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왕이 되는가 - 스릴과 반전, 조선 왕위 쟁탈기
조성일 지음 / 가디언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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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쓴 서평글입니다.


시대의 운명이 결정되는 왕위 쟁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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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스물여섯 명 중 그들 가운데 손쉽게 왕위에 오른 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왕실에서 왕이 되기까지는 그야말로 암투 그 자체였다. 왕비에게서 적장자가 있다면 다행이겠지만(사실 적장자도 100% 안심할수는 없다), 적장자가 없다면 후궁에서 생산된 서자 중에서 누구를 택해야 할지, 그리고 자식을 둔 후궁들만의 전쟁이 아닌 '왕'을 차지하기 위한 외척 세력을 비롯해 당대 권력자들까지 왕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은 처음 태조에서 시작해 순종에 이르기까지 흥미롭지 않은 곳이 없었다. 우리는 꽤 많은 조선왕들의 즉위 과정을 드라마나 영화, 미디어 등을 통해 꽤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편견과 선입견도 많이 들어있고 조선 왕 즉위기는 당사자들에게는 사실상 피나는 고통이었으며 지금의 우리 후손들에게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남아있다. 하지만 그러한 고통과 흥미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반면교사로 작용하여 인간의 본능에 대한 통찰과 함께 역사적 교훈을 안겨다 주고 있다.

조선의 왕비와 후궁들은 자기 아들을 세자 삼기위 해 갖은 노력과 싸움을 벌였다. 읽다보면 굳이 그렇게까지 했어야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인간의 권력의 맛은 한번 누리면 누구든 헤어나올 수 없고 끝이 없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때로는 속이고,모함하고,죽이고 하여 세자로 책봉된다 한들 절대 안심할 수 없는 것이 그 자리이다. 지은이는 2년간 태조에서 고종에 이르기까지 한 명씩 공부와 집필을 거듭하길 26번을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책을 쓰면서 공부다운 공부를 했다고 하니 그걸 한번에 꿀꺽 하며 읽는 나로서는 새삼 죄송한 마음도 있지만 이 기회를 빌어 정독하여 스물여섯 명의 조선왕에 대해 다시금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차례를 보면 태조에서 고종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왕에 대해 한 문장으로 요약하여 설명한 점이 눈에 쉽게 잘 들어와 좋았다. 가령 '스스로 왕 자리를 꿰차다, 태조", '무력으로 조카의 왕위를 빼았다, 세조' 처럼 조선 왕들이 어떤 배경으로 어떻게 왕위에 올라왔는지 차례를 보며 한번 훑어보고 읽기를 시작해본다면 훨씬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스스로 왕 자리를 꿰차다 '태조'

태조 이성계는 아시다시피 세자에서 왕위에 오른 경우가 아니다. 그는 고려 왕조를 멸망시키고 위화도 회군을 통해 새 나라 '조선'을 건국하여 스스로 왕의 자리를 꿰찬 인물이다. 당시 이성계는 누구나 인정하는 무관이었지만 그의 이름은 중앙 정계에서 미미하였다. 이같은 핸드캡을 그는 정몽주를 대표세력으로 하는 신진사대부들과 어울리며 채워 넣었다. 그는 결국 위화도 회군을 통한 쿠데타로 권력을 잡게 되는데 이때 정몽주와 틀어지게 되고, 이는 훗날 태종이 되는 다섯째 아들 방원이 정몽주를 죽이면서 아들과도 갈등이 심해지는 계기를 겪게 된다. 왕자의 난으로 일컬어지는 이른바 태조,태종간의 갈등은 왕비의 문제도 컸다. 첫째부인인 신의왕후 한씨가 죽게되고 둘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씨가 버젓이 큰 태조의 첫째부인 아들들이 건장하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식을 세자 올리는 것을 강행하면서부터 안그래도 왕의 자리를 노리기 위해 꿈틀대던 그러한 불꽃의 씨앗이 타오르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결국 조선을 창업하여 참모들의 역할도 컸겠지만, 내조로 동지로 힘을 합한 부인들의 역할 또한 컸을 것이라고 본다.


 

 

물려받았을까, 꿰찼을까 '세종'

태종은 적장자를 세자로 올리기 위한 강압이 컸다고 한다. 그래서 첫째 부인에게서 낳은 맏아들 양녕대군을 바로 세자로 올려 진행하려고 했지만 우리가 미디어나 영화에서도 단골소재로 흔히 알듯이 양녕대군은 기행과 악행을 일삼아 결국 폐세자 삼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이 책에서 얘기하는 것은 과연 세종 충녕대군이 마지못해 물려받았을까, 조금이라도 세자 자리를 꿰차기 위해 노력했을까였다. 지은이는 충녕의 '욕망'도 없지 않았다고 본다. 또 역사기록에서는 <옛날 양녕대군은 태종의 뜻이 충녕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미친척 했다>라고도 쓰여져 있다. 충녕은 여러 차례를 거듭하여 태종의 뜻을 거절하였지만 이번 양위는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 어쩔 수 없이 왕좌에 올랐으며 그렇게 세종의 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가장 완벽한 정통성을 갖추다 '단종'

조선 시대 가장 완벽한 정통성을 가진 왕이면서도 가장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왕을 지칭하라면 한 임금, 바로 단종일 것이다. 세종의 다음을 잇는 문종은 맏아들 계승원칙에 적합했지만, 문종의 단명이 몰고 온 후폭풍이 너무 강하게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른바 막강한 왕권을 지녔던 태종의 아들들(수양대군, 안평대군 등)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종은 열 살 때에 세자로 책봉되었다가 열두 살 때인 1452년 아버지 문종이 죽으며 왕위에 오른다. 처음 단종이 왕위에 올랐을 때 수양대군은 납작 엎드린 척 하였지만 절대권력이 사라진 상황에서 각자의 세력들이 만들어져 각축을 벌이게 되고, 수양대군은 결국 쿠데타를 일으켜 성공하여 단종을 유배 후 결국 사사시킨후 세조로 올라서게 된다.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은 '수양대군이 일으킨 난'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의미는 '수양대군이 난을 집안'한 것이라고 한다. 난을 일으킨 사람이 난을 진압했다니, 즉 역사는 승리자의 편에서 기록되는 편파적인 모습을 여기서 볼 수 있었다.


 

소현세자 아들 제치고 동생이 왕 되다 '효종'

1627년 인종의 친명배금 정책으로 인해 후금이 조선을 쳐들어오며 정묘호란이 발생하고 '삼궤구고두례'로 상징되는 삼전도 굴욕을 겪으면서 '호란'은 끝나지만 조선은 말 그대로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 그러한 정국의 불안감은 세자 책봉을 서두르게 했으며 맏아들 '왕'이 열네 살의 나이로 세자로 책봉되는데 그가 바로 비운의 세자 소현세자이다. 나중에 소현세자는 1637년 인조가 청 태종 앞에서 항복 의식을 가진 후 퇴각하는 청군을 따라 동생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 심양에 인질로 끌려가게 된다. 하지만 소현세자는 청나라에서 나름대로 능력을 발휘하게 되고 아버지 인조는 아들이 아닌 '경쟁자'로 생각하게 되고, 소현세자 또한 인조의 통제 밖으로 튀어나간다. 그러던 소현세자는 갑자기 두 달만에 세상을 뜨는데 이는 영화로도 나온 것처럼 음모론이 난무하게 된다.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인해 맏아들 경선군이 있었지만 인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 아들 봉림대군을 선택하며 그는 '효종'으로 등극하게 된다. 봉림대군은 사실 둘째 대군이라 왕위와 가까운 듯 보여도, 이미 소현세자가 아들을 둔 만큼 세자에게 적장자가 있어 사실상 현실상이 낮았다. 왕위 될 듯, 될 수 없는 형용모순의 상황에서 왕위에 오른 케이스이다.


 

불가능을 뚫고 조선의 마지막 왕 되다 '고종'

대단원의 마지막을 장식할 조선의 26대 왕은 사실 순종으로 알고 있지만 분명하게 말하면 조선의 마지막 왕은 '고종'이라고 말한다. 고종이 1897년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선포하면서 사실상 조선시대는 막을 내렸고, 대한제국 시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종은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첫 번째 황제이고, '순종'은 대한제국의 두 번째 황제이만 1910년 일제의 조선 강제 병합으로 마지막 황제라는 수식어를 함께 갖는 것이다. 고종이 즉위하자 신정왕후는 수렴청정을 하게 되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흥선대원군이 틀어쥐게 된다. 시아버지 대원군과 며느리 중전 민씨 사이의 권력투쟁에서 며느리가 이기며 중전 민씨가 틀어쥐지만, 1895년 8월 20일, 일제가 낭인들을 시켜 명성왕후를 시해하는 사건이 일어나며 고종의 아관파천, 러일전쟁, 을사늑약, 고종 황제 강제 폐위, 한일병합조약 등에 이르기까지 슬픈 역사가 시작되게 된다. 1905년 이토 히로부미는 헌병의 총칼을 앞세우며 대신들에게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라고 윽박지른다. 그 때 동의하며 나라를 팔아먹는 5명이 우리가 아는 '을사 5적'인 것이다.


 

<번외편> 순종- 일제에 의해 억지로 황제가 되다

차례를 보면 태조에서 고종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왕에 대해 한 문장으로 요약하여 설명한 점이 눈에 쉽게 잘 들어와 좋았다. 가령 '스스로 왕 자리를 꿰차다, 태조", '무력으로 조카의 왕위를 빼았다, 세조' 처럼 조선 왕들이 어떤 배경으로 어떻게 왕위에 올라왔는지 차례를 보며 한번 훑어보고 읽기를 시작해본다면 훨씬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마지막 <순종실록>의 마지막 기사인 1910.8.29일자 '일본국 황제에게 한국 통치권을 양도하다'라는 제목의 글이 있어 이를 소개한다. 이렇게 태조 이성계에서부터 시작한 조선 왕조의 500년 역사는 일제에 강제 병합되면서 이렇게 막을 내린다.


조선 왕실의 최후는 이렇다. 순종은 슬하에 자녀가 없어 이복동생들 사이에서 후사를 결정해야 했다. 살아남은 동생은 세 명, 의천왕,영친왕, 덕혜옹주가 그들이다. 황태자가 된 영친왕은 곧바로 유학이라는 이유를 들어 강제로 일본에 보내지고 일본 황족인 마사코와 정략 결혼까지 한다. 의친왕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을사늑약이 있던 해 귀국하여 대한제국군 육군 부장으로 임관하였고 독립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공식적으로 이 왕가는 1947년 5월 3일에 소멸되었고, 지금은 '전주 이씨'로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총 스물 여섯명의 왕의 즉위 서사를 쭉 읽어보며 조선 500년 역사를 길고도 짦은 흐름으로 모두를 이해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참으로 흥미진진하고 숨이 막히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권력을 위한 그들의 왕위 쟁탈기를 읽으며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도 참 크다. 권력을 둘러싼 인간의 처절하면서도 무서운 본능을 다시금 깨달으면서 왕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얽힌 싸움의 서사를 한바탕 느껴보고 싶다면 적극 이 책을 추천한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쓴 서평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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