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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일제 침략사 - 칼과 여자
임종국 지음 / 청년정신 / 2022년 1월
평점 :
작가 임종국은 1929년 태어나 1945년 해방되던 해, 중 3의 나이로 일본군의 퇴각을 경험했고, 1959년 <문학예술>지에 시를 발표함으로써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한다. 1965년 그의 나이 37세에 이뤄진 한일회담은 임종국 선생의 생애에 전환점을 마련한 중요한 계기로 그즈음 그의 연구 테마는 문학사회가였다. 이것이 한일회담의 반민족적 행위와 접목되면서 본격적인 친일 연구의 계기가 되었고, 1980년 그는 건강 문제와 집필에 전념하기 위해 천안 교외에 외딴 집을 지어 요산제라 이름하고 이곳에서 일제 침략사와 친일파들의 배족사를 구명해 나갔다. 1983년 『일제 침략과 친일파』, 1984년 『밤의 일제 침략사』, 1985년 『일제의 사상 탄압』 등을 차례로 발간했고, 이후 친일문제 연구에 체계를 세우고 총체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친일파 총서'(10권)을 펴내기로 계획했으나 1988년『일본군의 조선 침략사』를 내놓은 이후 집필 준비를 하다 1989년 11월에 타계하였다.
작가는 들어가는 글에 이 책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일제 침략의 이면사이다. 공식적인 조약이나 정책이 정사로서 '낮의 얼굴'이라면, 이 책은 그 이면의 '밤의 표정'이다. 동시에 그것은 암흑의 측면이기도 한 것이다. 조약은 도장 하나로 짧은 시간에 체결되지만, 그것이 체결된 이면 사정과 막후교섭은 하루나 이틀에만 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감춰진 사정을 모르는 이상, 조약의 참된 의미가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저자는 우선 자료적인 면에서 이런 책을 쓸 수 있겠는가를 자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를 안다는 것은 우리를 안다는 것이다. 빼앗은 자의 환성을 통해서 우리는 빼앗긴 자의 비탄을 알게 된다.(p.6)
책을 읽다 보면 작가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방대한 양의 자료를 조사하고 노력했는지, 단어 사용 하나도 얼마나 고민하며 썼는지가 느껴진다. 우리가 그냥 쓰고 있는 단어 '한일 합병' 조차도 한국이 먼저 나오면 한국이 일본을 병합해서 일본국이 소멸해 버린 상태로 되기 때문에 '일한 합병'이라는 단어를 쓰는 섬세함도 보인다.
일본은 러일 전쟁에서 부족한 전승의 대가를 우리 조선에서 갈취했다. 책의 1장에선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화하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해 왔는지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청일전쟁을 시작하면서부터 일본의 게이샤들이 우리나라에 거주하기 시작했고, 조선에 가면 돈 벌이가 된다는 소문이 일본에 퍼지면서 많은 일본 여자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일본은 군인뿐 아니라 그들의 여자와 밤의 문화를 조선에 뿌리내리게 해 우리나라를 더 통치하기 쉽게 만들었다.
일제는 한 손에 칼, 한 손에 '코란'이 아니라 대포와 기생을 거느리고 조선에 왔다. (p.31)
이토 히로부미의 애첩 요시다 다케코의 비파 소릿값으로 지불한 1천 원(쌀 200가 마의 값)은 이토에게서 차관에 대한 흔쾌한 답을 얻어낼 수 있었지만 정작 그 차관은 일본인 주머니로 들어가고, 그것을 갚느라 조선인은 범국민적으로 담배까지 끊어야 했던 국채보상운동을 벌여야 했다는 부분에서는 화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본인의 화대를 마련하기 위해 우리 국민을 얼마나 쥐어짜냈는지 그들이 얼마나 방탕한 생활을 했는지 이 책을 읽다 보면 기가 막히는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배수량 31800ton, 일본 해군에서도 가장 큰 전함인 나가토의 비밀을 일목 요연하게 판독할 수 있는 그 서류는 한낱 카페 여급의 살림 밑천과 바꾸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1급 국가기밀이었다.(p.323)
일본 해군공창에 출입하던 무네마사는 카페 '은파'에서 여급 노릇을 하던 쓰루와 살림을 차리기 위해 사도공을 하며 훔쳐낸 1급 군사기밀을 5만 엔에 팔려다 실패한다. 근래에 드문 매국노 사건이라던 이 일건에는 전직 총독부 외사과 직원이 관계하였다. 철없는 대신들을 조종해서 매국을 감행하게 한 총독부의 탕아들이 이제는 스스로 매국에 앞장설 만큼 타락해 버리고 만 것이다.
이들 17~20만 명의 조선인 여자정신대 중 8·15이전의 사망자는 143,000명이다. 소모율 71~84%로, 세계 2차대전 중 일본군의 소모율 40~50%를 훨씬 웃도는 수치이다. 비전투원인 여자정신대가 어째서 전투원인 일본 군인들보다 더 많은 비율로 죽어갔는가? '천황의 군대'의 치부를 은폐하기 위해서 패주할 당시에 학살을 당했기 때문이다. (p.371)
위안부 문제는 읽으면 읽을수록 화를 참기가 힘들다. 특히 군에서는 여성을 소모품으로 분류했다는 부분은 모르지는 않았지만, 받아들이기 어렵다.
읽기 불편하고 읽을수록 답답한 마음에 알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똑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전면에 드러난 내용뿐만이 아닌 그 내면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면 더 느끼게 된다.
이 많은 내용을 조사하고 책을 쓴 작가 임종국이 감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