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희의 밥과 숨
문성희 지음 / 김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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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한 알의 작은 씨앗에 불과했던 어떤 가능성이 땅에 심어져 흙에 뿌리를 내리고 햇빛과 공기와 비로 키워지는 동안 형체와 성질을 달리하여 산나물이 되고, 콩나물이 되고, 무와 감자가 되고, 쌀이나 과일이 되어서 나를 위한 먹을거리가 된다.
 
 
농부들은 이렇게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다. 농부들의 창조 작업은 자구 상의 모든 것이 협조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음식을 일생에 걸쳐 연구한 음식 전문가다. 노년이 됐을 때 자신의 전문 분야가 있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것 같다. 전문 분야라는 것은 남이 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 즉 나만의 분야인 것이다. 너도 나도 다 할 수 있는 것을 전문 분야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전문 분야라는 말이 어느 특정 영역에만 붙일 수 있냐? 그것도 아니다. 모든 것에 다 붙을 수 있는 말이지만, 너도 나도 할 수 없는 것을 전문 분야라 부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전문 분야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남을 답습하는 것은 내 것이 아니다. 전문 분야가 될 수 없다. 전문 분야가 되기 위해선 남을 답습하고 연습을 반복해 나만의 색을 입히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문성희 역시 그렇다. 음식은 누구나 한다. 나 역시도 한다. 그런데 그의 음식은 오로지 요리법만을 보고 할 수 있지 않을 것이다. 그가 지금껏 음식을 다뤘던 손이 필요할 것이고 그녀가 음식을 대하는 철학이 필요할 것이다. 그는 요리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남들이 다 할 수 있는 요리를 자신의 색을 입힘으로써 남들이 할 수 없는 그만의 전문 분야를 구축했다. 분명히 이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포기하고 싶은 시련이 반드시 찾아온다. 그 시련을 겪으면 자신의 생각을, 철학을 담아냄으로써 그만의 전문 분야가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버텨나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순간에 몰입하고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복잡하고 바쁜 시간과 시간의 틈 사이를 비집고 고요히 앉아 숨 고르기에 열중했다.
 
나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을 이미 하늘이 준비해두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숨을 쉰다는 것 외에 또 다른 존재함이 있기나 한 것일까? 지금 이 순간 그저 숨 쉬고 있다는 것, 그것만이 내가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일과 나 자신의 간격은 어느 정도가 필요한 것일까? 관계와 일 속에 매몰되어 허우적거리고 있는 동안 삶은 더욱더 엉켰고, 시시로 원치 않는 상황들이 다가와 내 선택의 여지를 좁혀갈수록 나는 허허로웠다. 엄청난 고독을 직면해야만 나의 존재성이 얻어진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오히려 평온해졌다.

이 책을 읽을 당시 학교에서 요리 실습이 있었다. ‘요리는 요리법만 보고 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절대 그렇지 않았다. 요리법을 보고도 내가 생각한 맛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요리하는 과정 말고도 준비, 정리 과정은 그 이상으로 힘들었다. 참 쉬운 일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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