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파랑 -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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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재미가 없다. 없어도 너무 없다. 몇 번이나 집어던지고 싶은 걸 책값이 아까워 겨우겨우 읽었다. 이런 소설인 줄 알았으면 안 봤겠지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이라는 타이틀 하나만 보고 샀다.


제목처럼 SF의 탈을 뒤집어쓴 문단소설이다. 이걸 과연 SF라고 봐야 하는가? 필립 K. 딕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테드 창 같은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크게 실망할 작품이다. 내가 그랬으니까.


SF적인 면은 차치하고, 순문학으로 보기에도 어설프다. 이건 뭐 신인 작가니까 그렇다고 봐 주고...


SF를 쓰고자 하는 작가들한테 당부한다. 안드로이드의 정체성 혼란,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우정, 이런 주제는 이제 그만 좀 보고 싶다. 지겹단 말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몇 십 년 전에 나온 주제들이 왜 이제 와서 한국에서 인기 몰이인가.


인기여도 독특함만 있다면 재미가 있겠으나, 감정선이 다 비슷비슷하다. 안드로이드가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나 왜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지? 이래도 되는 거야? 그런 안드로이드에게 인간도 뭔가를 느낀다. 인간도 혼란스러워진다. 나 왜 얘한테 정이 들지? 이래도 되는 거야? 안드로이드의 선택은 둘 중 하나다. 혁명을 일으켜 인간을 이기려 들든지, 본인의 주제를 파악하고 인간을 위해 희생하든지. 아아, 다 똑같은 이야기들.


차라리 이 작품에서 휴머노이드의 이야기는 싹 빼고, 말 즉 투데이와 은혜의 이야기를 주 스토리로 삼았다면 어땠을까. 작가가 말하려는 주제는 장애인 복지와 동물 복지인데 여기에다가 휴머노이드를 끼워 넣으니 이도 저도 아닌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우연재와 콜리가 등장하는 파트가 제일 재미없었다.


사실 주인공이 휴머노이드 콜리도 아니다. 콜리는 보경, 연재, 은혜 세 모녀의 이야기를 돋보이게 해 줄 주변 인물, 장치에 불과하다. 아무리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휴머노이드라도 하는 말과 행동이 인간과 다를 게 없다. 자길 살아있다고 말해주는 인간들에게 끊임 없이 감사한다. 난 그게 왜 감동이 아니라 굴욕으로 느껴질까? 결국 콜리는 동물 복지를 위해, 그리고 인간들의 감동을 위해서(소설이 감동적으로 끝나야 하니까, 라는 의미)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만다. 


휴머노이드의 복지는 어디로 갔는가? 인간은 왜 휴머노이드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가? 인간이 휴머노이드를 위해 희생하는 스토리는 없는가? 한마디로 위선이라 이 말이다. 휴머노이드에게 정을 느끼고 친구처럼 대해도 결국 인간이 우위에 서 있고 명령을 내리고 희생을 강요하는 존재인 것이다. 본인이 의도햇든 그렇지 않든. 무의식 속에 그러한 계급 사상이 자리잡고 있으니 그런 거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닌 척. 한 마디로 가식이고 위선이다.


한국과학문학상 단편 수상작품집들은 괜찮은 작품들이 많았다. 우리나라 SF가 이 정도까지 왔구나 하고 느꼈다. 그런데 장편 대상은 왜... 상 이름이 '문학'상이어서 그런가? 이러니까 한국 SF가 생활SF라고 외면 받는 거다. 다른 수상작인 '기파'와 '에셔의 손'도 읽어 봐야겠다. 그것들도 이런 식이라면 상 자체의 권위를 믿어도 될지 의심이 갈 것이다.


결론 : SF 애독자라면 비추. 잔잔하고 감성적인 소설을 원한다면, 혹은 동물을 좋아한다면 읽어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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