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죽었더라면 좋았을지도 몰라. 쓰쿠루는 자주 그런생각을 한다. 그랬더라면 지금 여기 있는 세계는 존재하지않았다. 그건 매혹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있는세계가 존재하지 않게 되고, 여기에서 현실이라 부르는 것들이 현실이 아니게 된다는 것. 이 세계에 그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로 자신에게 이 세계가 존재하지않는다는 것. - P8
가르시아 마르케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필요로 하지않았던 콜롬비아의 소설가.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현실이 아닌가? 아니, 애당초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짓는 벽 같은 것이 이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가?벽은 존재할지도 모른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벽이다. 경우에 따라, 상대에 따라 견고함을 달리하고 형상을 바꿔나간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 P684
그곳에 혼자 서 있으면 어김없이 슬퍼졌다. 아주 오래전에맛보았던, 깊은 슬픔이었다. 나는 그 슬픔을 무척 잘 기억했다. 말로 설명할 길 없는, 또한 시간과 더불어 사라지지도 않는 종류의 깊은 슬픔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가만히 남기고 가는 슬픔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것을 대체 어떻게 다뤄야 할까? - P280
꿈 읽기 작업을 거듭하는 사이 나는 그런 ‘통과의 감각‘을강하게 느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일반적인 의미의 이해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되는 면이 있었다. 그리고 나를 통과해 가는 그것들은 때때로 나의 안쪽을 기묘한 각도에서 자극하고, 오랫동안 망각했던 내 안의 몇 가지 감흥을 일깨웠다. 긴 세월 병 바닥에 쌓여 있던 오래된 먼지가 누군가의 숨결에의해 허공으로 훅 피어오르는 것처럼. - P118
간소하고 정밀한, 그리고 완결된 장소다. 전기도 가스도없고, 시계탑에는 바늘이 없고, 도서관에는 단 한 권의 책도없다. 사람들이 하는 말은 본래의 의미만을 지니고, 모든 것이각자 고유의 장소에, 혹은 눈길이 닿는 그 주변에 흔들림 없이머물러 있다.(중략)나는 밤공기를 가슴 가득 들이켜고 알맞은 언어와 적절한표현을 찾는다. 그리고 말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그림자를 데리고 살았어." - P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