전성기는 맞이하지 못했다. 그래서 색에 대한 편견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미술사의 소용돌이가 루소가 그토록 거부감을 일으킨 과학의 발달(사진기의 발명)에 기인한다는 것이야말로 놀라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루소가 조목조목 지적한 색의 편견들이 이후 미술사에 등장한 새로운 사조들의 경향들로 채워졌으며 조목조목 재발견된 색의 탁견들로 부활했다.
고전주의 이후의 모든 미술사조들은 루소가 지적한 빛과 색에 대한 인식의 미진한 부분들을 화려하게 소생시킨 결과물들이다. 천재 루소는 역설로서 미술사의 혁명을 예언한 것이다. 그의 역설이 오히려 혁명의 소용돌이 이후의 포스트모더니즘 까지 겹겹이 예언한 것이어서 더 놀랍다.
미술사와 과학사가 맞물려 돌아가면서 오늘날의 첨단 이미지시대의 사이버 문명을 낳아 종말적 환경문제를 야기하며 화려한 퇴화의 해체시대를 열었으니 말이다.
그는 언어가 문법체계로 발전하면서 음악적 언어와 선율적 음악이 퇴화했으며 설득하는 솜씨를 연마하여 감동시키는 솜씨를 잃게 했다고 개탄했다. 선율은 에너지를 잃고 화음에 음악의 자리를 내어주고 말에 기원을 둔 예술(음악)은 말에서 독립하여 자연의 목소리였을 때 불러오던 정신적인 효과마저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문자가 말의 아름다운 힘을 잃게 하고 음악성이나 시적 감성의 힘을 사라지게 했다며 진보 자체를 문제 삼던 그가 오늘날 더욱 분절된 인터넷 화상언어를 보면 아마도 종말적 언어라고 한탄할지도 모르겠다.
글을 읽지 않고 이미지를 읽는 인터넷세대들은 어쩌면 문자의 단순화를 통해 이미지를 부활하여 자연을 이미지로나 즐기려고 손에는 핸드폰 귀에는 MP3를 꽂고 이미지의 음악화 살아있는 이미지를 살고 있는 게 아닌지.
하늘나라의 루소도 나처럼 세상을 재미있게 내려다 보리라. 사랑해요, 도와주세요, 루소씨.
오픈백과 등록 08.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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