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제11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단편 수상작품집
김민경 외 지음 / 북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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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스토리 대상 단편 수상작품집은 매년 꼭 보게 되는 책이다.

2024년도 다섯 작품이 선정되었다.


『그 많던 마법소녀들은 다 어디 갔을까』 김민경

『내림마단조 좀비』 김호야

『슬롯파더』 이리예

『인형 철거』 임규리

『문을 나서며, 이단에게』 김규림


읽어 보니 다섯 작품 모두가 상을 받을만한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 읽고 난 후 내 마음과 머릿속을 떠도는 이야기는 이리예 작가의 『슬롯파더』와 임규리 작가의 『인형 철거』였다.


'인형 철거'는 공포, 괴기 담을 좋아하는 내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었고, '슬롯 파더'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는 엄마와 아빠의 삶을 생각나게 해 여러 번 읽어 본 작품이었다.


『슬롯파더』

제11회 교보문고 스토리 대상 단편 수상작품집 - 2024, 이리예


『슬롯파더』는 석 달 전 아버지가 돌아온 것으로 시작된다. 10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

택배 기사는 슬롯머신을 주인공의 집으로 옮기며, 편지를 엄마와 주인공에게 건넸다.


강원랜드에서 보낸 편지에는 카지노 영업 종료 후, 객장 청소 중에 슬롯머신 의자에 얹혀 있는 슬롯머신을 발견했고, 본사의 슬롯머신이 아닌 것을 조사하던 중 배출구 안에서 지갑과 메모지가 나왔다고 쓰여있었다.

메모지에 적힌 주소와 지갑 안의 주민등록증을 대조해 보니 이 슬롯머신은 귀댁의 가장으로 생각되어 기계를 거주지로 배송한다는 내용이었다.


"귀댁의 가장이라니, 이게 저희 남편이라고요?"

엄마가 기사에게 물었다.

"요즘 아버지들 변하는 게 뭐 대수인가요."

기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유쾌하게 말을 받았다. p.83

제11회 교보문고 스토리 대상 단편 수상작품집 - 2024, 『슬롯파더』 이리예


한 가정의 가장은 엄마 일수도, 아빠 일수도, 부모님이 아프거나 안 계신다면, 가장 역할을 맏이가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가장의 어깨는 늘 무거울 수밖에 없다.

『슬롯파더』의 가장은 가장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버지로 설정됐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도박에 빠져 있었고, 도박으로 쌓인 빚을 한 방에 갚기 위해 도박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라고 생각되는 슬롯머신이 거실 한편을 차지하고 있으니, 주인공과 엄마는 걸리적거리기만 하는 물건이 하나 생겼다는 생각을 한다.

'걸리적거리는 물건 = 무능력하고, 책임감 없는 가장 = 도박에 빠진 남편'이 하나로 연결된다.

주인공의 엄마는 궁금한 마음에 콘센트를 꽂아 봤다. 슬롯머신이 밝게 빛났다.


한편으론 좋은 점도 있었다. 저녁에 불을 안 켜도 거실이 환하게 밝다는 것. 마치 축제장처럼 반짝이는 슬롯머신 때문에 집 안 풍경이 덜 삭막해 보였다. 왠지 돈을 따서 신난 아버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p.90

제11회 교보문고 스토리 대상 단편 수상작품집 - 2024, 『슬롯파더』 이리예


슬롯머신은 집을 환하게 밝히며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아버지의 옷을 정리하느라 슬롯머신에 겨울 코트를 걸어놓았는데 코트 무게 때문에 기계 손잡이가 스르륵 내려갔다.

그 순간 슬롯머신이 작동했고, 777이라는 숫자가 뜨며 슬롯머신 배출구에서 무언가가 끊임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무엇인지 궁금했던 모녀는 배출구에 손을 넣어 물건을 꺼냈다.

모녀의 손에 잡힌 것은 5만 원권 지폐 다발이었다.

기계가 처음 배달되던 날, 기계 옆 노란 포스트잇에 아버지의 글씨체로 "돈을 걸 필요는 없다. 손잡이만 잡아당겨라."라는 문구가 쓰여있었지만, 모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 슬롯머신은, 아버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뭔지 알고 있다는 듯 은근한 미소를 짓고 있는 신사임당이 그려진 5만 원권 지폐를 기세 좋게 턱턱 뱉어내고 있었다. p.92

제11회 교보문고 스토리 대상 단편 수상작품집 - 2024, 『슬롯파더』 이리예


그 일이 있은 후로, 모녀는 기계를 대하는 마음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동안 쪼들리는 생활을 하고 있던 모녀는 넉넉한 생활을 맛보게 되자 아늑한 기분이 들었다. 사이가 좋지 않았던 주인공과 엄마의 관계도 좋아졌다. 그렇게 넉넉한 생활은 모녀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왜 자꾸 마지막이라는 거야?"

참지 못하고 한 번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는 그때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늦은 밤, 잠이 들려 할 때 푸념처럼 내뱉었을 뿐이다.

"돈이 떨어지면 저게 다시 사람이 될까 봐 무서워." p.95

제11회 교보문고 스토리 대상 단편 수상작품집 - 2024, 『슬롯파더』 이리예


풍요로운 삶이 좋기도 했지만, 모녀의 마음에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모녀는 슬롯머신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언제나 그랬다. 엄마에게서 더 빼앗을 것이 없어질 때까지 아빠는 엄마를 슬롯머신처럼 당겼다. 그러다 보면 돈이 나오니까. 언젠간 나오니까. 나올 때까지 두들기면 되니까. p.100

제11회 교보문고 스토리 대상 단편 수상작품집 - 2024, 『슬롯파더』 이리예


"돈 없는 생활로 돌아가자고?"

"아빠 없는 생활로 돌아가지고." p.102

제11회 교보문고 스토리 대상 단편 수상작품집 - 2024, 『슬롯파더』 이리예


이 소설을 읽고 나니, '돈 = 아빠(남편) = 가장'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요즘 아버지들 변하는 게 뭐 대수인가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내게 '우리 가족과 삶'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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