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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제9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
정욱 외 지음 / 마카롱 / 2022년 4월
평점 :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 2022』에는 모두 다섯 작품이 담겨있다.
1. 작가 정욱의 『네 딸을 데리고 있어』는 학창 시절 왕따를 당했던 주인공이 하나의 일을 맡으면서 시작된다. 쇼핑몰 홈페이지 디자인을 하는 간단한 일이라고 해서 맡은 자료를 훑어보던 주인공 민영은 쇼핑몰의 대표 프로필을 보다가 그대로 굳어버린다. 과거 학창 시절에 자신을 폭행하고 왕따를 시켰던 그 아이(수린)가 화려한 얼굴로 웃고 있던 것이다.
과거의 폭행 때문에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 자신과는 다르게 예쁜 딸을 가진 수린을 한 번은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수린의 집으로 발길을 향한다.
드라마로 만들어도 손색없을 만큼 충분히 일상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나쁜 마음을 먹지만, 현실에선 할 수 없는 괴리감. 나를 치유하려면 드러내야 하는 상처와 고통. 시대적 상황을 너무나 잘 드러낸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2. 작가 김이담의 『조립형 인간』은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완벽에 가까운 인간이 되어야 하는 시대상과 인간성의 상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희주 씨는 저 같은 인간을 아직 만나본 적이 없나 보군요? 남자는 태연하게 말했다. 저는 그러니까, 조립된 인간이죠. 예를 들자면 레고처럼. p.61
"내가 당신을 좋게 본 건, 당신이 완벽한 인간이라서가 아니었어. 당신이 내게 서류를 주워주었기 때문에, 당신이 유일했기 때문에… 그건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행동이었어…."
여자의 말에 남자는 악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선한 얼굴로 유쾌하게 웃었다.
"희주 씨, 그랬을 수도 있죠. 하지만 이제는 아니잖아." p.75
3. 작가 청예의 『웬즈데이 유스리치 클럽』은 요즘 뉴스에 나올 법한 이야기를 MZ 세대 취준생의 감성으로 써 내려갔다.
취업만이 능사가 아닌 남이 주는 돈을 받아서는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주인공 지우는 취업 준비 중에도 금쪽같은 시간을 할애해서 웬즈데이 유스리치 클럽 모임에 나간다. 거기서 만난 사람이 나를 상대로 사기 치려는 사람인 것 같아 의심의 눈초리로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지만, '나 같이 없는 사람 상대로 뭐 하러 사기를 치겠어?'라고 자기합리화를 하며, 의심을 거두지 못한 채 하루빨리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에 전 재산을 투자한 주인공 지우.
어쩌면 이렇게 될 거란 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꾸만 피어오르던 의심, 성공의 길이라기엔 너무나 간단했던 접근, 접속할 수 없는 홈페이지. 두 눈을 가린 절박함이 나를 이끈 곳은 폐허였다.
p.120
다섯 편의 글 중 가장 먹먹하고 답답한 느낌이 드는 글이었다.
4. 작가 오승현의 『발렌타인 시그널』은 층간 소음 문제를 외계인과 연관시켜 황당하면서도 재미있는 글이었다. 뻔뻔한 주인공 캐릭터도 재밌고, 위층 사람들의 태도에선 '이건 무슨 경우지? 저럴 수도 있나? 세상엔 별 사람이 다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다섯 작품 중 가장 신선했다.
5. 작가 임수림의 『너에게』는 로봇이 주인공인 sf 소설이다. 로봇은 감정을 가져서는 안되지만 주인공 로봇은 불량으로 감정을 갖게 되고 결국은 사랑을 느끼게 된다.
재판에서 나는 당당했어. 정말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내가 가는 길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저 인간들의 모든 죄를 나에게 덮어씌우고 싶어 하는 게 내 눈에도 너무 투명하게 보여서 그 위선들이 우스웠을 뿐이야. 사람들은 모르겠지. 자신의 위선을 잘 감추고 살아간다고 생각하겠지만, 그저 같은 인간들끼리 서로서로 덮어주고 있는 것뿐인걸.
들었겠지만 며칠 후 나는 해체될 거야. 하지만 후회하지 않아. 그리고 너도 슬퍼하지도, 걱정하지도 마.
p.217
위의 글을 읽는데, 로봇이 하는 말이 아닌 일제 강점기 '독립투사가 저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중근 의사도 재판을 당당하게 받았다. 왜냐하면 조국을 위해 자신이 한 행동은 정당했고, 그저 일본인들이 모든 죄를 자기에게 덮어씌우려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죽음 앞에서도 후회하지 않고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로봇의 사랑 이야기지만 진부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