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 눈이란 단어는 일종의 시적 허용을 통해 얼굴의 의미까지 담고 있다. 우리의 모든 감각과 감정이 보는 것에 집중될 때 얼굴은 눈이 되어버리고 다시 눈은 얼굴이 된다. 그리고 이때 얼굴이라는 단어와 눈이라는 단어는 서로 바꿔 쓸 수 있을 정도로 같은 것을 의미하게 된다. Huxley, 1990), 얼굴과 눈이 서로 협업한다는 생각은 현대 생리학적 심리학적 연구를 통해서도 증명되었다. 폴 에크먼 Paul Ekman(2003)은 18가지 종류의 웃음을 구분하여정리한 적이 있으며, 기쁨과 연관된 뇌 영역을 활성화시키는 유일한 웃음은 치아를 드러내는 미소와 눈꼬리의 주름이 함께 생길 때라고 주장했다(p. 2067). 이는 눈 자체가 얼굴 표정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웃고 있는 눈을 보고 웃음이 진실한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얼굴 표정의 진실성에 눈이 관여한다는 의미이기도 할 터이다.
이 타인의 눈을 들여다볼 때 우리는 그 어둠 속에서 우리 지이미지로 축소되어 반영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동공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가 포획될 수 있다는 것은 눈이 얼굴을 재빨리 포착히는 의미가 된다 (Huxley, 1990). <그림 2.4>는 눈 사진을 수집하던 한 호서 우리 자신이 유적런게 동공을 통해 자빨리 포착할 수 있다. 수집하던 한 환자가 찍은 사진으로 그녀 어머니의 눈이다 (그녀에 대해서는 제6장에서 좀 더 자세히 서술하카메라의 눈을 통해 어머니 눈을 찍은 이 사진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녀이모습이 뿐만 아니라 그녀 뒤의 세계까지) 어머니의 동공 속에서 ‘작은 인형‘ 처럼 반여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얼굴에 있어서 눈의 중요성은 아주 어린 아이들의 시각적 논리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얼굴을 그려보라고 하면 오로지 눈만을 그리곤 한다(<그림 2.5>를 보라). 그리고 아이들이 이런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자신이 보는 것만을 그려내기 때문일 것이다 (Kellogg, 1969). 기-
<그림 2.7> 르네 마그리트 그리네이커는 눈을 두드러지게 하면서 눈이 감 정을 잘 표현해낸다는 명성을 부여하는 것은 눈알 자체가 아니라 바로 얼굴 근육, 특히 눈꺼풀의 섬세한 움직임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차가운 시선이 란 사실 굳은 얼굴 근육인 것이다. 반면 눈이 없는 얼굴은 죽어있는 가면 같
눈으로 볼 수 없을 때 촉각은 시각의 결핍을 보상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촉각을 통해서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시각장애인들은 나중에 막대기로 세상과 접촉하면서 길을 더듬어 나갈 것이다. 아마도 눈 먼 이들에게는 풍경이 피부 속 느낌을 통해서 펼쳐질 것이나, 이는 주지 속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내장 감각과 유사할 것이다. 또한 ㅋ각적 접촉은 심지어 만진 그 대상에 대한 시각적 이미지 혹은 시내들어내기도 한다. 눈 먼 유아는 마치 아르고스처럼(<그림 2.11을각적 이미지 혹은 시각적 기본도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눈 먼 유아는 마지피부에 많은 눈을 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엄마 역시과는 다르게 상호작용할 수밖에 없는데, 그 자체가가능성을 훨씬 높일 수 있다. 눈 먼 이들은 이미 °내던져진 채 소외되어 있다. 거기에 더해 엄마가 무심는 식으로 전혀 공감적이지 않은 접촉을 이룬다면 이로 인해수치가 유발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이는 상호적인 1있는 것이다. 엄마 역시 일반 아이들수밖에 없는데, 그 자체가 수치의 발달을 일으킬다. 눈 먼 이들은 이미 어느 정도 정상 세계에에 더해 엄마가 무심하거나 아기를 거부해을 통해서 치료적으로 분석되어야 할 것이다. - 인해 초기 형태의상호적인 신체 경험과 감각
포드햄(1965)은 이 단계에대한 두려움을 느끼면서 불안을 느끼이의 활동은 "스스로를 방출하려는 욕구의 조수와 같은 흥망성쇠 속에서 마치 자연처럼 무정하고 절대적이다 ... 원형은 인간의 형태를 입고 출하면서 자아를 공격하고 박해하고 유혹한다" (pp. 98-101) 라고 썼다. 그리고아기의 조그만 세계 속에서 이렇게 커다란 세력이 활동하고 있을 때 ‘원초 적 자기‘ 즉 원시적 전체성의 상태는 존재의 연속성과 개인성을 지켜준다. 폐쇄된 체계로서 정신 속에 하나의 전체로 존재하는 이 원초적 자기는외부 환경과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포드햄이 분산-재통합deintegration-reintegration 이라고 부른 과정을 통해서 가능하다. 유아는 엄마에게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태에 있고 이 때 엄마는 유아의 파국적 불안과 공포를담아준다. 유아는 분산하면서 deintegrate 외부 환경에 스스로를 개방하는데 이를 통해 엄마는 유아 내면에서 유아를 공격하고 있는 본능적이고 원형적 인 집단적 요소들을 대사시켜 이를 인간화할 수 있다. 이러한 핵심적 능력을 통해 엄마는 아기가 이해가능한 방식 (통합)으로 실제 세계와 만나도록 이끈다. 위니캇과 비슷하게도 포드햄은 이러한 분산이 엄마와 아기 사이에 일종의 융합 상태를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반응‘ 하고 있을 때 유아는 존재 하지 못하며, 이렇게 발달의 극히 초기 단계에서 ‘반응‘ 한다는 것은 일시적인정체성 상실, 불안정에 대한 극단적 감각, 자기 연속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존재의 연속성이 없다면 유아는 자기 자신이 될 수 없다. 엄마가 신체적으로 보살펴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냥 단순히 아기에게 맞춰주는 것에 불과하다면 엄마는 아기의 생존과 연관된 뿌리 깊은 원초적 불안을 소화할 수없다. 엄마 없이는 신체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는 것처럼, 이 때 유아는 심적죽음을 겪게 된다. 위니캇(19652)에 따르면 정신증적 불안은 여러 가지 변이형이 있으며 이에는 "산산조각 나는 것, 영원히 추락하는 것, 자신의 몸과연결되지 못하는 것, 모든 방향 감각이 사라지는 것" 과 같은 예가 있다(p. 58), 나는 이 목록에 ‘존재하지 못하는 것을 추가하고자 한다. 이는 특히 아무 것도 반영해주지 못하는 엄마의 눈에 의한 안아주기 실패 및 유아에 대한 침해에 상응하는 정신증적 불안의 형태이다. 다시 말해 그 핵심에 수치가 있는 것이다. 우리를 멸절시키는 정서인 수치는 생존과 연관된 분열성suhizondl의 정신증적 요소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는 겉보기에는 멀쩡한 인격 속에 감추어져 있다.
실제 세상과 우리와의 관계는 모아 관계 속에서 모든 것이 시작하는 방식 및 그것이 점진적으로 발달하는 패턴에 기반하여 구축된다. 최초 공생 상태에서 유아는 엄마와 자신, 둘 다의 일부로서 자기를 경험한다. 유아는자신이 엄마를 창조해냈다고 믿으며 충분히 좋은 엄마는 유아가 이 착각을만들어내고 지탱해나가는 데 일조한다. 유아가 엄마 정신의 일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이러한 주체와 대상 간 지각 혼란이 일어날 수 있는 필요조건들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 때문에 눈맞춤이 이루어지는 동안 엄마의정신적 내용물은 성장해가는 유아의 자기와 뒤섞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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