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 정보사회와 인간의 조건 한길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5
아담 샤프 지음, 구승회 옮김 / 한길사 / 2002년 6월
평점 :
품절


중고서점을 구경하면서 1989년에 발간된 오래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출간된 시기에 비해 책의 제목이 현대적이라서 눈에 띄었다. 표지에 적힌 '정보사회'는 지극히 현대적인 용어다. 그 당시에 정보화 사회를 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에게 이 책이 매력적이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 아담 샤프라는 폴란드의 마르크스주의 학자는 정보화 사회에 대해 어떠한 이야기를 펼쳤을까 궁금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아담 샤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출판사가 한길사라서 의심의 여지없이 이 책을 구매했다. 한길사라면 읽을 가치가 있는 외국의 서적만 번역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학술명저번역총서의 일환으로 번역된 책이기에 어떻게든 도움이 될 책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가독성이 너무 좋지 않았다. 가장 먼저 번역의 질을 의심했다. 번역가를 검색해 보니 내가 최근에 포기한 책의 번역가였다. 그 책의 제목은 '이데올로기'다. 내가 이데올로기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상투적으로 이 용어를 난발하는 것 같아 더욱 적확한 이해를 위해 구매했었다. 적은 분량의 책이었는데, 진도를 쉽게 나갈 수 없었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하는 문장이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읽다간 시간을 낭비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포기했는데, 똑같은 번역가를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만났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과연 그분은 이러한 번역을 하고 떳떳할지 궁금하다. 분명히 주변에 그와 함께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 번역을 했을까.

독서의 어려움을 오로지 번역가의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구승회 번역가는 평생을 학문을 업으로 한 사람이다. 그는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한국의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그와 나의 학문적 역량 차이는 엄청날 것이다. 이 책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은 학자로서 그의 정신적 자본일 수 있다. 즉 그와 같이 오랫동안 학문과 씨름을 한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개념들이 이 책에 채워졌을 가능성이 높다. 학자들만 공유하고 있는 전문 용어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들과 같이 학문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고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정신적 자본을 탐하는 것은 오만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 책에서 주로 활용되는 마르크스주의의 용어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아니, 전무하다. 작가가 적극 활용하는 개념틀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과한 욕심일 수 있다.

무슨 오기인지 이 책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넘기더라도 이 책을 다 끝냈다는 쾌감을 느끼고 싶었다. 모든 것을 소화하겠다는 마음은 진작에 버렸다. 그저 읽다가 나에게 사고의 초대장을 던지는 구절들만을 포착하려고 애썼다. 불확실한 이해 속에 모인 구절들은 다양한 생각거리를 던져줬다. 이는 나에게 현대 사회의 변화와 그 안에서 인간의 역할 및 모습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다. 작가가 이를 의도했는지는 모른다. 또한 그가 책에서 서술한 것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의 생각이 흐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흩날려 있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책의 제목에 나타난 길은 무엇을 나타낼까? 현대 인류는 어떠한 길 위에 있을까? 독자마다 이 책에서 뽑아낸 길의 모습은 다를 것이다. 내가 생각한 길은 정보화, 자동화로 대변되는 진보의 길이다. 현 인류는 정보화와 자동화로 인해 수많은 이점을 누리고 있다. 과거에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기술의 발달로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 길은 그 자체로 어떠한 가치를 내포하지 않는다. 인간이 이 길을 어떻게 활용하냐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된다. 좋아 보이는 길이 인간의 잘못된 활용으로 사회에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많은 사건들이 보여줬다. 즉 이 길이 이어지는 곳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존재다. 이 활용이 항상 인간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인간의 자율성을 해치는 것에 대해 아담 샤프는 부정적 입장을 취한다. 인간의 자율성은 존중받아 마땅하며, 부작용으로 인해 자율성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선한 결과를 이끌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똑같은 발견을 갖고 새로운 낙원으로 가는 길을 여는 데 사용할 수도 있고,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무엇보다도 처참한 새로운 지옥 문을 여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겨웅에도 인간의 지식과 지성의 오용 위험을 빌미로 활용 금지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은 30년이 넘은 책이지만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정보화가 이뤄지면서 인간들에게 많은 지식과 정보의 접근성이 용이해졌다. 과거엔 이러한 것들이 전문가라는 소수의 집단에만 허용된 것들이다. 그 당시엔 지식 그 자체가 권력이었으며 전문가들을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지식에 대한 접근을 제한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문가만이 갖고 있는 지식의 범주가 줄어들고 있다. 둘 사이의 장벽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기술의 발달로 이 장벽의 높이와 두께가 완화되고 있다.

최근에 어느 한 지인과 대중 지식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전문가와 일반 대중이 구분돼야 하기 때문에 대중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대중 지식인은 일반 대중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학문의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둘 사이의 장벽이 사라지는 것이 학문의 진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중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학문의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는 건 오로지 전문가 집단의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걱정하는 것이 대중의 오해라면, 그전까지 대중은 지식이 없던 채로 전문가 집단에게 의존했거나 기만 당하기 일쑤였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학문의 장에 들어오면, 지식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식 생태계 교란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교란의 기준은 누가 설정하는 것인가. 현재는 지식 생태계가 어떠한 문제 없이 잘 이뤄지고 있는가.

지식의 장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면, 손해를 보는 것은 이곳에 속한 소수의 학자 집단이다. 이들이 그들이 지금껏 누리던 것을 포기하는 것을 반가워할 리가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기술의 발달로 지식 생태계 변동이 지속적으로 일어나 중심화 과정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엔 중심화를 통한 효율성이 높이 평가됐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중심에 벗어난 존재들과의 차별을 부추기며,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만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탈 중심화는 지금껏 삐뚤어졌던 힘의 균형을 제자리로 돌리는 데 기여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의 구성원들 좀 더 수평적인 입장에서 협력과 소통을 할 수 있게 된다.

그가 지역주의/애국심의 확장 개념으로서 세계주의를 소개한 부분은 인상적이었다. 현재 우리가 지닌 문제점이 가장 두드러진 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외적 조건은 현재 세계화의 과정에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민족주의/ 국가주의에 머물러 있다. 현대 인류는 세계화로 인해 막대한 이점을 누렸다. 세계화로 인해 많은 발전을 이룩했고,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국가와 국민에게 다른 집단은 그들과 동등한 가치로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에게 외부 집단은 수단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선 자기 집단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둬 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일상이다. 요즘 대두되고 있는 난민 문제 역시 오로지 민족과 국가 중심으로 수많은 국가와 민족들이 난민을 바라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세계주의는 개인을 하나의 국가에 속한 국민이 아니라 세계 시민으로서 인식하는 사조다. 이렇게 되면 개인은 자신이 속한 좁은 집단의 이익 추구를 넘어 전 지구적 보편적 가치 추구에 힘쓸 수 있다. 이것은 기존의 민족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이 결코 아니다. 세계 시민으로서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는 자신이 속한 조그만 집단에게도 이점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폭넓은 문화를 접하고, 많은 나라와 그 나라의 언어와 도덕에 대한 지식을 가진 세계 시민은 각 문화가 지닌 독특성에 대해 인정하게 된다. 이는 자연히 자신의 문화나 국가가 지닌 독특성을 인정하며, 또 다른 의미의 애국심을 키운다.

기술의 발달은 산업의 자동화를 가능케 한다. 수많은 기계들이 인간의 일을 대체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량 실업이 나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인간의 노동력 투입 없이도 사회에서 요구하는 양의 생산물을 얻을 수 있는 여건이 되고 있다. 더 나아가 사회의 요구보다 많은 초과 생산물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이 노동을 하지 않아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 충족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인간은 단순노동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는 인간이 노동 없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도록 요구받는다. 이에 대한 방법으로써 유발 하라리가 말한 것처럼 기본 소득이나 무상 사회 복지 서비스가 활용될 수 있다.

아담 샤프는 제도적 측면보다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자동화로 대체될 노동은 단순노동이다. 창조적인 노동은 절대 기계에 의해 대체되지 않을 것이고, 이와 관련된 직업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기계와 인간의 관계는 이분법적으로만 바라봐선 안 된다. 이 둘은 상보적 관계로서 협력을 통해 더욱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창조적인 인간을 육성하기 위한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간은 기계의 진보 여하에 자신의 운명을 내맡기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제한된 조건에서도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존재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미래는 기술 발달에 의해 결정되는 운명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에 의해 창조되는 것으로서 우리에게 열려 있다. 무대 위에서는 전체 역사의 발전 과정 동안 현존하는 자기 창조적 인간, 즉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창조해내는 인간이 행동한다. 그가 이 운명에 자의적으로 형태를 부여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정한 조건 아래 그리고 이와 부합하는 가운데 그는 자신에게 제공되는 대안들의 틀 속에서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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