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컨대 자연 속을 걷는 일은 중류층의 육체를 집과 사무실에 갇혀 있는 시대착오적 물건으로 변형시키는 환경, 노동자의 육체는 공장의기계 부품으로 변형시키는 환경에 대한 거부반응이었다. - P274
예전부터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서 가장 유럽적인 도시라고 불렸다. 무슨 뜻일까 생각해보면, 미국에서 대부분의 도시들은 점점교외의 확장판(공공장소에서 걸어 다니는 보행자들의 상호작용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적 공간 사이의 거리를 이동하는 운전자들의 상호작용 차단을 위해서 면밀하게통제, 분할, 구획되어 있는 장소)으로 변해가는 데 비해, 규모가 그렇게 크지않고 길거리에 활기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에는 직접 부딪히는 공간으로서의 도시 개념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P278
도시에서 사람이 고독한 이유는 낯선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인 낯선 사람이 되어보는 일, 비밀을 간직한 채로 말없이 걸어가면서스쳐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을 비밀을 상상하는 일은 더없는 호사 중 하나다. 한 사람의 정체성이 분명하게 정해지지 않은 가능성앞에 열려 있다는 것은 도시생활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고, 가족의 기대, 공동체의 기대에서 벗어나게 된 사람들, 하위문화 실험, 정체성 실험을 시도하게 된 사람들에게는 해방적 상태이기도 하다. 아울러관찰자의 상태(냉정한 상태, 대상에 거리를 둔 상태, 예민한 감각을 발휘하는 상태)이기도 하고, 성찰해야 하는 사람, 창작해야 하는 사람에게 유익한 상태이기도 하다. 약간의 우울, 약간의 고독, 약간의 내성은 삶의 가장 세련된재미에 속한다. - P302
베냐민 자신은 플라뇌르를 이런저런 것들과 연결했을 뿐 플라뇌르를 명확히 정의 내린 적은 없다. 그 이런저런 것들에는 여가가 있었고, 군중이 있었고, 소외 내지 거리두기가 있었고, 관찰이 있었고, 특히 아케이드 산책이 있었다. 그렇다면 플라뇌르는 어느 정도의 재산과 세련된 감수성이 있고 가정생활이 거의 혹은 전혀 없는 남자였으리라고 추론 - P321
는 도시 전체가 내 방 같기 때문이다. 집을 안락한 곳으로 만드는 방법이집을 그저 자고 먹고 일하는 곳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집에 마음을 붙이고 사는 것이듯, 도시에 마음을 붙이고 사는 방법은 아무 정처 없이, 아무 목적 없이 도시를 마냥 걸어 다니는 것이다. 그러니 파리에서 체류를지탱해주는 것은 무수한 카페들이다. 길거리에는 그런 카페들이 줄지어늘어서 있고, 보행자들은 카페들 앞을 지나가면서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대도시 중에서 걸어서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은 이제 파리뿐이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로부터 활기를 얻는 도시는 단연 파리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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