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주인공 클라리사 댈러웨이가 파티를 준비하는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과, 그와 맞물려 있는 다른 인물들의 삶을 따라간다. 클라리사는 꽃을 사러 런던 거리를 걸으며 과거의 순간들을 떠올린다. 청춘 시절의 설렘, 결혼의 선택, 그리고 결코 선택하지 않은 다른 삶들. 그녀의 시선에 현재와 과거, 희망과 후회가 뒤섞인다. 이 부분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는 참전 군인 셉티머스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삶과 죽음, 행복과 절망이 대조를 이루는 두 흐름이 하나의 도시 안에서 맞닿는다.
울프가 보여주는 세계는 사건의 나열보다 내면의 결을 따라간다. 사건의 나열에 익숙했던 내가 읽기에 쉽지 않았던 이유이다.
‘그날 런던에는 이렇게 햇살이 쏟아졌고,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 있었다’는 작은 순간들이 쌓여, 인물들의 삶의 무게와 시대의 공기를 전달한다.
책을 읽으며 문득 생각하게 됐다.
나는 매일 무엇을 기억하며 걷고, 어떤 감정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울프의 ‘시간’에 대한 감각이었다. 그녀에게 시간은 단순히 흐르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뒤집히고, 감정 속에서 멈추며, 우연한 시선 속에서 다시 흘러간다. 클라리사가 거리를 걸으며 마주친 햇빛, 소리, 냄새는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독자의 마음속에 오래 남는 감각의 기록이 된다.
울프는 ‘사회적 위치와 개인의 고독’을 교차시킨다. 겉으로는 사교계의 중심에 선 댈러웨이 부인이지만, 그녀 역시 고독과 공허를 안고 있다.
사람들과 웃으며 대화하지만, 내면에서는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울려 퍼진다.
반면 셉티머스는 목숨을 끊음으로써, 사회가 외면한 고통을 세상에 강렬하게 남긴다. 두 사람은 직접 만나지 않지만, 소설의 구조 속에서 그들의 삶은 서로의 그림자가 된다.
책을 덮고 나니 울프가 던지는 질문이 떠올랐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인생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울프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의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기억과 감정의 결을 내가 직접 느끼게 했다.
『댈러웨이 부인』은 평범한 하루 동안의 이야기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다. 버지니아 울프는 독자에게 ‘한 인간의 하루’를 통해 ‘인생 전체’를 보여줬다.
읽으며 생각했다.
작가란, 평범한 하루를 이렇게 깊이, 그리고 아름답게 써낼 수 있는 사람이구나. 울프의 다른 작품들, 예컨대 『등대로』나 『파도』 속에서는 또 어떤 시간과 기억이 펼쳐질까? 『댈러웨이 부인』을 읽은 후, 나는 그 세계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