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 : 쿠쉬룩 림LIM 젊은 작가 소설집 1
서윤빈 외 지음, 전청림 해설 / 열림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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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웹진 림LIM은 등단 여부 및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젊은 작가들을 위한 연재 플랫폼이다. 림LIM에서는 장·단편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작품을 요일마다 하나씩 만날 수 있다.


림LIM에서는 웹진에 연재한 작품 중 일부를 엮어 일 년에 두 권 책을 출간하고 있는데, 2023년 봄을 맞아 젊은 작가 단편집 1 『쿠쉬룩』이 나왔다.


이 책에는 서윤빈 작가의 마음에 날개 따윈 없어서, 서혜듬 작가의 영의 존재, 설재인 작가의 이십 프로, 육선민 작가의 돌아오지 않는다, 이혜오 작가의 하나 빼기, 천선란 작가의 쿠쉬룩, 최의택 작가의 멀리서 인어의 반향은 이라는 일곱 작가의 일곱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작품의 마지막에는 작가노트가 있어, 작가가 이 글을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소개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에는 전청림 작가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동화라는 작품 해설이 들어있다.


내가 너무 꼰대가 된 건가?


이 단편집을 읽으며,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이다.


30쪽 남짓한 내용으로 구성된 단편소설을 한 번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작가는 왜 이 글을 썼을까?

독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뭘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문해력이 이렇게나 떨어졌던 사람인가?

젊은 세대와의 공감 능력이 이렇게나 떨어지는 사람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소설을 읽는 내내 들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해해 보려고 한 작품을 두, 세 번씩 읽었다. '쿠쉬룩'같은 경우는 다섯 번쯤 읽었던 것 같다. 명확히 이해할 수 없던 작품은 마지막에 있는 작품 해설을 통해서야 어렴풋하게 알 수 있었다.


쿠쉬룩

천선란


천선란 작가의 『쿠쉬룩』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 되돌아갈 곳은 반드시 자기 자신의 고향일까?

인간은 연어처럼 귀환하고 산란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인가?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이 중첩된다면, 인간의 고향은 미래일 수도 있지 않은가?


인간의 고향이 미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살면서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나 보다.


『쿠쉬룩』은 마인드 업로딩 시스템에서 일하는 '엔릴'의 이야기를 다룬다.


엔릴은 휴가 중 회사에서 급하게 부름을 받는다. 마인드 업로딩을 한 사람들이 갑자기 증발했고, 그 어디에서도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증발한 사람 중엔 엔릴의 언니도 포함됐다. 엔릴보다 25살이 많았던 언니는 엔릴에게는 엄마와 같은 존재였다. 언니를 찾기 위해 엔릴은 네트워크에 자신을 접속한다.


시스템을 관장하는 인공지능 발락에게 엔릴은 증발한 사람들에 대해 물었고, 발락은 대답했다.


찾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삭제되었다, 와 다른 말이었다. 찾을 수 없다는 건, 어딘가에는 있다는 말이었다. P.165


엔릴은 시스템 네트워크를 돌아다니며 끈질기게 발락에게 사라진 사람들에 대해 묻는다.


"모두 어디 있지?"

"찾을 수 없어."

"아니, 그들은 아직 시스템 안에 있고 너는 그걸 알아. 아는데 감추고 있어."

"찾아지길 원하지 않아. 숨었어, 깊이. 아주 깊이."

"당사자 선택이라는 말인가?" P.169


증발해 버린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택으로 이곳에서 내일에 대한 걱정 없이 식사하고 있다고 발락은 이야기한다.


미래는 위험해.

인간의 미래는 죽음, 불안, 불확실, 절망, 나아지지 않음, 달라지지 않음, 변화하지 않음, 정세의 악화 그런 것들로 가득해. 누구도 미래를 기대하지 않아. 누구도 미래를 바라지 않아. 누구도 미래에서 희망을 느끼지 않아. 인간에게 미래는 그렇다. P.171


미래에서 희망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은 자신을 시스템 안에 가두는 증발을 선택했다. 다가오는 내일은 알 수도 없고, 예측도 되지 않지만, 과거는 정답을 정해두고 기다리고 있어 지나온 것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고 느낀 사람들은 불확실함이 없는 각자가 만든 과거의 세계에 갇혀 사는 것을 선택했다.


엔릴은 그곳에서 언니를 찾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게 된다.


"진짜가 아니라고 가짜가 되는 건 아니잖아."

'하지만 그게 가짜라고 말할 수도 없잖아. 진짜가 아니라고 가짜인 건 아니야.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지가 중요한 거지.'

"끊임없이 상상하고 상상해서, 세계를 만드는 거지. 두려운 것이 없는 완전한 세계를, 그렇게 우주를 만드는 거야, 이곳에서. 그런 이곳이 진짜가 되겠지." p.182


'쿠쉬룩'은 수메르어로 상자를 뜻한다.


작가 천선란은 검고 적막한 전시실에 가득했던, 글자라고 해야 할지 그림이라고 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언어에 압도되었던 순간을 글로 남기고 싶어 이 글을 썼다고 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에는 공포심과 안도감이 존재하는데, 그런 곳에서 느끼는, 내가 아닌 나를, 그렇게 마주하는 낯선 너를, 소슬함을 독자가 느꼈으면 한다고 이야기하며 작가는 글을 마무리 짓는다.


나는 나만의 상자 안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꿈꾸는 사람인가?

아니면 과거라는 상자에 갇혀 안식만을 추구하는 사람일까?

나는 스스로에게 얼마나 진실한 사람일까?


『쿠쉬룩』은 어렵게 읽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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