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거닝 - 채식에 기웃거리는 당신에게
이라영 외 지음 / 동녘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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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1년 동안 있으면서 육식을 하지 않는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전까진 채식주의는 나와 먼 이야기였다. 해외여행 중 만난 몇몇 친구들이 채식을 지향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내 일상에 채식주의가 개입된 적은 없었다. 가장 친한 친구들 중 몇몇이 육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채식주의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우선 채식주의자 친구와 함께 밥을 먹을 땐, 고기를 완전히 배제한 요리를 했어야 했다. 처음엔 고기 없이 채소만으로 음식을 한다는 것이 어색했다. 고기 없는 식단이 낯설고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점점 적응이 되면서 야채만으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요리를 고민했다. 또한 개인의 취향에 따라 재료를 자유롭게 넣고 뺄 수 있는 식단을 활용했다. 케밥, 김밥, 타코 등은 재료에 따라 육식이 될 수 있고 채식이 될 수 있다.

나의 주변에 채식주의자 친구가 생기니 식사 초대를 할 때에도 이것에 대해 유의하기 시작했다. 내 친구들이 모두 육식주의라고 생각했을 땐, 그들의 취향을 묻기보다 내가 그들에게 대접하고 싶은 것만 준비했다. 내가 다 잘 먹으니, 모두가 잘 먹을 것이라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채식주의자들을 만나면서 사람들이 못 먹는 것이나 안 먹는 것이 있다는 걸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식사 초대를 할 때, 그들에게 못 먹는 것이나 안 먹는 것이 있는지 꼭 물어보게 됐다. 상대방인 채식주의자인지 모른 채 육식 위주의 식사를 준비하면, 모두가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식사를 위해선 사전에 다른 사람의 식습관을 알아야만 한다.

친구들과 가까워지면서 채식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비거닝에서 작가들이 자신과 채식의 이야기를 채워나가는 것처럼 나의 친구들도 채식에 관한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었다. 친구들은 저마다 채식을 시작한 이유가 다양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엠프레스는 태어날 때부터 채식만을 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채식주의자여서 그에겐 채식은 자연스러운 식단이다. 육식에 익숙한 사람들이 채식을 이해할 수없이 쳐다본다면, 그에겐 육식이 그러지 않을까? 그래서 그는 육식에 대해 어떠한 관심도 없다고 한다. 또 어떤 친구는 친구들 때문에 채식주의자가 됐다고 한다. 채식에 대한 어떠한 사전 지식 없이 시작했는데 자신과 채식이 잘 맞는 것 같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이외에도 환경 오염, 동물권 등에 대한 생각으로 인해 육식을 포기한 친구들도 있다.

채식을 시작한 이유도 다르지만, 이들은 채식을 지향하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다. 채식주의자가 다 같은 채식주의가 아니란 것이다. 페스토, 비건 등 채식을 지향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빨간 고기만 안 먹는 사람,  유제품도 안 먹는 사람, 채소를 제외한 모든 육식을 하지 않는 사람 등 스펙트럼으로 퍼져 있다. 책의 제목이 비건, 채식주의자가 아니라 비거닝이라 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채식은 고정된 점이 아니라, 육식에서 완전 채식으로 나아가는 선 위에 있는 식단이라 할 수 있다. 비거닝의 작가들이 서로 다른 채식 식단을 하지만, '비거닝'이라는 큰 지붕 아래서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다. 그런데 이러한 채식의 구분에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내가 육식을 하지만, 채식을 더욱 선호한다면? 나는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나의 식단을 육식의 프렘이 아니라, 채식 프레임으로 바라보면 나는 채식주의라고도 불릴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책에도 나왔듯이 외국은 채식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것 같다. 특히 유럽은 나의 경험 채식주의자가 살기 편한 곳이다. 마트나 식당을 가도 채식을 쉽게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식당엔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가 있어서 따로 특별 메뉴를 부탁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한국은 이러한 문화가 아직 낯선 것 같다. 대부분의 음식에 고기가 들어가니 말이다. 비거닝에선 우리나라가 전통적으로 채식 식단이 발달됐다고 하는데, 이는 과거에 우리나라가 궁핍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사람들도 고기를 원했겠지. 하지만 그들에게 고기가 너무 비싸 음식 재료로 사용할 수 없거나, 아주 조금만 넣는 것이 식문화로 자리 잡은 것 아닐까? 즉 환경과 상황에 맞춰 식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전통적 식문화를 외치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에 비해 경제는 발전했고, 사람들은 고기를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역량이 생겼다. 그러니 자연스레 고기가 곁들여진 식문화가 발전하는 것이다. 나는 이 두 식문화 모두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가 좋다고 과거로 모두 돌아가자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율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채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환경의 이유를 가장 많이 든다. 책에서 나오듯 축산업이 전 세계 탄소의 14.5%를 배출한다고 한다. 이는 전 세계 자동차, 기차, 항공 산업의 배출량을 다 합친 것보다 많다. 또한 가축들은 전 세계의 77% 작물을 소비하고, 인간은 가축을 통해 오로지 18% 칼로리를 소비한다. 이에 따라 그들은 육식이 에너지 효율도 좋지 않고 자연을 파괴하니 채식을 지향하자고 한다.  나는 이것만이 채식 지향의 원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자연에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을 지향한다면, 지금의 발전이 이룩한 수많은 것들을 인간은 포기해야 한다. 우린 이러한 발전이 자연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포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주는 편리성이 너무나도 달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의 선택에 따라 이 편리성을 포기하고, 자연에게 주는 피해를 최소화하려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순전히 개인의 선택이다. 누구도 이를 강요할 수 없다.

채식 역시 선택의 문제다. 또한 이것이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음식 중에 내가 먹고 싶은 것, 먹기 싫은 것을 고를 수 있는 자유! 가축이 태어나면서 고통을 받지 않은 적이 없기 때문에, 공리주의 관점에서도 채식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들로부터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나는 이러한 동물권 주장이 오만한 생각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지극히 인간 중심적이라고 해야 할까? 그들을 고문하며 고통스럽게 죽이는 것에 대해서 반대한다. 하지만 생태계를 보면 누구는 누군가에게 먹히고, 또 그것은 다른 누군가를 먹는다. 이것이 자연이 작동하는 원리다. 인간은 이 안에 속한 조그만 존재에 불과하다. 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다. 그런데 왜 인간은 다른 생물을 먹으면 안 되는 것인가? 자연의 흐름 속에서 다른 생물을 먹을 걸 금지하는 것은 누가 지닌 권리인가?

채식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책이었다. 지금까지 산재해 있던 생각들을 작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하지만 책의 문체가 약간 부담스럽다. 이라영 작가의 정치인의 식탁에서 느꼈던 불편함이 나에게 온다. 불편함보다 불쾌감이라고 할까? 채식주의자는 깨어있고, 우월하다는 인식이 글에서 느껴질 때가 있었다. 뭐. 채식에 기웃거리는 당신에게 보내는 책이니, 그러한 독자들에겐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언젠가 육식을 포기하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고기가 좋아서 그런지 강요 당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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