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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ㅣ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평점 :
소재도 흔하지 않고 상상력이 엄청나다는 느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악마도 때론 인간일 뿐이다'의 전 편인 이
책에서는 악마가 아닌 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가 상상했던 전지전능한 신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너무도 인간적인, 인간보다 더 험난해보이는 신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럽다.
p.49
"「호, 어쨌든 신도 유머가 있는 것 같군요.」
바우만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는
신도 세상의 모든 걸 유머러스하게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다른 할 일이 없소.」"
읽다 보면 독자는 이미 아벨 바우만이 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정신병자가 아닌가 싶은 생각을 들게 할 때가 많다. 정말로 내 주변에
신이 나타난다면 아무런 의심 없이 신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p.77
"「(...) 사실 난 종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천국에 한 자리쯤 마련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할 뿐이죠.」"
p.115
"저 하늘의 힘과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까지 반대하지는 않지만, 줄곧 하늘의
치맛자락만 붙들고 늘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신을 믿던 안 믿던 이 책이 참 볼만하다라고 느낀건 '신을 믿어야한다'라거나 종교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결국 중요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
심지어 후속편인 '악마도 때론 인간일 뿐이다'에서 다시 등장한 신은 자신을 불교도로 소개하기도 한다. 천국과 지옥 사이에서
바들바들떨며 사는 인생을 살지 않는다며. 이 책에서도 신은 '종교'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결국 사람이 신을 믿는 이유도 신이 아닌
'자신'을 위해서다. 죽음이후의 삶이 두렵기 때문에, 당장의 생활이 힘들어서. 절대적인 존재의 누군가 해결해주길 바라는 것일 뿐.
존재할지
안 할지 모를 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심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이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서 나도 같이 바라보게
되었다.
p.85
" 「(...) 신은 주사위를 던질 뿐 아니라 룰렛도 아주 좋아해요. 블랙잭은
물론이고, 심지어 가끔 포커도 쳐요. 생각해 봐요. 도박꾼이 아니라면 어떻게 인간 같은 족속을 만들 생각을 했겠소?」 "
도박꾼이 아니라면 어떻게 인간을 만들 생각을 했겠냐는 말은 너무 재밌어서 밑줄.
한 때 종교를 믿었을 때에 나도 신이 왜 이런 세상을
만들었을까 생각했는데. 결국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이 세상을 향한 엄청난 도박이었다는 얘기.
p.279 ~ p.280
"나는 이 기적을 믿었다. 세상엔 아직 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이 천재적인 서커스 곡예사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불완전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비록 힘은 없지만
선량한 신이 있다는 건 신이 아예 없는 것보다 훨씬 나을 수 있다."
p.282
"당시 나는 아벨을 심각한 정신적 문제가 있는 광대로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신을
만났다고 믿는다. 실수도 많고 나약하고 무기력한 신이지만, 그 신은 어쩌면 다른 시간대, 아니 다른 세계에서 찾아온 하나의
<생각>일지 모른다. 나 자신을 위해 찾아낸 생각 말이다."
결국 이 소설에서 아벨 바우만이 진짜 신인지 아니면 정신 나간 마술사인지는 누구도 증명해주지 않는다. 아벨 바우만이 아닌 그를 바라보는
심리학자의 관점에서 쓰여졌으니까.
이 심리학자가 처음엔 정신병자로만 취급했던 아벨을 점점 신이라고 믿기 시작하는 부분. 아벨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인간을 위해 발이 닳도록 일한다.
오히려 후편의 악마가 더욱 신 답다고 느껴질 정도로 전지전능한데 비해 신은 너무도 나약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 친숙하게 다가오기도 하고, 그 심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p.283
"나는 방금 깨달은 것이 있었다. 아벨 바우만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은 광대든
신이든 원칙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아벨이 내게 보여 준 것이 진짜 기적이든 눈속임 마술이든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아벨의 체험이 나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신이 있다고 해도 더 이상은 신에게 요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눈으로 직접 볼 수 없기 때문에 단순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퍽이나 재밌는 신의 이야기들.
단순히 상상 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우리들의 이야기들도 재미있다.
책장을 덮을때는 꽤나 재밌는 영화 한편을 푹 빠져서 본 것 같은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