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 장하준의 경제 정책 매뉴얼
장하준.아일린 그레이블 지음, 이종태.황해선 옮김 / 부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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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프랑스
19세기 영국
20세기 미국

위는 각 세기를 대표하여 세계를 경제로 주름잡은 대표국가를 표시한 것이다. 다른 말로 패권국가들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돈 잘 버는-’잘 사는’이 아님-국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들이기도 하다. 

영국은 산업화에 가장 먼저 성공을 거둔 후 좁은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해외팽창 정책을 펼쳤다. 자국의 산업이 만들어 낸 물건을 내다팔기 위해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로 손길을 뻗쳐 문호를 개방하라고 요구했다. 명목은 ’자유무역’ 이다. 상대가 듣지 않으면 강력한 함대와 군대를 이용하여 강제로 개방했다. 이른바 식민지 경영의 시작이다.

신세계를 찾아 떠난 유럽인들이 세운 미국은 영국의 심한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쟁을 불사했고 결국 독립을 쟁취했다. 그 직후 문호를 닫아 걸고 강력한 산업 정책을 펼쳐나갔다. 그리고 그들도 다른 열강보다 다소 늦은 19세기 말엽부터 대외 팽창으로 방향을 수정해나갔다. 하지만 그들은 현재 세계를 경영하고 있는 유일한 패권국가가 되었다.

위에서 예로 든 국가들의 공통점은 개도국의 상태일 때 중앙정부 주도하에 ’보호주의’ 정책을 펼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화에 성공한 이후 ’자유무역주의’과 ’자유방임주의’ 그리고 ’자유금융주의’로 선회하여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독일과 일본은 미국의 유치 산업 보호 정책을 성공적으로 활용하였고 그 중 일본은 미국의 기술 이전을 바탕으로 세운 소니와 도요타로 세계를 주름잡았고 미국조차 넘어섰다.

한국은 어떤가. 살기 위해 그리고 최빈국이라는 딱지를 떼어내기 위해 국가 주도 하에 각종 기간 산업을 유치했고 그렇게 유치한 산업은 여러 정책의 보호 아래 착실하게 성장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 LG전자, 현대기아자동차, 포스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세계를 호령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탄생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이제 세계는 자유화 시대다. 신자유주의를 실시하자는데 문제가 될 것이 무에 있는가. 그 자체로는 문제될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신자유주의 개혁을 요구하는 진영의 ’이중성’에 있다.

’워싱턴 컨센서스’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진영에서는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모델이야말로 모든 개발도상국이 모방해야 할 이상적인 형태라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채택한 개발도상국들은 경제적 번영을 누려 왔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심지어 정치인과 공무원은 신뢰할 수 없으니 국제기구-IMF, 세계은행, WTO 등-과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국내 전문 기관에게 정책을 맡기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아시아 모델은 그 지역의 독특한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조건 덕분에 성공한 시스템이니 타지역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고 못을 박으며 영미형 모델이야말로 보편적 시스템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적 모델이란 무엇인가. 바로 모든 경제활동을 시장의 자율에 맡기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국가의 개입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것을 잘 따르면 산업화에 성공하여 선진공업국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들은 자신들이 그랬으며 또한 이를 따르는 개발도상국도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최근 25년 간 이루어놓은 각종 수치-높은 성장률, 낮아진 빈곤층 비율 등-을 예로 들고 있다.

저자들은 여기에 일침을 놓는다. 반대되는 진영의 대표로서 이 허황된 논리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들은 초기 영국과 미국이 국가적 차원에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수입을 금지시키고 수출을 장려하는 등 이른바 보호주의 정책을 펼쳤으며 경제대국이 된 연후에야 자유주의를 받아들였다고 반론한다. 그러한 과거를 가진 국가들이 선진국이 되었다고 태도가 돌변해 신자유주의를 주창하고 더 나아가 강요하는 것을 비판한다. 또한 지난 25년 간 국가별 빈부의 격차는 더 심화되었고 심지어 국가 내부에서조차 빈부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며 수치의 허상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주장한다. 지난 세월 세계에서 가장 빈곤층이 많은 국가는 중국과 인도였다. 세계 인구의 1/3 이상을 보유한 두 국가는 개혁 개방에 박차를 가했고 빈곤층은 줄어들었다. 중국과 인도는 그렇게 세계적인 빈곤 통계에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이 두 나라를 통계에서 제외시키면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미루어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저자들은 이렇게 수치의 허상에 사로잡히지 말라며 신자유주의의 논리를 반박하고 있다.

심지어 장하준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19세기 독일 경제학자인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주장을 근거로 신자유주의 진영을 통렬히 비판했다. 리스트는 영국이 주창한 자유무역주의라는 것은 사다리를 타고 정상에 오른 사람이 뒤따르는 사람이 정상에 오를 수 없도록 사다리를 걷어차버리는 것과 똑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을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표현하며 영국을 비판했다. 리스트의 주장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를 따르는 개발도상국들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정상에 오를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미국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고 장하준 교수는 지적한다. 이것이 바로 현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는 강대국의 실체이며 이중적인 면모이다. 장하준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정확한 실체를 모르고 받아들이는 것을 경계하라고 주문한다. 그 점을 독자들에게 주지시키고 싶은 것일 게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장하준 교수는 이미 신자유주의 이론의 맹점을 통렬히 비판했다고 한다. 조목조목 이유를 들어 잘못된 점을 지적한 그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덴버 대학교의 아일린 그레이블 교수와 함께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라는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여기서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부족한 점을 보완했다. 바로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그것도 무역, 산업, 민영화, 지재권, 국제 민간 자본 흐름, 금융 규제 등 거의 모든 경제 분야를 망라한 정책 대안들이다. 나는 이 대안들을 보면서 현재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 상황을 비교해가며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 진영에서는 국영기업의 부실은 민영화말고는 대안이 없는 것처럼 주장하는데 과연 그럴까? 민간에는 부실기업이 없다는 말인가? 규제를 철폐하고 장벽을 철거하기만 하면 기업은 성장하고 글로벌 자본의 적극적인 투자로 연결되는 것일까? 물가를 잡기위해 중앙은행이 단행한 금리인상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 등 많은 경제 현안에 대해 대안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현 정부의 주요 현안인 민영화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환율과 통화 정책에서는 뭔가 알 수 없는 통쾌함마저 느꼈다.

물론 장하준 교수와 아일린 교수의 대안과 주장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서문에서 이들은 다원주의와 겸허한 정신을 특별히 강조했다. ’내 이론만이 유일하게 옳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오만을 거부하고 겸허한 자세로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찾는 이들에게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 이보다 더 나은 대안이 나올 수 있음이기때문이다.

최근 나라를 지키기에 바쁜 국방부에서 읽기에 좋은 도서를 몇 권 선정했다고 한다.  국방부가 추천한 도서 23選에는 이대로 잊혀지면 안 될 그런 책들도 많았다. <나쁜 사마리아인들>도 거기에 포함되었다. 이에 국방부에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그 리스트에 오른 저자와 출판사에서 공동성명으로 항의표시를 하며 선정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뭔가 잘못된 것 같다. 되려 감사를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국방부 추천도서 23選에 대한 기사가 나간 후 대중의 관심이 증폭되어 판매부수가 오히려 증가되었으니 이는 반길 일이 아닌가. 항의를 해야할 곳은 리스트에 오를만한 책을 출간하지 못한 다른 모든 출판사와 저자들이 해야하지 않을까. 특정 출판물만 그렇게 홍보를 대신 해 주어 그들의 책이 덜 팔리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나라를 지키는 데도 모자라 이렇게 도서까지 추천하는 국방부는 아마 국가기관 중 가장 바쁜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군인들이야 그렇게 단속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국민들이야 어디 그럴 수 있을까. 이제 국민들을 ’13579’로 보지 말아달라는 주문을 하고 싶다. 우리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시대는 21세기 첨단시대에 접어들었다. 화성에도 물이 있다는 증거를 발견해 낸 우주 개척의 시대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냉전 종식 후 사라졌다고 믿은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신자유주의 진영에서 우리만이 옳다며 주장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미소 양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의 이념을 강요한 그 시대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여러 국제 기구를 내세워 끊임없이 개발도상국을 압박하고 있다.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는 나라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저자들이 제시한 대안 중 급변하는 세계 경제에 적용하기 힘든 부분도 있을 것이고 각종 국제 협약과 기구들 그리고 선진국 정부들이 가하는 압박에 어쩔 수 없이 따르는 나라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 저자들은 이렇게 조언한다.  "우리는 개발도상국이 이런 세력들의 힘과 영향력이 절대적이고 변하지 않을 것처럼 여기며 행동하는 것은 자국의 운명에 치명적인 동시에 정확한 판단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런 식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면 현재의 개발도상국에는 희망이 없다."

세계에는 수많은 나라가 있다. 그리고 처한 환경과 상황은 모두 다르다. 산업화를 이룬 나라들 역시 모두 저마다의 환경에서 성공했다. 그 때의 상황에 적합한 정책을 스스로 만들어 가며 이룬 성과인 것이다. 이러할진데 보편적인 법칙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동전은 한 면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상도 그렇다. 모든 현상에는 동전처럼 앞과 뒤, 양면을 가지고 있다. 보다 생각의 폭을 넓히고 싶은 사람에게 감히 일독을 권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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