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103 소설Y
유이제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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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103은 괴생명체의 습격으로 터널에 모여 살던 이들이, 식수 문제로 난관에 봉착하며 그 이야기가 시작된다. 평화로웠던 검은과부거미섬은 어느 날 무피귀라는 존재가 나타나면서 일상이 뒤바뀌고 만다. 이후 주인공인 다형을 포함한 마을 사람들 몇몇은 마지막 피난처였던 터널로 향하게 되고 이곳에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세상과 단절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일상은 오래가지 못한다. 식수에 바닷물이 유입되는 일로 인해 비교적 안전한 내부에서 다른 수를 강구할지, 환기팬을 뜯고 나가 새로운 수를 찾아야 할지를 두고 마을 사람들은 갈등하게 된다.

누군가의 말처럼 조금의 바닷물이 유입되었을 뿐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종말을 늦추는 것밖에 되지 않는 상황. 이런 갈등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마치 당신이라면 이 문제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 묻는 것만 같았다. 이후 다형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러 터널 밖으로 나가게 되는데, 터널 103은 터널 밖 다형의 여정과도 같은 셈이다.

소설이 내게 깊은 감상을 남긴 이유는 이 여정 속에서 다형과 승하, 그리고 수많은 인물들이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는 점이다. 안전한 터전에 남을지, 어쩌면 가망 없을 여정을 지속할지. 나 하나만을 구할 수 있는 선택을 할지, 모두를 구하는 위험을 감수할지. 또한 전개되면서 밝혀지는 진실은 모두가 이타적인 선택을 하지만은 않는다는 잔인한 사실을 여실히 보여 준다.

이타적인 선택이라는 표현을 인간적인 선택으로 적다가 고쳐 썼다. 사실 어느 선택도 인간적이지 않은 선택은 없었으므로...... 그렇다면 인간성이란 무엇일까 하는 고민도 했다.

디스토피아 배경과 크리처라는 재미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담은 소설 같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런 생각할 지점을 조금 더 깊게 파고들어도 좋았을 텐데 반전을 위한 장치로만 사용된 것 같았고, 다양한 크리처들이 나오면서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스케일이 커지는 건 좋지만 과한 느낌.

인생은 어쩌면 선택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그리고 터널 103을 통해 타인의 삶을 통채로 들여다보면서, 그 선택의 갈림길을 같이하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생각과 고민이 모여 보다 좋은 선택과 결정을 하는 내가 되기를 바란다. 단숨에 읽어내리기 좋은, 흡입력 좋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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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을 비는 마음
김혜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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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소설은 모두 집에 관한 이야기다. (290)

오늘날 주거 문제는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자 숙제와 같다. 삶에 있어 불가결하고, 매일같이 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일상적이지만 때로는 냉혹하고 차가운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집을 주제로 한 단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아늑함보다는 서늘함을 먼저 느꼈다.

책 속 인물들은 어떤 집단 또는 공간에 속해 있지만 동시에 임대 주택, 재개발 구역, 정규직과 계약직, 임대인과 임차인 등 어떤 잣대로든 분류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이 기거하는 집은 때에 따라 잿빛 담벼락 너머에 자리한 수많은 주택 중 하나가 되기도, 매일 새로운 서사가 탄생하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움트는 공간(227)이 되기도 한다.

집의 서늘한 이면을 느끼고 움츠러들 때쯤, 앞서 존재하는 단편들을 지나고 나면 후반부에서는 분위기가 전환된다. 좁은 집, 불분명한 내일, 염증을 느끼는 일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미래와 축복을 비는 마음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이 점에서 작가가 집이라는 공간을 얼마나 다양한 시각으로 관철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순서를 따라 읽다 보니 집이라는 공간 자체의 일대기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

곪아가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마주하게 만드는 작가. 나는 김혜진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한 순간부터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이번에도 그 통찰력을 엿볼 수 있었는데 각각의 집을 이루고 있는 배경들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 임대 주택, 재개발 구역, 임대임차의 사각지대, 부당한 노동환경 등 주인공들이 놓여진 상황을 접하면서 나 역시 다시 한번 사유하게 됐다. 어떻게 집이라는 공간 하나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조명할 수 있는지, 생각의 길을 열어줄 수 있는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축복을 비는 마음은 집에 관한 이야기지만, 집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그때가 아주 오래된 일처럼 느껴졌고, 새삼 좋았다고 생각되었다. 아니, 불행과 비극 속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여겼던 그 시간들이야말로 정말 좋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102)

사전적인 의미를 넘어 집이란 공간이 내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또 우리가 진정 갈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었다. 여담이지만 앨범에서는 트랙 순서를, 책에서는 배치 순서를 신경 쓰는 편인데 ‘축복을 비는 마음’의 흐름은 정말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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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보다 Vol. 2 벽 SF 보다 2
듀나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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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점이 없어 무엇이든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SF라는 장르는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벽이라는 단어가 주는 감상은 다소 제한적인데, 상충되는 두 가지 키워드가 만났을 때 어떤 이야기가 탄생할지 기대감을 품고 읽었다.

벽은 나누고 막고 제한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7)

그러나 그 벽을 넘을 수 있다면. 벽이 존재하기에 벽 너머를 상상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벽은 공간을 제한하기도 하지만 구분 짓는 역할도 한다는 걸,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는 걸 SF보다 시리즈를 통해 느꼈다.

평소 보다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작가와 독자 사이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인데 이번에도 역시나 새로운 세계를 엿보기에 충분한 밀도의 단편들이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벽이라는 키워드가 방해되지 않았고 오히려 같은 장르, 하나의 키워드 안에서도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이렇게 획기적인 시도가 더더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단편은 무르무란. 고전 설화 같은 이야기로 독특하고도 서늘했다. 존재했지만 지금은 잊힌 그 옛날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서 흥미진진했다.

평소 SF라는 장르를 좋아한다면, 비슷비슷한 SF 소설이 지겨워질 참이라면 이 단행본을 권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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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빛을 따라서
권여름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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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빛을 따라서는 은동이가 할머니의 비밀을 우연히 알게 되고 이후 본인의 비밀도 지키려고 모종의 거래를 진행하면서 시작된다. IMF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점을 지나치게 극대화하지 않고 그저 한 가족의 일상과 한 철을 보여 주는 방식에 나의 이야기처럼, 내 이웃의 이야기처럼 빠져들었다.

은동이네 가족이 운영하는 필성슈퍼는 어느 날 고장에 출사표를 던진 엉터리마트 때문에 위기에 봉착한다. 개업 첫날 계란을 나눠주고 에드벌룬으로 홍보하는 등 큰 규모의 엉터리마트의 성황을 필성슈퍼가 막아낼 방법은 없는 듯싶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두부 한 모라도 배달하고 배추 한 포기라도 절여 주면서 위기의 시절을 지나간다. 개인적으로 이 대목을 이겨 낸다고 적어야 할지, 극복한다고 적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 왜냐면 특이하게도 은동이네 가족은 좌절하지도 그렇다고 애써 힘을 내지도 않고 묵묵히 나아갈 뿐이며, 위기를 넘긴들 막강한 해피 엔딩이 기다리지고 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저 일상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 점이 나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저 계속되는 것. 설령 또 다른 위기가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딱히 대단한 승리는 아닐지라도. 그저 평화로운 일상을 지속하기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 어쩌면 내 모습이고 내 주변의 모습일, 삶의 속성 같은 부분들.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은동이와 그 가족들이 가깝게 느껴졌을까. IMF의 무게를 직접 짊어진 적 없는 나지만 어쩌면 좌절할 시간도 없었을 그때의 무게를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었고, 인물들의 배움을 응원하고 좌절에 마음 아파하며 읽었다.

중간중간 가족을 둘러싸고 있는 빛을 느낄 수 있었는데, 책의 제목처럼 작지만 환하고 따뜻한 빛이었다. 감정과 체력 소모가 많은 연말,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숨을 톺아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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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와 파도 -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우수상 수상작 창비교육 성장소설 8
강석희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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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숨어야만 하는 현실과 피해 사실을 흐리게 만드는 의심과 소문들, 폭력의 정당화를 고발하는 글일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모든 어려움을 ‘연대의 마음’으로 견디고야 마는 성장 소설이기도 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모든 연대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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