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중순 어느 날 오전 열한시경, 태양은 보이지 않고 한결 뚜렷해진 언덕들이 폭우를 예고했다. 나는 담청색 양복에 암청색 와이셔츠를받쳐 입고, 넥타이를 매고, 장식용 손수건을 꽂고, 발목에 암청색 수를놓은 검은색 모직 양말과 검은색 단화를 신고 있었다. 이렇게 깨끗하고단정한 차림새에 면도까지 한데다 술에 취하지도 않았으니 누가 좀 알아줬으면 싶었다. 그야말로 말쑥한 사설탐정의 모범답안 아닌가. 사백만 달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 P7

스무 살쯤 되었는데 몸매가 작고 가냘프지만 야무져 보였다. 하늘색슬랙스가 잘 어울렸다. 허공에 떠다니는 듯한 걸음걸이다. 요즘은 머리끝을 안으로 마는 페이지보이 스타일이 유행인데 그녀의 섬세한 황갈색 곱슬머리는 그보다 훨씬 짧았다. 청회색 눈은 나를 볼 때도 무표정에 가까웠다. 그녀가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입만 움직여 미소를 지었다. 육식동물을 연상시키는 작고 뾰족한 이가 갓 벗긴 오렌지 속껍질처럼 새하얗고 도자기처럼 반짝거렸다. 지나치게 힘을 주어 얄팍해진 입술 사이에서 이가 빛났다. 얼굴에 핏기가 없어 그리 건강해 보이지는않았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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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울증을 제거하려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정서적 메커니즘들을 손상시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믿는다. 따라서과학이든 철학이든 미봉책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
"이 고통에 이른 것을 환영하노라. 그대는 이것으로부터 배움을 얻으리니." 일찍이 오비디우스("변신 이야기』로 유명한 로마 시인]가 한말이다. 미래에 (당분간은 힘들겠지만) 우리 인간은 화학적 조작을 통해 두뇌의 고통의 회로를 찾아내어 그것을 통제하고 제거할 수 있게될 것이다. 나는 영원히 그렇게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그것을 제거하는 것은 경험을 무미건조하게 만들고 복잡성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것의 일부가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보다 심각한 문제다.)나는 세상을 9차원으로 볼 수만 있다면 기꺼이 커다란 대가를 치를 용의가 있다. 나는 고통받는 능력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평생 막연한 슬픔 속에서 살 것이다. 그러나 고통과 심한 우울증은 다르다. 사람은격심한 고통 속에서도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으며 살아남을 수 있다. 내가 근절하고자 하는 것은 우울증으로 인해 살아 있는 시체처럼살아가는 것이며 이 책도 그런 목적을 위해 쓰인 것이다. - P59

침대에 꼼짝도 못하고 누운 채 샤워하기가 너무 두려워서, 그러면서도 샤워는 두려운 일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에 울던 기억이 난다.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 샤워의 단계들을 밟아 가고 있었다. - P81

암의 경우와도 같다. 삽화를 너무 많이 겪게 되면 신체의생화학적 작용 자체가 나쁜 쪽으로 변화하며 그 변화는 영구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많은 치료 전문가들이 여전히 엉뚱한 방향을 보고 있다. 이제 삽화가 자동적으로 일어나는데 애초에 병을 유발한 스트레스 요인에 대해 걱정해 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러기엔이미 너무 늦은 것이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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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미치광이들의 공동체예요. 턱수염을 기른 늙은 남자들, 분노에 찬눈빛을 한 젊은이들, 가정주부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있거든요. 뭐 그래도자기네들끼리 어울렸지 누굴 귀찮게 하진 않았어요.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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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 하틀러의 의미
신체를 통제함으로써 정신까지 제어하는 행위. 제례적 의례적 행위.
이에 저항하는 소극성을 거지고자 하는 로자 자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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