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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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도쿄에서 태어난 에쿠니 가오리는 청아한 문체와 세련된 감성 화법으로 일본 문학 최고의 감성 작가로 불리며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도쿄 타워>,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우는 어른>, <울지 않는 아이> 등 수많은 작품으로 한국의 많은 독자를 사로잡고 있다.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은 대부분 그녀가 이십 대 초반에 쓴 단편을 모은 책이다.

책에는 <러브 미 텐더>, <선잠>, <포물선>, <재난의 전말>, <녹신녹신>, <밤과 아내의 세제>, <시미즈 부부>,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기묘한 장소> 이렇게 총 아홉 편이 실려있다.

그녀는 이중 세 편을 마음에 들어 한다고 소개했다.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은 그녀의 작품 중 『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소설의 뒷이야기이다. 그녀는 자신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 후에도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걸 좋아하기에 마음에 들어 했고, 『포물선』은 처음으로 문예지에 소개되어 기쁨을 주었던 작품, 『선잠』은 그림이 많이 실린 문예 무크지라는 것을 처음 보았기에 흥미진진했던 기억이 나 마음에 들어 했다.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은 총 4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녀의 다른 작품 <냉정과 열정 사이>처럼 작가가 첫 번째와 세 번째 부분은 여주인공 '치나미' 입장에서 서술했고, 두 번째와 네 번째 부분은 남주인공 '로' 입장에서 서술했다. 재미있는 구성이다.

작가와 달리 나는 <러브 미 텐더>, 와 <밤과 아내의 세제> 이 두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

밤과 아내의 세제는 마지막 문장이 압권이다.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이지 남의 이야기를 듣질 않아. 다이어트 콜라는 있다고 내가 말했지? 우유도. 쓰레기봉투도."

그리고 문득, 웃음을 터뜨린다.

"당신, 도대체 왜 그래? 사람 말할 땐 안 듣고."

손에 리무버를 들고 있다.

나의 승리다.

p.213

며칠 전 본 드라마의 대시가 떠오른다. 남자 주인공이 좋아하는 여자의 환심을 사고 싶어 주변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자리였는데, 괜찮다고 가보라고 해서 왔다는 말에 친구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여자가 괜찮다는 건 괜찮은 게 아니라고….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가라고…."

이런 미묘한 감정을 참 잘 살린 글이다.

러브 미 텐더는 치매에 걸린 부인을 위해 묵묵히 곁을 지키며 최선을 다하는 남편 이야기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딸이 본 아버지의 모습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두 소설 다 이제 그만 헤어져라는 어투로 시작하지만, 진심으로 사랑이 느껴지는 작품이라 마음에 들었나 보다.

에쿠니 가오리의 글은 메마른 감성을 촉촉이 적시고 싶을 때 읽기 좋은 소설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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