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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한 초상
이갑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굉장히 재미있고 한편으로 무서운 소설입니다. (일단 장르는 추리소설...)
작가는 미술가,시인이자 오디오매니아, 음악애호가입니다. 2년 동안 이 소설을 썼고 이 책이 세상에 나온지 7개월 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 소설 한 편에 온 인생을 다 쏟아 부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의 내용은...부산이 배경인데 부산 시내와 그 주변 지역에서 여성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경찰들이 해결해 가는 과정을 쓴 것입니다. 나체로 발견된 시체들, 게다가 시체의 신체 내부에 범인은 메뚜기를 남겨 놓는 일관된 엽기성을 보입니다. 경찰들이 시행착오와 갖은 고생을 겪으며 사건을 수사해 나가고 그 와중에 이 도시의 한 유명한 정신병원원장의 내연녀가 비슷한 수법으로 살해됩니다. 내연녀도 한 대학병원의 정신과 의사인데 죽기 전 자신의 환자로부터 '로맨틱한 초상'이라는 음악 CD를 선물 받고 음악을 듣다가 죽음이 느껴진다는 얘기를 원장에게 한 적이 있었고 이 여성 살해 당시 방 안의 CD 플레이어에서 이 음악이 연주됐다는 증거가 발견되어 경찰과 원장은 이 환자가 사건의 주요인물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각자 조사를 계속해 갑니다...
이후 얘기는 더 이상 하면 읽는 사람이 재미 없을 듯 하여...^^;;
얘기를 읽어 가다 보면 범인의 광기가 보통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읽으면서 '뭐 이런 미친 놈이 다 있나...'혼자 이러면서 읽었네요. 범인의 정신세계와 예술성과 망상과 광기는 정말 일반인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근데 또 범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 정신세계에는 일관된 논리가 있음을 부정하지 못 합니다. 저는 작가가 혹시 이런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오랫동안 혼자 상상하다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 하고 결국 글로 남긴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인생은 뭐고 영혼이란 뭔지, 윤리라는 것은 또 뭔지 정상적이고 비정상적이라는 구별은 또 누가 하는 건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예술가 및 예술에 조예가 깊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이라 음악과 미술에 대한 얘기가 굉장히 많이 나오고 종교 신화적이고 정신의학적인 내용이 한 축을 이루는 소설입니다. 작가가 굉장히 많은 사전 조사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 추리소설을 읽어 본 건 처음인데 상당히 수준 높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수준작을 쓴 작가가 더 이상 작품을 쓰지 못 하고 세상을 등졌다는 게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저는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로맨틱한 초상'이라는 음악을 찾아서 들어봤는데 작가나 등장인물이 느낀 것처럼 죽음이 느껴진다 이런 건 잘 모르겠고 신비롭고 오묘한 분위기라는 것만 느껴지네요. 추리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