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곧 달에 갈테고, 그러면 달도 끝장이 나겠지. 그는 피우던 담배를 모래 위로 던졌다. 물론 이 모든 걸 위대한 사랑이 해결할 수 있을 테지, 하고 그는 냉소적으로 생각하며 죽고 싶다는 만만찮은 욕구를느꼈다. 때때로 고독이 고약한 고독이 아침이면 그렇게 그를 엄습하곤 했다. 사람을 숨쉬게 해주기보다는 짓눌러버리는 고독이. - P14

누구에게서도 편지가 오지 않았으며,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없었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끊으려는 그 불가능한 일을 하려 할때 사람들이 언제나 그러는 것처럼 그 역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어버렸던 것이다. - P15

그는 자신의 손 안에서 커져가는 공허감, 혼란스러우면서도 압도적인 어떤 갈망, 만지고 싶은, 솟구쳐오르게 하고 싶은, 만들어내고 싶은 욕구와 싸웠다. 점차 그의전 존재가 그 자신도 정확히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제멋대로일만큼 강압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가 류트를 쓸어보았다. 다음 순간 그는 시간 관념을 송두리째 잃고 책상 앞에 서서 서투른 손가락으로 되는 대로 현을뜯고 있었다. - P60

하지만 주위의 침묵은 매순간 무시무시하게 커져갈뿐이었다. 침묵은 집안을 가득 메우고 계단을 내려가 방문들을 모두 열어젖히고 벽을 지나 아이들의 귀에까지 들릴 것 같았고, 귀를 쫑긋 세우고있던 하인들의 얼굴에는 이미 어리석은 조소가 떠올라 있을 것같았다. 그녀는 재빨리 일어나 방문을 잠그고는 구석에 놓인 중국식 장롱으로 달려갔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찾아 장롱을 열고류트를 꺼냈다. 소파로 돌아와 앉은 그녀는 무릎 위에 악기를 올려놓고 현을 뜯기 시작했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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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지금 우리가 디그니타스를 찾아가지 않으면 아이들은 머지않아 그의 생이 다하는 날 슬픔과안도를 동시에 느낄 테지만, 이 방식을 택하면 그저 슬퍼하기만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할아버지를 사랑 넘치고 재밌고 엉뚱하며 사탕을 잘 나눠주는 만만한 ‘하지‘로 기억하는 것이 브라이언과 내게는 몹시 중요하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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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입장 바꿔 생각해본다‘는 그 어려운 일이 드디어 실현되는 거라고 과학기술은 여태까지 인간 종의 생물학적 한계를뛰어넘을 수 있게 해줬어. 우리가 말보다 빨리 달리고 새보다 높이 날 수 있게 됐잖아. 보통 사람들이 수학 천재처럼 셈을 할 수있게 됐고, 예전에는 수정 구슬로도 알 수 없었던 먼 도시의 사건들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됐어. 그때마다 문명의 형태가 바뀌었지. 이제는 보통 사람들이 성현처럼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거야. 흥분되지 않아? 앞으로 뭐가 바뀔까. 사법제도? 정치? 윤리의식? 종교?" - P149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태도가인간 보편 윤리의 어떤 측면과 충돌한다고 막연히 느끼고 있었으나, 그런 생각을 정연하게 풀기 어려웠다. 선악이 그렇게 주관적인 의도에 흔들리고 역시 주관적인 감수성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일까?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에게 나쁜 일을 저지르는 것과 무덤덤한 사람에게 같은 짓을 저지르는 걸 구별해야 하는 걸까? - P150

연쇄살인마, 성폭력범, 아동 학대범들에게도 각각의 사연이 있다. 그러나 그 사연을 굳이 귀기울여 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야 한다면 어떤 이유에서인가? 단순히 그들이 우리와 닮은 존재여서인가? 아니면 인간의 한계가 안 좋은 방향으로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인가? 다른 인간에 대한 이해는때로 인간성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게 레비나스 교수의 관점이다. 레비나스 교수는 하버드대신문에 발표한 특별 기고문에서 이렇게 썼다.
"종종 타인은 지옥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지옥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곳에 있음에 우리는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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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리치가 내게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무언가를보았고, 들었고, 조각을 끼워 넣다가 완전히 새로운 그림을 슬쩍 본것이었다. 그가 실토할 때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내 일이었다. 나는그 사실을 안다. 그때도 알았다. 먼지가 내 손에 까끌까끌하게 잡히고 공기를 틀어막던 그 천장 낮은 연립 주택에서 나는 알았다. 아니, 내가 좀더 정신을 차렸다면 알았을 것이다. 너무나 피로했고 그 모든 다른 일이 있었다는 건 핑계가 되지 않는다. 리치는 내 책임 아래있었다. -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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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코원숭이처럼 아무 생각도 없고 브레이크도 없이 시내를 돌아다니며 부수어버릴 물건이나 사람을 찾는 아이들 무리를 보라. 전철에서 자리에 앉겠다고 임신부를 밀쳐버리거나 사륜구동 차로 소형차를 겁주어 비키게 하고 세계가 감히 자신들의 말을 반박했다며 얼굴이 벌게져서 성을 내는 사업가들을 보라. 자기가 원하는 걸 바로 갖지 못하면 괴성을 지르고 발을 구르며 짜증을 내는 십 대 아이들을 보라. 우리가 짐승이 되지 않도록 막던 모든 것이 침식되고 모래처럼 천천히씻겨 나가다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야생 상태로 향하는 최종 단계는 살인이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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