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은 가을도 봄
이순원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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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표지부터 묘하다. 참으로 가을같으면서도, 분홍빛이 도는 게 꼭 봄 같기도 했다. 춘천은 가을도 봄. 이게 무슨 의미일까? 춘천에서는 가을도 봄 같음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일까? 약간의 설렘과 궁금증을 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 처음 부분,

이제 나는 이야기한다. 돌아보면 어느 한순간인들 꽃봉오리가 아닌 시간이 있으랴만 시기로는 '유신'의 한중간으로부터 '5공'의 초입에 이르기까지 차라리 얼룩이라고 불러도 좋을 나 자신의 이십 대에 대하여.

춘천은 가을도 봄, 이순원, p.7 발췌

살짝 감이 잡혔을까 모르겠으나, 이 책은 우리가 독재 정권이라고 불렀던,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를 위해 울부짖었던 시기의 이십대를 보낸 남성 김진호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독재가 만연하고 학생들, 사람들 모두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이 시기를 생각해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잘못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고.

물론 모든 사람들이 민주화를 위해 싸우지 않았다. 현실에 안주하던 사람도 있었고, 앞에 나서서 싸우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 책에선 그런 다양한 사람들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일생들이 주인공의 이야기와 함께 전개되고 있다.

나는 당연하게도 그 시대에 살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 시대는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책에서나 아니면 영화, 드라마로만 접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시대의 청춘들의 생각을 오롯이 이해하긴 어려울 지 몰라도, 그때 당시 사람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싸웠는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 젊은 청춘들의 삶...

지금은 나이가 들어 아줌마, 아저씨 혹은 엄마나 아빠가 되었을 지도 모르는 청춘들의 이야기는 가슴을 잔잔히 울린다. 우리 부모님도 그러셨을까? 그 청춘의 한 이야기 부분을 맡고 계셨을까? 서툴러서 방황했고 미숙해서 추락했지만 결국에는 그 속에서 한 단계 성장한 우리 청춘들의 이야기.

이상하게 내가 현재 스무살이고, 이십 대에 첫자락에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더 이입이 돼서 읽었던 것 같다. 대학생의 생활도 예전과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고, 이십 대에 겪을 문제들, 방황과 추락, 그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p.232

그래, 하여라. 스스로에게는 고통스러운 열정일 것이나 장차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할 따뜻한 삶에 대한 그리움으로 설사 네가 가고자 하는 길이 끝내 열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너 스스로는 물론 누구도 감히 너의 열정을 실패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p. 232 발췌

나는 정말 이 구절이 그냥 좋았다. 아무 생각도 없이 좋았다. 이상하게 나에게 하는 위로 같기도 하고,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하고 싶은 말 같기도 했다. 우리는 실패하면 스스로를 한심하게 생각한다. 노력을 더 하지, 하면서 쓴소리를 더 해댄다. 하지만 우리가 듣고 싶었던 위로라는 건 우리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더 성장하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우리가 열정을 쏟아 붓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 열정이 때론 짓밟힐 수도 있고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정말 그 누구도 우리의 열정을 실패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실패 속에서 성장한다. 그 안에서 배움이 있고, 새로운 길이 열릴 지도 모르는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당숙의 이야기를 우리가 주목했으면 좋겠다. 단순한 청춘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당숙이 주인공에게 건네는 말들은 이상하게 가슴 한 켠을 탁 치는 말들이었다.

 

침묵하면 나쁜 세상이 온다.

이 세상의 모든 청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던 건지, 침묵.

침묵이라는 단어는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 사회에 침묵하며 살고 있다. 무엇을? 그건 나도 모르지만,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저 시대의 청춘이 바꾸고자 했던 것과 다른 것으로 바꿀 것이 있다. 그러나 나는 침묵한다. 그 소용돌이 속에 들어가는 것이 싫어서.

하지만 침묵하면 바뀌지 않는다. 절대. 소리를 내야 들리고, 그래야 바뀐다. 침묵하지 말자. 오늘 나에게 주는 작은 충고.

두 번째 사진도 참 좋은 말이다.

소나기가 아니라 새벽에 맺히는 이슬처럼 온다는 말이.

내 나름대로의 해석이긴 하나, 남에게 뒤쳐질까봐 안절부절 허둥대며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 늦은 건 없고 길을 묵묵히 걷다보면 언젠가는 닿을 것이다. 그러니까 성급하게 굴지 말고 묵묵히, 그저 묵묵히. 그러면 언젠가는 바뀌어 있을테니까.

청춘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참 따스하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더라도 포기하지 말자. 우리는 실패로부터 성장한다.(이런 노래 가사도 있지 않은가?)

좋은 책이다. 읽으면서 잔잔한 위로도 함께 얻어갔으면 좋겠다. 분명히 읽은 것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책을 다 읽으니 왜 춘천은 가을도 봄, 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김진호가 자신의 이십 대를 보냈던 춘천은 아마 김진호에게 어떤 시기가 와도 봄일 것이다. 봄은 흔히 다들 새로운 계절, 다시 시작하는 이미지로 생각하지 않은가. 그에게 춘천은 청춘 그 자체였을 거란 생각이 든다. 아련한 사랑의 기억, 보고 싶은 사람들과 추억들...

우리도 종종 회상하는 그 좋은 시절을 춘천에 묻어둔 김진호의 이야기.

박진감 넘치는 소설은 아니다. 잔잔히 흘러가는 소설이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그냥 한 사람의 이십 대를 엿보는 기분이었다. 그게 또 특별한 게 아니라 그냥 주변에 있었을 것 같은 그런 이야기.

곧 있으면 가을이 또 올 것이다. 가을을 맞이하며 한 번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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