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대리만족의 시대인지라 독서조차도 대리로 만족한다. 얼마 전에는 TV프로 '낭독의 발견'을 보고 리뷰를 쓴 적이 있다. 작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렇게 되었다.
각종 미디어에서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책을 사서 읽으라는 것일 진데 읽지도 않고 읽은 느낌이 들어 리뷰를 쓸 마음까지 생기다니 뭔가 잘못 돼도 한참 잘못 됐다.
청년기에는 주로 도서관에서 공짜 책을 읽었다. 그 때는 돈이 없어서 이기도 하겠지만 신간은 커녕 고전읽기 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랐다. 돈이 없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사서 읽을 만한 마음이 내키는 책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도서관이 먼 것도 원인이지만 책값은 아직도 내게는 거금이어서 이따금씩 몇 달에 몇 권을 골라 사서 읽는 게 고작이다. 그래서 미디어의 책 소개 프로그램은 나를 책부자로 만들어 준다. 간단한 책 소개만으로도 영혼의 배가 부르다. 때로는 집중적으로 책 내용을 조명해 주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여간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게 아니다.
사실 책의 홍수 속에서 그 많은 책을 다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기 관심 분야의 책만 읽는다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대충 보고 넘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대충 읽는 책과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야 하는 책이 있지만 대충 읽고 만 책은 웬지 돈이 아깝다.
나는 책을 빨리 읽지 못 한다. 그러기에 많은 시간이 할애 되는데 읽고 나서 시간이 아까워 괜히 읽었다 싶은 책들도 있다. 미디어를 통한 대리독서가 고마운 또 다른 이유이다.
책을 쓰는 사람이 대리독서를 고마워 하다니 염치가 없다. 술 취한 사람이 대리운전을 고마워 하기는커녕 돈 몇 푼 집어 주고 말 듯이 그냥 건성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돈을 집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대가의 지불은 고마움을 앗아간다. 대리독서의 특징은 그것이 공짜라는데 있다.
대리독서의 상징은 뭐니 해도 앞 못 보는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것이다. 아름다운 낭독의 발견이다. 완전한 자원봉사다. 그래서 고맙고 귀하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아 책이 귀했던 시대에는 대리독서가 일반화 되었던 모양이다. 조선시대에는 책 읽어주는 여자 책비가 있었고 귀족들은 재주있는 시종에게 대리독서를 시켰다.
세익스피어 시대의 연극도 넓은 의미에서의 대리독서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소설의 영화화 역시 어떤 의미에서의 대리독서다. 이미지세대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도 어쩌면 이러한 대리독서의 범람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남이 읽은 리뷰만을 읽고 읽었다고 착각하는 나 같은 얌체족은 그래 봤자 저만 손해다. 정독의 묘미는커녕 탐독의 실과는 아예 얻지도 못한다.
흔히 읽지 않는 사람이 쓴다고 한다. 쓰는 사람은 대개 행동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읽는 사람은 행동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그럼 도대체 행동하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쓰느라고 읽지 못하면서 남이 읽을 글을 쓰는 것처럼 읽느라고 행동하지 못하면서 남이 행동할 지침을 읽는다니 말이 되는가.
적당히 읽고 적당히 쓰고 적당히 행동하기 위해 대리독서가 있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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