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해서 이번에는 과거란 놈이, 자신의 문제에 쏟아야 할 시간 외에는 단 일 초도 더 허비하지 않는 재능을 지니고 있으며 중요하지 않은 것에는 시간을 낭비하지 못하는 노인의 모습을 하고 불쑥 찾아왔다. - P13

하지만 일단 남자의 세계에 발을 들인 꼬마 톰 페인을 아버지가 여전히 아이처럼 교육시킨다면, 아버지는 그걸로끝이다. 물론 아버지는 여전히 예상치 못한 구덩이를 걱정할 테고, 만일 걱정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잘못일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아버지로서는 끝난 것이다. 꼬마 톰 페인은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없는 셈 치고, 아버지를 배신하고 과감하게 뛰쳐나가 인생의 첫번째 구덩이에 발을 내디딜 수밖에 없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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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 행위, 아무것도 안 하는 것과는 다르면서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과 가장 비슷한 그 행위를 통해서 두 사람은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 필요나 대화를 피하게 해주는 다른 일에 열중할 필요도 없이 함께 있음을 한껏 누릴 수 있다. - P372

여자들이 걸어 나갈 자유라는 너무도 단순한 자유를 넘보았다는 이유로 형벌에 처해지거나 위험에 처하는경우가 비일비재했던 배경에는 여자들의 성을 통제하는 것을 중시하는사회가 여자의 보행, 아니 여자 그 자체를 필연적으로 성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 성적이지 않을 때가 없는 존재로 해석해온 정황이 있다. 이 책에서 더듬어본 보행의 역사를 통틀어 주요 인물은 (소요철학자든 플라뇌르든등산가든) 모두 남자들이었다. 이제 그 이유를 살펴볼 차례다. - P374

실제로 여자의 보행은 많은 경우 이동이 아니라 공연으로 해석된다. 그런 해석대로라면 여자들은 보고 싶은것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보여주기 위해서 걷고, 자기의 경험이아니라 자기를 보는 남자의 경험을 위해서 걷는 셈이다.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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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자연 속을 걷는 일은 중류층의 육체를 집과 사무실에 갇혀 있는 시대착오적 물건으로 변형시키는 환경, 노동자의 육체는 공장의기계 부품으로 변형시키는 환경에 대한 거부반응이었다. - P274

예전부터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서 가장 유럽적인 도시라고 불렸다. 무슨 뜻일까 생각해보면, 미국에서 대부분의 도시들은 점점교외의 확장판(공공장소에서 걸어 다니는 보행자들의 상호작용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적 공간 사이의 거리를 이동하는 운전자들의 상호작용 차단을 위해서 면밀하게통제, 분할, 구획되어 있는 장소)으로 변해가는 데 비해, 규모가 그렇게 크지않고 길거리에 활기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에는 직접 부딪히는 공간으로서의 도시 개념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P278

도시에서 사람이 고독한 이유는 낯선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인 낯선 사람이 되어보는 일, 비밀을 간직한 채로 말없이 걸어가면서스쳐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을 비밀을 상상하는 일은 더없는 호사 중 하나다. 한 사람의 정체성이 분명하게 정해지지 않은 가능성앞에 열려 있다는 것은 도시생활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고, 가족의 기대, 공동체의 기대에서 벗어나게 된 사람들, 하위문화 실험, 정체성 실험을 시도하게 된 사람들에게는 해방적 상태이기도 하다. 아울러관찰자의 상태(냉정한 상태, 대상에 거리를 둔 상태, 예민한 감각을 발휘하는 상태)이기도 하고, 성찰해야 하는 사람, 창작해야 하는 사람에게 유익한 상태이기도 하다. 약간의 우울, 약간의 고독, 약간의 내성은 삶의 가장 세련된재미에 속한다. - P302

베냐민 자신은 플라뇌르를 이런저런 것들과 연결했을 뿐 플라뇌르를 명확히 정의 내린 적은 없다. 그 이런저런 것들에는 여가가 있었고, 군중이 있었고, 소외 내지 거리두기가 있었고, 관찰이 있었고, 특히 아케이드 산책이 있었다. 그렇다면 플라뇌르는 어느 정도의 재산과 세련된 감수성이 있고 가정생활이 거의 혹은 전혀 없는 남자였으리라고 추론 - P321

는 도시 전체가 내 방 같기 때문이다. 집을 안락한 곳으로 만드는 방법이집을 그저 자고 먹고 일하는 곳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집에 마음을 붙이고 사는 것이듯, 도시에 마음을 붙이고 사는 방법은 아무 정처 없이, 아무 목적 없이 도시를 마냥 걸어 다니는 것이다. 그러니 파리에서 체류를지탱해주는 것은 무수한 카페들이다. 길거리에는 그런 카페들이 줄지어늘어서 있고, 보행자들은 카페들 앞을 지나가면서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대도시 중에서 걸어서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은 이제 파리뿐이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로부터 활기를 얻는 도시는 단연 파리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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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에서 길이 좋아지고 노상 범죄가 줄어들고 여행 경비가 저렴해지는 ‘교통 혁명‘이 일어난 것은 대략1770년 이후였다. 여행의 성격 그 자체를 바꾸어놓은 변화였다. 18세기중엽 이전의 여행기들에는 중요한 종교적, 문화적 랜드마크 사이의 길에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다. 그런데 18세기 중엽 이후에는 완전히 새로운방식의 여행이 생겨났다. 성지순례나 실용적 여정에서 가는 길은 고생스러움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길이 감상의 대상이 되면서 여행 그 자체가모종의 목적이 되었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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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나가려고 보니 역 앞으로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건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리는‘ 세상이었다. 이런 세상이라면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고 있을 게분명했다. 어디에 있다가 갑자기 이런 세상이 나타난 것일까? 자신은 다만 시를 한 편 들었을 뿐인데 그나마 오래전 자신이………쓴 시였는데……… 기행은 가만히 서서 푹푹 나리는 눈을 맞으며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대는 흰 당나귀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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