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코원숭이처럼 아무 생각도 없고 브레이크도 없이 시내를 돌아다니며 부수어버릴 물건이나 사람을 찾는 아이들 무리를 보라. 전철에서 자리에 앉겠다고 임신부를 밀쳐버리거나 사륜구동 차로 소형차를 겁주어 비키게 하고 세계가 감히 자신들의 말을 반박했다며 얼굴이 벌게져서 성을 내는 사업가들을 보라. 자기가 원하는 걸 바로 갖지 못하면 괴성을 지르고 발을 구르며 짜증을 내는 십 대 아이들을 보라. 우리가 짐승이 되지 않도록 막던 모든 것이 침식되고 모래처럼 천천히씻겨 나가다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야생 상태로 향하는 최종 단계는 살인이다. - P153
그들 모두가 십 대나 다름없다. 신체적으로는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오로지 십 대만이 지루한 게 나쁘다고 생각한다. 산전수전 겪은 성숙한 성인 남성과 여성은 지루한 건 신이 내려주신 선물이라고 여긴다. 인생은 흥분할 만한 일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숨겨두고 있어서 우리가 굳이 극적인 일을 만들지 않아도 눈을 떼자마자 뒤통수를 칠 준비를 하고 있다. - P25
죽음은 순수하고 파괴적이다. 그것이 스치고 지나가면 사람은처참히 뭉개진다. 그리고 재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진실을 모르면, 희미한 불신의 빛이 완전히 꺼지지 않으면, 죽음은 흰개미나 집요한 세균처럼 가족을 괴롭혀댄다. 사람 속을 다 갉아먹는다. 하지만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죽음에 관한 불신이 남은 가족의 인생을 계속 물고 늘어지면재기는 꿈도 꿀 수 없다. 지금 내가 바로 그런 상태다. - P24
갑자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부모라면 누구나 가끔씩 이런 기분을 느낄 것이다. 그냥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기만 할 뿐인데. 무대에 올라 있지도 않고, 위닝 샷을 던진 것도 아닌데, 아이가 내 인생의 전부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새삼 감동과 공포가 물밀듯이 몰려든다. 흐르는 시간을 붙잡고도 싶어지고. - P80
사람들은 이따금무척 이기적이고 배려심이 부족하니까요.오래 살아온 아름다운 저택을 지키기 위해 이런 생각을 해내신것이 너무도 존경스럽습니다. 우리는 서퍽에 있는 시골 별장을 포기해야만 했답니다. 하인이 없어요! 편안하고 좋은 것은 모두 사라진 세상이 아닌가요? - P23
심지어 아기였을 때도 제리는 누구보다 말썽을 덜 피웠지만 정이 가지 않았다. 제리는 다정한 추억 하나 남기지 않고 감수성이 떨어지지만 착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심지어전쟁터(그는 아른험에서 싸웠다)에서 보낸 편지마저도 지루해서하품이 나왔다. - P40
라인 강을 따라 달리는 기차 여행은 늘 아름답다. 마인츠에서 비스바덴으로 넘어가는 철교, 니더발트 기념비, 카우프의 팔츠 성, 로렐라이 언덕, 에렌브라이트슈타인 성은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곳들이다. 14시 55분에 기차는 본에 도착했다. - P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