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디드 범우고전선 4
볼떼르 지음 / 범우사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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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계몽사상가 중 하나인 볼테르의 <캉디드>는 세상에 대한 순진무구한 믿음을 가진 청년 캉디드가 현실 세계의 풍파와 부조리를 겪으면서 자신의 낙관주의, 선에 대한 믿음의 근본적인 회의와 흔들림을 겪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캉디드>의 내용 자체는 매우 비극적이고 냉혹한 역사적 이야기지만, 볼테르의 신랄한 풍자에 의해 그 느낌이 묘하게도 희비극적으로 변화된다.

<캉디드>에서 볼테르는 특권계층―귀족이나 교회, 성직자들―의 부패와 무능함, 구제도의 불합리성, 당시 유럽의 부조리에 대해 신랄한 풍자와 독설의 비판을 가하고 있으며, 기존 교회의 부패와 무능, 완전히 보장되지 않은 신앙의 자유 등에 대한 비판이 함축되어 있다. 또 해적선의 약탈과 노예선에서의 경험, 수리남에서 만난, 네덜란드 상인의 노예로 설탕정제소에서 일하다 왼쪽 다리와 오른쪽 손이 잘려나간 흑인의 참상 등을 언급한 걸 보면 볼테르는 당대의 지식인답게 유럽이 팽창하면서 낳은 부조리에 대해서도 주목한 것 같다.

<캉디드>도 볼테르의 사상적 단면을 엿볼 수 있는데, 각종 모순과 제약으로부터 인류는 자유로워야 한다는 사상을 가진 계몽사상가―계몽사상가들의 일반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같다―로서의 면모와, 봉건적 구체제와 그 이데올로기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세운 것이 그러한 것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볼테르의 경우는 계몽사상가 중에서도 상당히 온건하면서도 현실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캉디드> 한 권만으로 볼테르의 사상이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본질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볼테르나 계몽사상가들에 대한 다른 많은 책을 읽어 봐야할 일이다.

<캉디드>는 볼테르나 계몽사상에 대해 조금은 가볍게 접근하고 싶은 사람들은 꼭 읽어볼만 하다. 풍자나 독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권할 만한 책. 날카로운 풍자와 비판, 냉소와 독설로 사회에 대한 칼날을 세우긴 하지만,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이론적 체계나 대안 제시는 부족했던 것 같긴 하지만, 그리고 이러한 점이 진보와 개혁을 외치기는 하지만 자신의 책임과 영향력에 대해서는 방기하고 있는 이 시대의 지식인과 일맥상통하지는 않은가 하는 의심을 감히 품게 하기는 하지만,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즐겁게 읽어볼 만한 재밌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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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탱 게르의 귀향
내털리 데이비스 지음, 양희영 옮김 / 지식의풍경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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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의 부재를 틈타 내 자리를 차지했다.'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가 16세기 프랑스 아르티가에서 일어났다. 그 후 400년 동안 이 이야기는 많은 곳에서 되풀이되었고, 다니엘 비뉴 감독의 <마틴 기어의 귀향>이라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급기야는 영화작업에 참가한 역사학자 나탈리 데이비스가 영화에서 담아내지 못한 혹은 잘못 전달되었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역사가의 입장에서 '역사적'으로 이해하여<마르탱 게르의 귀향>을 펴냈다. 흔히 역사물이 기존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제작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 과정이 전도된 이 케이스는 상당히 특별하다 할 수 있다.

나탈리 데이비스가 <마르탱 게르의 귀향>에서 하려고 한 이야기는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마르탱 게르의 가출(?!)이나 가짜 마르탱 게르가 돌아온 후의 마을 사람들과의 갈등 등은 모두 지역적 환경과 역사적 배경에 따라 각기 다르게 형성된 집안과 개인의 정체성에 따른 갈등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데이비스는 자연환경 사회적 배경, 종교문제, 경제·산업기반의 변화, 외국과의 분쟁 등에 의해 지역과 개인의 정체성이 형성되고 그것이 개인의 삶에, 역사의 전체 흐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역사읽기의 중요한 한 방법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 중에서도 나탈리 데이비스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베르트랑드의 정체성이다. '16세기 프랑스에서 여성도 정체성이 있었는?' <마르탱 게르>을 보면 그 대답은 긍정적이다. 베르트랑드는 롤스라는 집안, 아르티가에서 상당히 유력한 가문의 딸이다. 그녀의 행적을 볼 때 그녀는 상당히 주체적이고 진취적인, 일종의 상인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던 듯 하다. 그녀 역시 자신의 친정과는 사뭇 다른 게르 집안의 전통을 감지했을 것이고 거기에 적응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녀는 마르탱처럼 떠날 수 없었고 적응해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 가짜 마르탱의 등장은 그녀가 가지고 있던 성향을 펼칠 수 있는 호기였고 다행히 가짜 마르탱 역시 그녀와 유사한 정체성을 가진 인물이었다. 사실 데이비스는 가짜 마르탱 게르가 마을에 적응하고 (진짜 게르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재판에서도 유리한 입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베르트랑드의 적극적인 계획과 협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며 서술하고 있다. 데이비스는 이러한 베르트랑드를 통해 16세기 프랑스에서도 여성의 정체성이 형성될 수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교과서적인 역사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던 한 개인의 사건을 통해서, 구체적인 사실로부터 역사를 복원해 나가는 이러한 시도는 다양한 역사읽기라는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이고 역사에 재미를 부여해 준다. 또 영화에서 시작한 연구작업은 영화가 역사의 텍스트가 될 수 있느냐에 대한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이에 대한 해답은 독자 여러분이 각자 고민해 봐야할 문제...

참! 다니엘 비뉴 감독의 <마틴 기어의 귀향>(헐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지루할 수도 있긴 하다는 단점은 있다)을 함께 보고 책과 영화가 같은 사건을 어떻게 다르게 해석했는가를 찾아보는 것도 이 책을 보다 재밌게, 그리고 다양하게 생각하며 볼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일 것이다. 단, <마틴 기어의 귀향>을 18세기 미국버전으로 리메이크한 헐리우드 영화 <서머스 비>는 원작의 의미, 즉 역사적 사실과는 거의 무관하고 실망스러우니만큼 까대면서 볼 사람이 아니라면 보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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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의 비극 - 시그마 북스 013 시그마 북스 13
엘러리 퀸 / 시공사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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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러리 퀸의 알파벳 시리즈 중 하나인 <Z의 비극>! 앨러리 퀸이 창조해 낸 또다른 명탐정 드루리 레인이 활약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갓 출옥한 늙은 죄수가 하루도 안 되어 다시 살인 용의자가 되자, 그의 무죄를 확신하는 젋은 여성인 페이션스와 늙은 명탐정 드루리 레인이 증거가 없어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페이션스의 눈으로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또 하나 두 번의 사형 장면이 나옴으로써 숨막히는 클라인맥스에 도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알파벳 시리즈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Y의 비극>이지만, 나름대로 추리소설을 즐겨읽는 입장에서 평가하건대 <Z의 비극> 역시 그에 뒤떨어지지 않는 수작이라고 감히 자부할 수 있다. 서스펜스와 스릴, 그리고 단순한 두뇌 게임과 오락적인 성행에만 치우치지 않은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인류애, 성숙한 사건 전개와 심리 묘사에 대한 묘미를 한껏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독자에게 모든 단서를 주고 추리게임에 동참을 유도해 놓고는 끝에 가서 기막힌 반전으로 독자를 경악시키는 앨러리 퀸의 능력이 맘꺽 발휘된 수작이다. 이것이 앨러리 퀸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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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들의 거짓말
장클로드 카리에르 지음, 김장호 옮김 / 영림카디널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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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세계 각지의 우화들 중 '철학적'으로 생각할 거리가 있는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철학이라는 말이 들어가긴 했어도 논어 맹자의 이야기를 그대로 인용하거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현학적인 어투도 없다. 쉽고 재미있는 짤막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아차, 이런 것이었구나' 하고 삶을 돌아보게 한다던가, 슬며시 웃음을 자아내어 일상의 피곤함을 날려버리게도 한다. 아무래도 동양한 전문가가 2000권이 넘는 동서양 책 가운데서 가려 뽑은 것이라고 하니 어느 정도 수준은 보장된 것이리라...

또, 이 책에는 각 나라의 이야기가 섞여 있다보니 종교와 전통이 제각각인 각 민족들의 사고방식의 차이 또한 그대로 이야기에 녹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문화비교를 원하는 사람들은 쉽게 넘어가는 이 책을 한 번은 더 생각하면서 꼼꼼히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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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한옥
신영훈 지음, 김대벽 사진 / 현암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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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를 다니면서 가장 많이 본 것은 사찰에 있는 탑이니 불상이니 법당이니 하는 것 다음으로 우리의 옛 한옥이었다. 따지고 보면 오래된 사찰의 법당 역시 우리 한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화려하지도 않고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어 가끔은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우리 한옥에는 점잖은, 그리고 볼수록 정감이 가는 멋이 깃들어져 있다.

신영훈 선생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한옥>에는 이러한 한옥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이 그다지 호들갑스럽지 않으면서 차분한 어조로 조목조목 담겨 있다. 저자 자신이 고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목수인지라, 한옥에 대한 구조며 그에 따른 장점들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또 전국 곳곳의 빼어난 한옥들이 사진으로 담겨져 있어 눈 또한 즐거운 여행을 만끽할 수 있다.

인사동에도 고층빌딩이 들어서고, 한옥들이 많이 남아있던 삼청동 동네에도 반듯반듯한 양옥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점점 사라져 가는 한옥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하기에, 그만큼 우리 한옥의 멋스러움이 자랑스럽기에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이 뿌듯함 반, 아쉬움 반 그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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