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뎐 - 시대를 풍미한 검은 중독의 문화사
양세욱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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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취업난으로 이력서 쓰기의 중요성이 새삼 대두되고 있다고 한다. 이력서에는 한 사람의 지금까지 살아온 역사가 한눈에 드러난다는 점에서 허투루 여길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서류이다. <짜장면뎐>은 그 이력서로 시작하고 있다.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음식인 '짜장면'으로 되어있지만 말이다. 짜장면이 지금까지 걸어온 발자취를 한 눈에 알 수 있었지만 종이 한 장으로 어떻게 짜장면生을 다 알 수 있으리오.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면 당장 '일본'을 떠올릴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만큼 애증이 깊다는 반증일 것이다. 하지만 서쪽에 있는 중국도 그에 만만치 않다고 하면 과장된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중국을 모르고 있는지를 <짜장면뎐>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지하지 못하고 저지르는 실수가 많다. 그것이 오해와 편견에서 기인한 것이든 무지로 인한 것이든 말이다. 짜장면도 예외가 아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중국 산동성 태생인 '짜장면'이 한국으로 넘어와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추정하기로 100년이 갓 넘은 짜장면의 역사가 한국문화사라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중국에는 없는 음식이라는 오해, 짜장면의 원류, 음식명에 이르기까지 근거를 들어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특히 음식은 생물로서의 인간 본능적인 욕구이기에 한중일 삼국의 교류는 활발할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크로스오버적인 음식이 남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음식은 단순히 먹는 차원을 넘어 문화와 역사로서의 기능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짜장면'은 한국 화교의 희비가 교차하는 역사이자 피땀 어린 한국 근대사이기도 하다. 구한말 청국 상인들이 조차지인 제물포에 터를 닦음으로써 그들만의 역사를 만들기 시작하여 한 때 중흥하기도 했으나 1970년대의 박해로 말미암아 일본과 미국으로 떠날 수 밖에 없었던 비운을 맞기도 했다.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되어버린 강토에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무릎을 꿇는 대신 피와 땀을 땅에 뿌리는 것을 택했다. 짜장면은 그렇게 희노애락을 한중 양국인과 함께 나눴다.
 
시간은 흘러 다양한 외식문화가 유입되었지만 짜장면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때로는 질책을 듣기도 했지만 TV, 브라운관, 출판물 등에서 가장 정겨운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TV에서 피자를 먹는 모습을 보고 군침을 삼키는 경우보다 짜장면을 먹는 모습에 회를 동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이 그 점을 반증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오랜 시간 한국인과 함께 한 추억이 고스런히 서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더 흐르면 맛보다 추억을 먹기 위해 짜장면을 주문하는 사람이 더 늘지 않을까하는 생각마저 드는 것을 보면 나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이리라. <짜장면뎐>을 덮을 때쯤 저자는 '짜장면'이 한국 화교의 희망과 눈물이, 어머니의 희생과 애정이, 할아버지의 피땀이 배인 한중문화교류의 첨병으로 우리에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중 양국은 오랫동안 같이 했지만 평화와 공존보다는 경쟁과 오욕의 역사가 더 많았다. 한국인이 중국인을 더 이상 '짱꼴라'로 부르지 않기를, 중국인이 한국인을 더 이상 '까오리빵쯔'로 부르지 않기를, 중국식당에 국적 불명의 음식이 아닌 제대로 된 중국음식이 존재하기를, 양국이 진정으로 악수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더 나아가 동북아 3국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수 개월 전 KBS [다큐멘터리 3일]에서 대구 화교를 소재로 다룬 적이 있었다. 또한 최근에는 중국식당의 위생 상태를 고발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도 있다. 그렇게 지금의 짜장면은 나에게 두 얼굴을 한 채로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짜장면을 먹은 때가 언제인지 기억이 희미하다. 먹고는 싶은 데 불결함이 떠올라 참은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먹고 싶은 것을 보면 다른 어떤 음식보다 참기 힘든 유혹을 가진 음식임에 부정할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얻게 된 나의 소원은 단 한 가지다. 바로 짜장면을 보면 행복했던 '추억'만을 떠올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몇몇 오타와 오류가 눈에 띄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다면 '황해'라는 용어 사용에 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황해'를 '서해'로 부르고 표기해왔다. 물론 국제적으로는 중국의 입장을 고려한 '황해'를 더 많이 사용하지만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고려해 병행 표기하는 곳이 늘고 있다. 동해/일본해 병행 표기처럼 말이다. 구글 어스도 그런 입장을 표명했다. '서해'라는 용어가 고유명사가 아니라는 것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용 연혁이 고려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보면 '황해'는 우리가 사용해야 할 용어는 아닌 것 같다. 바다 용어 때문에 양국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지만 주체성이 훼손되는 것은 더 바라지 않는다. <짜장면뎐>에서 '서해'는 248쪽에서 단 한 번 사용되었다. 저자가 '서해' 대신 '황해'를 사용한 것에 다른 의미가 있지는 않겠지만 아쉬웠던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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