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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년 9월
평점 :
어느 봄날이었던가, 가을이었던가. 햇살이 화사하게 비치는 창가에 기댄 한 금발의 여인이 책을 읽고 있다. 누가 다가오는지도 모른 채 책 읽기에 몰입한 그 여인의 미소를 머금은 얼굴은 환하게 빛이 나고 있습니다. 그녀의 맞은편에 있던 화가가 그 모습에 취해 있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붓을 열심히 놀리기 시작했다. 너무도 아름다운 광경을 화폭에 담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프랑스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명작 <讀書>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그림 속 모델 마고는 연출된 자세를 취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온 몸으로 책 읽기의 즐거움을 발산하고 있다. 짐작건대 그녀는 르누아르 집에 놀러왔거나 다른 그림 모델을 하던 중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창가에서 책을 읽다가 그만 몰입하여 한껏 즐거움을 느꼈으리라. 그리고 준비를 마치고 작업을 재개하려던 르누아르가 그녀를 부르려다가 책 읽기에 빠진 마고의 모습에 취해 저도 모르게 그린 그림이 아닐까.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 독서, 1876, 파리, 오르세 미술관
가끔 이 그림이 떠오를 때면 그녀는 과연 무슨 책을 읽고 있기에 저리도 즐거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분명 빛이 나는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은 분명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저런 그림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니까. 그리고 내가 그 정도로 몰입하여 책을 읽은 적이 있었나라고 반문하게 된다. 김열규의 <讀書>를 읽으며 나는 그 물음을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던졌다.
한 인간을 알기 위한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생활습관, 말과 행동, 사귀고 있는 친구의 면면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하나를 추가한다. 바로 독서습관이다. 어떤 책을 좋아하고 읽는지를 알 수 있다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이 사람됨을 보증서는 격이라고 할까.
김열규 교수는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학 석학이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지기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 <독서>를 통해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도스토예프스키 <지하 생활자의 수기>, 체호프 <내기>, 토마스 만 <토니오 크뢰거>, 소포클래스 <오이디푸스 왕>, 릴케 <말테의 수기>, 슈테판 츠바이크 <에라스무스 전기>. 온전히 그의 것이 되어버린 책들이다. 온전히 그의 것이 되었다는 말은 곧 그의 삶이 되었다는 말과도 같다. 저 책들 중 하나라도 읽어본 사람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또한 어떻게 살아갈지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책을 읽어왔을까. 내 기억 속의 최초의 책 읽기는 초등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절엔 공동 책장을 만드는 것이 학교의 방침이어서 집에 있던 책 중 몇 권을 교실 뒤에 마련해 둔 책꽂이(책장이라고 하기엔 볼품없는)에 꽂아뒀다. 책을 가져올 수 없는 일부 아이들을 제외한 모든 친구들의 책을 모아두니 하나의 조그만 책방이 만들어졌다. 보고 싶었지만 보지 못했던 책도 많았다. 빌려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지만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읽을 수 있는 것만 해도 충분히 만족했다. 그렇게 나는 구전동화와 안데르센 동화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자식은 부모를 닮고 따라간다는 것은 불변의 법칙인 것 같다. 중학시절 아버지께선 대본소에서 무협지와 만화책을 잔뜩 빌려오셔서 쌓아두고 읽으셨다. 남들처럼 퇴근하면 모여서 대포 한 잔을 걸치지 않고 일찍 집에 들어와 책을 읽으니 오히려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더 나은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문제는 나도 거기에 심취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문제가 된 것은 당시 무협지와 만화책은 중독성이 강해 한 번 손에 들면 자의로 놓기가 무척 힘들었다는 것이다. 밤을 꼬박 지새우는 날이 많아졌고 그런 날은 학업에 열중할 수가 없었다. 이래선 안 된다고 하면서도 마치 마약과 같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 놓기가 몹시 힘들었다. 만화의 경우는 학교로 가져가서 수업을 듣는 중 교과서 안에 감춰두고 읽기도 하는 등(들키면 압수와 함께 벌이 내려짐) 심취했다.
책을 읽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그렇게 다독을 하던 중 장르도 다양해졌다. 순수문학(한국문학전집), 역사(조선왕조500년), 과학(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비롯한 소설과 순수과학서적 등), 추리(팬더 추리문학시리즈 50권) 등 범위를 점점 넓혀갔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그렇게 읽은 책이 수백 권이요 투자한 돈이 수백만 원이 넘는다. 거의 모든 용돈을 책에만 다 썼었다. 그 중 백미는 역시 추리문학이다. 당시 우리 집안에 추리문학에 빠진 사람이 세 명이 있었으니 막내 고모와 나, 그리고 형이다. 내 기억으로는 해문출판사에서 팬더 추리걸작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50권을 3년에 걸쳐 출간했었는데 그 전권을 대구에 살던 막내 고모가 소유하고 있었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당연히 대구로(내 고향은 포항이다.) 원정을 갈 수 밖에 없었고 여름방학이면 짧으면 1주일에서 길면 2주일 동안 우리 셋은 추리소설에 빠져서 헤어날 줄 몰랐다. 그렇게 뤼팽과 홈즈, 포와로는 나와 함께 ‘한여름 밤의 꿈’을 연출했다.
그렇게 책에 빠져 살던 학창시절 나의 꿈은 당연하게도 문학가였다. 상상력은 점점 커져만 갔고 수많은 인물이 그곳에서 살며 다양한 사건을 일으키고 해결하곤 했다. 그동안 독서를 통해 쌓인 내공이 발현되었는지 나는 국어에 특기를 발휘했다. 다른 어떤 과목보다 국어가 좋았고 그만큼 성적도 잘 나왔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문학도를 꿈꾸던 소년은 지금 온데간데없고 전혀 다른 인물이 지금 여기 존재한다.
지금 여기 있는 존재에게 물어본다. 지금까지 너에게 책은 어떤 의미였고 독서를 통해 무엇을 추구했는지, 무엇을 얻었는지, 심지어는 많은 책을 읽었다지만 편식한 것은 아닌지. 왜냐하면 지금 당당히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책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김열규의 <독서>는 나로 하여금 그런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온라인서점 예스24를 통해 연재되었던 칼럼 <침대와 책>에서 정혜윤은 다양한 상황의 사람들에게 그에 걸맞은 책을 이야기했다.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칼럼은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독서기를 그런 정도로 적용하려면 얼마나 책을 탐독해야 할까. 나에게 <침대와 책>을 쓰라고 하면 과연 쓸 수 있을까. 아니, 내 자식들을 위한 동화책을 만들라하면 만들 수 있을까.
김열규 교수는 <독서>를 통해 이런 나에게 한줄기 빛을 비추어 주었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또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강습했다. 새로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그동안 읽은 것을 새롭게 재구성만 해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열규 교수는 그 점을 특히 강조했다.
독서(讀書)란 무엇인가? 책 읽기다. 그렇다면 책은 무엇인가? ‘책(冊)은 일정한 목적으로 쓴 글 및 참고 자료 등을 덧붙여 묶은 것이다. 서사(書史), 서질, 서적(書籍), 서전(書典), 서책(書冊), 책자(冊子), 문적(文籍), 전적(典籍), 편적(篇籍) 혹은 도서(圖書)로도 불린다.’ 백과사전적 정의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실은 것이 바로 책이다.
책에는 지은이의 지식, 사고, 사상, 지혜, 경험 등이 녹아들어가 있고 독자는 책 읽기를 통해 그것을 들여다보고 배울 수 있다. 간접체험이라는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얻기도 하고 때론 지은이의 말과 삶에서 위안을 얻어 마음이 평온해지기도 한다. 인생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바람직한지, 내가 추구하고자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책 읽기를 통해서 알아가고 배운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 책은 따스한 손길을 건네기도 하며 진리탐구의 갈증을 해소해 주기도 한다. 어두운 숲속을 밝혀주는 촛불과 같다. 그 불빛에 의지해서 사람은 진리를 찾아 떠나는 게 아닐까. 그런 이유로 우리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닐까.
책을 만든 사람은 거기에 마음을 담아 세상에 내 보낸다. 품을 떠난 책은 더 이상 만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새로운 둥지를 찾아 떠난 책은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많은 것을 담고 또 보금자리를 찾아 떠난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책도 사람도 그렇게 성장한다. 르누아르가 마고가 책을 읽는 마음을 화폭에 담아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했듯이 나도 마음을 담은 책 읽기를 통해 얻은 감동을 전할 수만 있다면 삶은 보다 풍요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내 마음이 담긴 책은 세월과 함께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너희가 진리를 알게 되리라.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요한복음의 구절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한 권의 책은 진리를 담아 그렇게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될 것이다. 김열규의 <독서>도 이제 이 여행의 첫걸음을 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