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입장 바꿔 생각해본다‘는 그 어려운 일이 드디어 실현되는 거라고 과학기술은 여태까지 인간 종의 생물학적 한계를뛰어넘을 수 있게 해줬어. 우리가 말보다 빨리 달리고 새보다 높이 날 수 있게 됐잖아. 보통 사람들이 수학 천재처럼 셈을 할 수있게 됐고, 예전에는 수정 구슬로도 알 수 없었던 먼 도시의 사건들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됐어. 그때마다 문명의 형태가 바뀌었지. 이제는 보통 사람들이 성현처럼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거야. 흥분되지 않아? 앞으로 뭐가 바뀔까. 사법제도? 정치? 윤리의식? 종교?" - P149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태도가인간 보편 윤리의 어떤 측면과 충돌한다고 막연히 느끼고 있었으나, 그런 생각을 정연하게 풀기 어려웠다. 선악이 그렇게 주관적인 의도에 흔들리고 역시 주관적인 감수성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일까?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에게 나쁜 일을 저지르는 것과 무덤덤한 사람에게 같은 짓을 저지르는 걸 구별해야 하는 걸까? - P150
연쇄살인마, 성폭력범, 아동 학대범들에게도 각각의 사연이 있다. 그러나 그 사연을 굳이 귀기울여 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야 한다면 어떤 이유에서인가? 단순히 그들이 우리와 닮은 존재여서인가? 아니면 인간의 한계가 안 좋은 방향으로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인가? 다른 인간에 대한 이해는때로 인간성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게 레비나스 교수의 관점이다. 레비나스 교수는 하버드대신문에 발표한 특별 기고문에서 이렇게 썼다.
"종종 타인은 지옥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지옥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곳에 있음에 우리는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 P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