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이런 일이 의례처럼 되어버렸다. 밤중에 자다가 깨어뒷마당을, 세탁실을, 차고를 확인하는 일, 이상한 소음의 정체를 알아보는 일, 창문을 단속하고 잠금장치를 더 단단히채우는 이런 일. 이것이 우리가 들어온 새로운 세상, 우리가꾸기 시작한 새로운 꿈의 일부가 되었다. 그런데도 가끔은그 꿈에 균열이 생기는 때가 있었다. 과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는. 그 다른 삶이 살짝 윙크를 보내는 때가있었다. - P24

참 이상한 일이다. 마흔세 살이 되었는데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다니, 삶의 어느 시점에 잘못된 기차에올라타 정신을 차려보니 젊을 때는 예상하지도 원하지도 심지어 알지도 못했던 곳에 와버렸다는 걸 깨닫다니. 꿈에서깨어났는데 그 꿈을 꾼 사람이 자신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것과 비슷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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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공기라고는 단 한 숨도 마셔보지 못한 핼리가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이 세상에 자유처럼 좋은게 없다는 사실을 베이비 섹스는 그게 두려웠다.
뭔가 잘못되었다. 뭐가 문제일까? 뭘까? 그녀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녀는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의 손이 보였고, 눈앞이 아찔할 만큼 단순 명쾌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 손은 내 거야. 내 손이야." 뒤이어 가슴이 쿵쿵거리는 것이 느껴졌고, 또다른 무언가를 새로 발견했다. 자신의 심장박동이었다. 이게 내내 여기 있었단 말인가? 이 쿵쿵 뛰는 것이? 그녀는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져서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가너 씨가 고개를 돌려 커다란 갈색 눈으로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뭐가 그렇게 우습니, 제니?"
그녀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제 심장이 뛰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 P235

피부가 희기만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하기 위해 흑인의 인격을 모두 빼앗을 수 있었다. 일을 시키거나 죽이거나 사지를 절단할 뿐 아니라, 더럽혔다. 완전히 더럽혀서 더는 자신을 좋아할 수 없게 했다. 완전히 더럽혀서 자기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고 생각해낼 수도 없게 했다. 그녀와 다른 이들은 그 일을 겪고도 살아남았지만, 자식만큼은 절대 그런 일을 겪게할 수 없었다. 자식들은 그녀의 보배였다. 백인들이 그녀 자신은 더럽혀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녀의 보배만큼은, 마법처럼 놀랍고 아름다운 보배만큼은 그녀의 순결한 분신만큼은 그렇게 되게 할 수 없었다.머리도 발도 없이 표시만 남은 채 몸통만 나무에 매달린 시체들이 내남편인지 폴 에이인지 고민하는 그런 꿈으로조차 꿀 수 없는 꿈들은더이상 안 된다. 애국자들이 흑인 학교에 불을 질러 부글부글 달구어진 여학생들 가운데 내 딸이 있는지, 백인 무리가 내 딸의 은밀한 곳을 침범하고 허벅지를 더럽힌 후 마차 밖으로 내던지지는 않았는지괴로워하는 꿈들은 더이상 꿀 수 없었다. 그녀 자신은 도살장 마당에서 몸을 팔지언정, 딸에게는 절대 안 될 일이었다. -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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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해, 폴 디는 생각했다. 정말 위험해. 한때 노예였던 여자가 뭔가를 저렇게나 사랑하다니, 무척이나 위험한 짓이었다. 특히 사랑하는 대상이 자기 자식이라면 더욱더 그가 알기로는 그저 조금만 사랑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모든 걸, 그저 조금씩만 그래야만 사람들이그 대상의 허리를 부러뜨리거나 포대에 처넣는다 해도, 그다음을 위한 사랑이조금은 남아 있을 테니까. - P82

세 사람은 서로 손을 잡지 않았지만 그림자들은 손을 잡고 있었다. 세서가 왼편을 힐끗 보니, 세 사람의 그림자가 나란히 손에 손을 잡고땅 위를 미끄러져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옳은지도 몰라. - P85

그들의 발밑에 왼편으로 길게 드리운 세 그림자는 서로 손을 꼭잡고 있었다. 하지만 세서 말고는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는데, 그녀도 좋은 징조라는 결론을 내리고 나서는 더이상 내려다보지않았다. 인생.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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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 작가이기에 내 삶은 수많은 원고 마감일로 채워져 있지만 바깥에서 보는 나는 태평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마감일을 며칠 넘기는 일도 잦은데(편집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동동거리거나 예민하게 촉을 세워 성질을 부리지도 않는다. 사실 혼자서는 꼼꼼히 스트레스를 받지만 겉으로는 태연함을 유지한다. 결국 숱한 우여곡절을 지나서 원고를 차곡차곡 쌓아 송고할 나를 믿기 때문이다. 동동거린다고 달라질 게없으므로 태평한 척을 한다. 태평한 척은 진지한 연기로이어지고, 연기를 하다 보면 정말 태평함을 갖게 되기도 한다. 원고는 여유를 머금은 채 짠 하고 태어난다(쉽지 않다!). 지금은 안다. 이게 내 생김, 내가 살아가는 태도라는 것을. 나는 무리하지 않고 느긋하게 하지만 정성을 들여 그곳(고지!)으로 가는 타입이다. - P67

당신은 우울하다고 말합니다. ‘우울‘이란 단어엔 우물 같은 이응이 두 개나 들어 있군요. 우울의 우물은 좁고 깊습니다. 누구나 빠질 수 있고 습관적으로 빠지거나, 들어가면 나오기 싫어하는 자도 있습니다. 우울한 사람은 무엇도하고 싶지 않습니다. 문을 닫고 눕지요. 누워서 무언가를기다립니다. 그 무엇이란 (심각할 때 말이지만) ‘죽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우울한 사람은 죽음을 생각하지만 실행할힘이 모자랍니다. 누가 저에게 우울이 뭔지 한마디로 말해보라 하면 모든 면에서 힘이 모자란 상태라 답하겠습니다. 우울한 사람은 시들어 있습니다. 빛, 흙, 물을 앞에 두고도양분으로 삼지 못하는 식물과 같은 상태이지요. 사계절을겨울나무로 살아야 하는 힘없는 존재. 돌아누우면 베개위로 눈물이 후드득 떨어지는 것. 도망치고 싶은 매일의 낮과 밤을 사는 것입니다. - P73

그러니까 우울은 슬픔을 두드려 얇게 펼친 것, 엷은 분노, 슬픔보다 진하진 않지만 광활하고 끝을 알 수 없는 무엇이겠지요. 누가슬픔보다 우울을 가볍다 할 수 있겠어요? 바닷물에서만사람이 죽는 건 아니지요. 사람은강물, 냇물, 접시 물에서도 익사할 수 있습니다. 펼쳐진 슬픔, 얕은 깊이를 존중하고 들여다보아야 하는 까닭이지요. - P74

손을 다치는 이유는 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치는 이유는 마음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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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쪽은 노는 쪽을 게으름뱅이 기생충이라며 경멸했고, 노는 쪽은 일하는 쪽을 재수 없는 얼간이로 보았다. 그런 와중에도 양측으로부터 사랑받는 부류가 있었다. 에세이스트, 아이돌, 싱어송라이터, 팟캐스트 진행자……….내면을 기꺼이 드러냄으로써 타인의 정신을 어루만진다고여겨지는 존재들, 그래서 반대로 열광적인 사랑을 퍼부을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이 분야에서는 인공지능조차 경쟁력을 잃었다. 기술적인 완벽성이나 심미성 또한 중요하지 않았다. 다들 진짜를원했다. 이 세계에서 진정 하나이며 그래서 가치 있는 것. 하지만 그 고유성으로 인해 한없이 연약해지는 것. 팬들의환호성 안에서만 무한히 빛날 수 있는 것. 악착같이 싸우지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에, 남아도는 에너지를 퍼부을 만한 것. - P27

인간관계를 최종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총점의 평균이 아니라 불합리한과락 조건이니까. 아무리 호의를 베풀더라도 하나가 충족되지 않으면 충격을 받고, 반대로 그 하나만 만족시키면 다른 것쯤이야 괜찮은 관계를 많이 보고 겪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지만 웃긴 일이라고 생각한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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