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관계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서로에게서 활기를얻는 관계고, 다른 하나는 활기찬 상태여야 만날 수 있는 관계다. 첫 번째에 속하는 사람들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방해물을 치운다. 두 번째에 속하는 사람들은 일정표에서 빈 곳이있는지 찾는다.
나는 가끔은 로라 같고, 가끔은 레너드 같다. 어쩔 때는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성향이 바뀌기도 한다. - P21

"그 사람들은 어른인 척한 거야." 레너드가 말했다. "그뿐인 얘기지. 40년 전에 사람들은 결혼이라고 불리는 벽장에 들어갔어. 벽장 안에는 옷이 두 벌 있는데 너무 뻣뻣해서 저절로서 있을 정도야. 여자는 ‘아내‘라고 불리는 드레스 속으로, 남자는 ‘남편‘이라고 불리는 정장 속으로 걸어 들어갔지. 그게 다야. 그 사람들은 옷 속으로 사라졌어." 레너드는 성냥을 켜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지금 우리는 척을 하지 않아. 벌거벗은 채로여기 서 있지. 그런 거야." 그가 담배를 빨아들인다. 나는 몇 달만에 처음으로 그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지켜본다.
"나는 이 삶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야." 내가 말한다.
"누군들 적합하겠어?" 레너드가 내 쪽으로 연기를 내뿜으며 말한다. - P41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있을까? 끊임없는 투쟁 속에 있다.
나는 세 차례나 구원 같았던 로맨스의 상실을 견뎌냈다. 사랑이라는 환상, 공동체라는 환상, 일이라는 환상의 상실이 그것이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잃을 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1970년 11월의 그 계시적이었던 첫 순간으로 돌아갔다. 초기의 페미니즘은 나에게 투명해지는 통찰의 생생한 번쩍임으로남아 있다. 그것은 나를 자기연민에서 구하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라는 비할 데 없이 훌륭한 선물을내게 선사했다.
나는 여전히 사랑 때문에 고심한다. 내 단단한 마음을, 그리고 또 다른 인간 존재를 동시에 사랑해보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나는 일을 한다. 매일의 노력은 여전히 몹시도 고통스럽다. 그러나 노력하는 한, 나는 로맨스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로맨스에 저항할 때,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힘겨운 진실을 꾸준히 바라볼 때 나는 조금 더 나 자신에 가까워진다.
페미니즘은 내 안에 살아 있다. - P61

친밀감이 무너져내린 것을 (그 일의 비정상성과 그것이 준충격을 슬퍼하는 동안 불행은 수치스럽게 느껴졌다(우리는 솔로였을 때보다 결혼한 뒤에 더욱 혼자가 되어 있었다). 수치심은사람을 고립시킨다. 그 고립은 굴욕적이었다. 굴욕을 느끼면 사람은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 P68

그리고 나는 동시에 바로 이것이 외로움임을, 외로움 그 자체임을 깨달았다. 외로움이란 내면의 삶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외로움이란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차단당한 상태였다. 외로움이란 바깥에 있는 그 무엇으로도 치유할 수 없었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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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프란츠, 그 벌레 부분은 과잉이지만 나는 허용하겠어. 계속해 봐. 당신은 내가 알아챌 수밖에 없는 그걸로 뭘 할거지? 보람이 있는 일이기를 바라."
작가는 우리를 비규범적 사건, 예컨대 물리적으로 있을 법하지 않은 상황이나 두드러지게 고상한 언어 (또는 두드러지게 일상적인 언어), 또는 어느 러시아 선술집에서 사건 도중에 사람들을 몇 페이지동안 정지 상태로 둔채 그들 각각을 차례차례 길게 묘사하는 일련의긴 일탈로 끌어들일 때 그 대가를 치른다. (중 략)
좋은 이야기는 과잉의 패턴을 만든 뒤 그 과잉에 주목하고 그것을 장점으로 전환하는 이야기다. - P137

당신은 단거리 선수들을 지켜본 그 긴 세월에서 영감을 받아 소중한 꿈을 키워왔다…, 단거리 선수가 되겠다고. 그러다가 21번째 생일을 맞아 방에서 풀려나 복도로 나서서 우연히 거울과마주쳤는데 자신이 2미터 키에 근육이 울퉁불퉁하며 136킬로그램이나간다는 것(타고난 단거리 선수는 아니다)을 알게 된다. 밖으로 나가 첫 100미터를 뛰어보니 꼴찌다. 그 상심이란! 당신의 꿈은 박살났다. 하지만 우울한 마음으로 트랙에서 걸어 나가다 체형이 당신 같은사람 한 무리를 보게 된다. 투포환 선수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 그 순간 당신의 꿈은 형태가 바뀌어 다시 살아날 수도 있다(단거리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은 그냥 운동선수가 되고 싶다는 거였어‘). - P172

따라서 승리의 순간이 되어야 하는 순간(내 목소리를 찾았다!‘)은또 슬프기도 했다.
마치 멋진 꿩을 가져오라고 재능이라는 사냥개를 초원 건너로 보냈는데 정작 물고 온 것은, 어디보자, 바비인형 하반신인 듯한 느낌이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해 보자. 나는 헤밍웨이 산을 최대한 높이 올라가다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거기에서는 시종이 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는 절대 모방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골짜기로 비틀거리며 내려오다 ‘손더스 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똥 무더기 언덕과 마주쳤다.
‘흠.‘ 나는 생각했다. ‘이거 너무 작은데. 게다가 이건 똥 무더기 언덕이야.‘
그렇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내 이름이 있었다. - P175

그런데 "밥은 안달을 내며 바리스타를 다그쳤는데, 바리스타를 보자 그의 죽은 아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가 몹시 보고 싶었고, 특히 지금처럼 크리스마스 시즌에 그랬다.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그녀가 1년 중 가장 좋아하던 때였다"라고 쓴 사람은 어쩐지 "밥은 재수 없는 인간이었다"라고 쓴 인간보다 나은 사람 같은 느낌이든다.
나는 늘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본다. 나는 진짜 나보다 내 이야기들에 있는 나라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 사람이 더 똑똑하고 재치있고 인내심 있고 재미있다. 세계를 보는 눈도 더 지혜롭다.
쓰기를 멈추고 나 자신으로 돌아오면 더 제한적이고 편견도 많고 편협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페이지에서 잠깐이나마 평소보다 덜 멍청해진 것은 얼마나즐거운 일이었는지.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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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눈이 가늘어지며 심장이 식어가는 걸 느꼈다. 처음으로-그러나 마지막은 아니었다ㅡ남자들은 나와는다른 종이라는 자각을 했다. 철저히 분리된 이질적인종 나와 내 연인 사이에 보이지 않는 얇은 막 같은 게드리워진 것만 같았다. 욕망이 침투할 만큼 성기되, 인간적유대는 어룽거리게 보일 만큼 불투명한 막 내겐 그 막너머에 있는 사람이 현실 같지 않았고, 나도 그에게 그런것 같았다. …(중 략)…
나를 사랑한다면서도 자기가 인격체라고 느끼는 데 필요한 것이 내게도 필요하다는 사실은 납득하지 못하는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그 막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 P38

우정에는 두 가지 범주가 있다. 하나는 서로에게 활기를불어넣는 관계고, 다른 하나는 활기가 있어야만 같이 있을수 있는 관계다. 전자는 함께할 자리를 미리 마련해두지만, 후자는 일정 중에 빈 자릴 찾는다.
전에는 이런 구분을 일대일 관계의 문제라고생각했었다. 요즘은 그렇다기보다 기질 문제라는 생각이든다. 그러니까 내 말은, 기질적으로 활기가 샘솟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게 일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다. 활기 있는 사람들은 자기를 표출하고 싶어 안달이지만, 그런 게 일인 사람은 쉽게 울적해진다. - P44

"나는 사는 게 적성에 안 맞아" 내가 말한다.
"누군들 맞겠어?" 그는 내 쪽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대꾸한다. - P48

놀라운 통찰이었다. 나는 몽상이 그간 내게 무슨 일을해주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무슨 짓을 해왔는지도기억할 수 있는 시점 이후로 평생, 나는 내가 무언가를원하는 상태라는 게 들통날까봐 두려웠다. 원하는일을 하면 기대에 못미칠게 분명했고, 알고 지내고싶은 사람들을 따라가봤자 거절당할 게 뻔했으며, 암만매력적으로 보이게 꾸며봤자 그저 평범해 보일 것이었다. 계속 움츠러들던 영혼은 그렇게 손상된 자아를 둘러싼 - P164

모습으로 굳어져버렸다. 나는 일에 몰두했지만 마지못해그럴 뿐이었고, 가끔 좋아하는 사람들을 향해 한 걸음다가서는 일은 있어도 두 걸음을 옮긴 적은 없었으며, 화장은 했지만 옷은 되는대로 입었다. 그 모든 일 중 무엇하나라도 잘해낸다는 건 별생각 없이 삶과 관계 맺는일, 다시 말해 내 두려움을 사랑했던 것 이상으로 삶을사랑하는 일이었을 텐데, 그것이야말로 내가 할 줄 모르는일이었다. 내가 확실히 할 줄 아는 건 몽상으로 세월흘려보내기였다. 그저 ‘상황‘이 달라져서 나도 달라지기를간절히 바라고만 있는 것.
예순이 된다는 건 앞으로 살날이 여섯 달 남았다는시한부 선고를 듣는 것과 비슷했다. 내일이라는 몽상속피난처로 숨어드는 것도 하룻밤 새 옛일이 되어버렸다. - P165

내게 없어선 안 되는 게 있다면, 바로 그 목소리들이다. 전 세계 도시란 도시에는 골목 돌길이며 허물어진 교회유적이 된 건축물마다 민중이 심겨 있다. 하나같이 몇백년 동안 한 번도 파헤쳐진 적 없이 그저 켜켜이 포개어올려진 것들, 뉴욕에서 나고 자란 이의 삶이라는 건구조물이 아니라 이 목소리들 그 어떤 목소리도 다른목소리를 밀어내지 않고층층이 쌓인 무수한 목소리-을다루는 고고학과도 같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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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당장 다시 만나고 싶은마음뿐이지만-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다보면 얄궂게 비꼬는 말과 부정적인 판단으로 가득했던저녁의 여파가 밀려드는 게 온몸에서 살갗으로 느껴지기시작한다. 심각한 상처도 아니고 고작 살짝 긁힌 생채기가느다란 바늘 천 개가 팔이며 목이며 가슴을 콕콕찔러대는 느낌 정도이지만 내 안의 어딘가, 이름조차붙일 수 없는 한구석은 머지않아 또 그런 걸 느낄 생각에움츠러들기 시작한다.
하루가 지난다. 그리고 또 하루 레너드한테 전화해야지, 다짐해보지만 몇 번이고 손을 전화기로뻗으려다가도 그만두고 만다. 물론 레너드도 똑같은심정이겠지, 전화가 안 오는 걸 보면, 행동이 되지 못한충동은 차곡차곡 쌓여 신경을 망가트리고, 망가진 신경은굳어져 권태가 된다. 복잡한 감정과 망가진 신경, 그리고마비된 의지까지 한 바퀴를 다 돌고 나면, 그제야 만나고싶은 마음이 다시 초조하게 올라오고 전화기를 향해 뻗는손은 마침내 동작을 완료한다. 레너드와 내가 서로를절친이라 생각하는 건 이런 주기가 일주일이면 돌아오기때문이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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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랜드는 표준 중국어 어학 강좌에 등록했다. 성조 때문에 교사의 도움 없이는 배우기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도 있어서 어려움의 화신인 언어였다. 음반을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했고, 직접 발음하고 또 발음하며 계속 교정을 받아야 했다. 그는 한 글자 한글자, 성조 하나 하나 읽기 시작했다. 하루에 열 개씩 배운다 쳐도1천 자를 공부하려면 석 달 이상이 걸렸다. 비이성적이고 정신 나간 일이지만 몰락과 사라지는 시간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는 광기를 느끼고 그 광기 속에서 이를 악물었다. 종양이 자라는 뇌는 그가 불굴의 의지, 단어 영역에서 모든 장애물을 넘어서는 집중력, 숙련된 기억력으로 무장하고 맞서는 적이었다. 범죄자이자 독재자, 악령이었다. 2주 후, 아침 여명에 찌르는 두통을 느끼며 그는결국 중국어를 포기했다. - P93

두 사람은 에스파냐어 ‘펠리시다드 felicidad‘가 그 시기의 행복에어울리는 유일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이탈리아어 ‘펠리치타Felicita‘는? 너무 현란하고 깊이가 없었다. 사탕 색깔이나 싸구려 젤라토같은 울림이었다. 프랑스어 ‘보뇌르Bonheur‘는? 너무 평평하고 너무 들척지근하고, 향수를 슬쩍 뿌린 것 같았다. 그럼 영어 ‘해피니스Happiness‘? 귀엽고, 레이랜드 집에 있는 장식품을 떠올리게 했다. 독일어 ‘글뤼크 Glück‘는? 유행가 제목 때문에 돌이킬 수 없이유치해졌다. 그러니까 에스파냐어가 정확하게 어울렸다. 끝의 드미는 거의 영어 ‘th‘처럼 발음해야 했다. 레이랜드와 리비아는 단어에서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들었다. 두 사람은 자기들만의 울림과 의미 공간에, 타인에게는 닫혀 있는 지극히 사적인공간에 산다는 생각도 가끔 했다. - P156

입하는 걸까?" "그런데 단어들에 관한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가불현듯, 솨솨 소리를 내는 바다에 대고 네 아버지가 나더러 결혼하겠냐고 물었지." 리비아가 말했다. "아무 맥락도 없이, 목소리도높이지 않고, 날 바라보지도 않고 정말 지나가는 말처럼 묻더라. 처음에는 영어로, 그다음에 이탈리아어로" - P157

이런 음색은 시간을 바꾸는 능력이 있었다. 불현듯 시간은 언어들이 앞서거나 뒤서거나 하며 줄지어 맞추어 들어가야 하는 외적인틀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가 되었다. 시간은 안드레이의 문장에서 솟아났고, 그의 언어가 시간을 만들어내고 흐르게 했다. 적어도 낭독하는 동안 그는 시간의 창조자이자 주인이었으므로,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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