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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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는 1964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청아한 문체와 세련된 감성 화법으로 사랑받는 작가로 일본 문학 최고의 감성 작가로 불리기도 하는 그녀는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도쿄 타워』,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좌안 1·2』, 『수박 향기』 등 많은 작품으로 일본뿐 아닌 한국에서도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작가이다.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단편집은 2006년 첫 선을 보이고, 15년이 지난 2021년 다시 개정판으로 선보이게 된 책이다. 단편집엔 <손가락>, <초록 고양이>, <천국의 맛>, <사탕 일기>, <비, 오이, 녹차>, <머리빗과 사인펜> 총 6가지 이야기가 펼쳐지고 주인공은 모두 10대 여고생이다. 2006년 첫 선을 보일 당시 에쿠니 가오리의 나이는 40대 초반이었을 텐데 작가의 경험이라 생각될 만큼 섬세한 표현과 묘사, 화법은 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과거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했고,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을까? 내 고교 시절에 과연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걸까? 요즘 10대도 이런 생각을 하나? 등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 소설이다.

여섯 편의 글 중 길이가 가장 길고 처음으로 나온 <손가락>이란 소설은 자신이 불감증이라고 생각하는 소녀 기쿠코가 버스에서 묘령의 빨간 코트를 입은 여자 치한을 만나 동성에 대한 야릇한 호기심에 그녀를 또 만나기를 기대하는 장면이나 그녀가 "15분만 내줄래?" 하고 말을 건넸을 때 무작정 같이 내려 그녀의 집으로 가 밀크티 한 잔을 마시고 나오는 장면, 자신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따라 본능에 충실한 뒤에 펼쳐질 다른 일은 생각하지 않는 주인공 기쿠코는 사춘기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이 사춘기 소녀기에 10대의 성장통에 관한 이야기라 생각하며 읽고 있었는데, 글 후반부 내 몸에 손을 댄 이유를 묻는 기쿠코의 질문에 묘령의 빨간 코트를 입은 그녀는 이렇게 답을 한다.

"왜냐면, 너의 몸이 청결한 형태로 보였으니까. 확인해 보고 싶었어. 얼마나 감촉이 좋은지."

이런 생각이 가능할까? 생각만이 아닌 행동은 말이 되는 걸까? 나이, 성별, 사회적 관습과는 상관없는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냥 그러고 싶어.'라는 생각. 성장통은 10대가 갖는 특권이라 생각했는데 중년과 노년도 충분히 그럴 수 있구나! 죽기 전까진 모두가 성장 중이니 억누르고 있는 감정을 솔직히 드러낸다면 '그냥 그러고 싶었어.'가 이유가 될 수 있겠구나!

다른 다섯 편의 글에서는 10대의 특권인 성장통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내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가족과 친구를 향한 그 당시 감정을 꺼내볼 수 있다면, <손가락>에서는 학창 시절의 나와 중년의 나, 같은 사람이지만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동질감보다 괴리감이 큰 나를 느끼게 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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