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일간의 세계일주 쥘 베른 베스트 컬렉션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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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베른(1828~1905)은 19세기 프랑스 작가다. 그는 과학자도 기술자도 아니었지만 20세기 과학발전에 영감을 준 작가로 손색이 없다. 불가능해 보일 수 있는 일에 기존의 지식과 추론을 적용해 독자로 하여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공감을 이끌어내는 솜씨가 뛰어난 사람이다.

그가 성공을 거둔 것은 아동도서 출판업자와 손잡은 결과였고, 쥘 베른은 아동 시장을 겨냥해 글을 쓰기도 해 아동용 판타지 작가로 알려지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동문학가로 여겨지지 않는다. 과학기술 전문 잡지가 그의 작품을 연구 분석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최근 유네스코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쥘 베른은 외국어로 가장 많이 번역된 작가 순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걸로 밝혀졌다.

<지구 속 여행>, <해저 2만리>, <15소년 표류기>, <지구에서 달까지>, <달나라 탐험>, <신비의 섬>, <80일간의 세계일주> 등의 그의 작품은 어린이 문고로도 많이 나와 있다.

『80일간의 세계일주』 책을 받는 순간 400쪽에 가까운 두께를 보고 내가 어릴 때 봤던 그 책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어릴 적 기억으론 영국 신사가 80일 동안 세계 일주를 하겠다는 내기를 했고,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알고 보니 하루 일찍 도착했더라는 줄거리였다. 그 당시엔 왜 하루 일찍 도착했을까? 이해하지 못했다.

이십여 년 지나 이 책을 다시 보니 필리어스 포그(주인공) 이외에도 파스파르투(프랑스 하인), 픽스(형사), 아우다 등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개개인의 특징이 너무 잘 드러나는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짐은 필요 없어. 작은 손가방 하나만 있으면 돼. 거기에 셔츠 두 벌과 양말 세 켤레만 넣게. 자네도 마찬가지야. 도중에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그때그때 사면 돼. 내 비옷과 여행용 담요를 가져오게. 구두는 튼튼한 걸로 신도록. 걷는 일은 거의 없겠지만. 자, 어서 서둘러."

p.36

포그는 10분 뒤에 세계여행을 떠날 거라며 파스파르투에게 셔츠 두벌과 양말 세 켤레만 챙기라고 한다. 그리고 전 재산 중 2만 파운드는 내기에 나머지 2만 파운드는 가방에 넣어 출발한다. 대화 단 세 줄로 포그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에서 어릴 땐 느끼지 못했던 작가의 대단함이 느껴진다.

그는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원주를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이론 역학의 법칙에 따라 지구 주위의 궤도를 돌고 있는 무거운 물체였다.

p.89

여행을 다니는 목적은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우고 느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던 나는 책장을 넘기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80일 동안 어느 곳에도 머무르지 않고, 기차 타고, 배 타고, 지구 한 바퀴 도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포그는 무엇을 위해 이런 여행을 하겠다고 내기를 했을까? 영국인의 허세일까?

이랬던 나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런 여행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여행이구나!'라는 생각으로 작가에게 설득당한다.

쥘 베른

돈의 힘으로 구워삶았다.

p.328

포그의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시간과 사람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 포그는 아낌없이 플렉스를 외치며 여행한다. 시간과 사람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지만, 돈이 인생에 전부라 생각하지 않는 포그의 삶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는 이 여행에서 무엇을 가지고 돌아왔는가? 아무것도 없다고 사람들은 말할까? 확실히, 한 아리따운 여성 말고는 아무것도 얻은 게 없었다. 그러나 좀 믿어지지 않는 일이지만, 그 여성은 그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로 만들었다. 사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하찮은 것을 위해서라도 세계 일주를 하지 않을까?

p.366

80일간 세계여행을 마치기 위해 무조건 앞으로만 직진했던 포그에게 남은 건 아우다란 여성이다. 이 여성을 구하기 위해 포그와 파스파루트는 목숨을 건 모험을 했고, 시간과 돈을 낭비하기도 했다. 떠나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눈에 보이게 남은 건 아우다 뿐이지만, 그가 얻은 건 주변 사람으로부터의 믿음과 자기의 신념이지 않을까?

오랜만에 어릴 적 읽었던 쥘 베른의 소설이 생각나는 사람이라면 다시 한번 읽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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