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왕
이홍 지음 / 문학사상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 이홍은 1978년 생으로 서울예술대학교 문예 창작과를 졸업하고 2007년 제31회 오늘의 작가 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그녀는 해외에 한국문학을 소개하고, 외국 소설가 및 번역가들과의 국제문학 교류 프로젝트와 문학행사를 기획하는 문학단체 '에이전시 소설'의 대표로 활동 중이다.


『씨름왕』은 2022년 「월간 문학사상」에 연재한 단편 다섯 편과 「문장 웹진」에 발표한 단편 한 편에 신작 한 편을 덧붙여 총 7편으로 완성된 연작 소설집으로 작가가 3년 만에 펴낸 신작이다. 최근 몇 년 간 가족, 연인, 친구, 동료 등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그녀는 슬퍼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한다. 죽음의 세계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하고 작아짐을 느꼈던 그녀는 글쓰기에 몰입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씨름왕』에 수록된 소설을 써나갔다고 한다.


책은 베네치아의 문, 씨름왕, 첫사랑이 끝났다, 줄리아니, 데이트, 요 네스뵈를 더 사랑할 권리가 있다, 들배지기의 순간 이렇게 7개의 단편으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각각의 단편은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지현, 지운, 재우 핵심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이다.


"나는 사랑하지 않을 때 추락하는 거 같은 기분이 들어. 바닥으로 쾅 떨어져서 박살 나는 게 아니라 끝없이 추락하는 거 같은. 소주를 들이붓고 나서 토하기 직전의 기분과 비슷한데 그 끔찍한 기분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고 생각해 봐." p.166


지현은 사랑하지 않을 때 추락하는 거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에 사랑을 멈출 수 없다며, 초등학생 시절부터 남자 친구가 없는 시절을 거의 보내지 않는다.


지현의 아빠는 1980년대 전국 각지에서 열린 크고 작은 씨름 대회에서 스무 번 이상 우승한 씨름왕이다. 지현이 초등학생 때 아빠는 상품으로 황소를 받아왔고, 지현은 황소에게서 마음의 위안을 받고 깊은 공감을 한다.


그녀는 대학에 다닐 때 남자들로부터 연애나 결혼하고 싶은 이상형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언제나 '황소 같은 남자'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황소는 그녀가 무엇을 하든 가은 자리에 있으며 굳이 떠나야 할 이유를 주지 않았고, 먼저 스스로 그녀를 떠나려고 안달하지도 않은 그런 존재였다.


마흔의 적지 않은 나이에 황소와 닮은 이탈리아인 '루'를 만난 지현은 이년 반이라는 장거리 연애를 하며 쌍둥이를 임신한다. 하지만, 쌍둥이 태아 중 하나는 심장이 뛰지 않았고, 다른 한 생명만이 뱃속에서 숨 쉬고 있었다. 아이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된 루는 지현을 가족에게 소개하고 결혼하고 싶은 마음에 그녀를 이탈리아로 초대한다. 하지만, 지현은 거기에서 지내면서 알게 된다.


루와의 결혼이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지현은 또 한 번의 이별을 고한다.


20대 초반 재벌 집 아들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 지현은 임신을 한 채로 남편에게 이혼을 통보한다. 그리고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오른다. 싱가포르에는 지현과 초등학교 동창이면서 9년 후에 우연히 만나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지운이 살고 있었는데, 지현은 지운의 집으로 무작정 찾아간다.


싱가포르에서 지운은 연수와 같이 살고 있었다. 연수는 임신한 채 지운을 찾은 지현을 따뜻하게 맞이하며, 안방의 침대까지 내준다. 그렇게 셋의 동거가 시작됐고, 지현은 그곳에서 재우를 낳아 키웠다.


지운은 남편도 남자친구도 아닌 황소같은 존재로 지현의 곁은 든든히 지킨다.


연수는 유방암 수술을 세 번 하며 병약해져가고 결국은 싱가포르에서 죽게 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는 말, 나는 믿지 않아. 뒤따라올 수많은 실패들을 견디게 해주는 건 과거에 실패했던 기억이 아니잖아. 단 한 번. 어느새 희미해진, 그 단 한 번, 이겨 본 것만 같았거나 실제로 이겨 보았던 바로 그 감각."


연수의 2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지운과 지현, 재우는 이야기한다.

연수가 삶에서 가장 멋지고 황홀했던 순간은 지현의 아빠인 씨름왕을 '들배지기'로 이겼던 때라며, 그들의 삶에서 들배지기의 순간은 언제였는지에 대해.


영화나 책에는 주인공이 정해져 있지만, 내 삶에서 주인공은 내가 될 수밖에 없다. 각각의 단편에선 재우가 주인공이 되지고 연수가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그런 점이 연작소설을 읽는 즐거움인 듯하다.


"내 삶에서 가장 멋지고 황홀했던 '들배지기'의 순간은 언제였을까?"가 계속 생각나게 만드는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