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엄호텔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2
마리 르도네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림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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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리 르도네는 1948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1986년 '장엄 호텔'을 출간했고, 이듬해 '영원한 계곡', '로즈 멜리 로즈'를 출간해 삼부작으로 완결했다.

'장엄 호텔'의 원작은 'Splendid Hotel'이다. Splendid는 화려한, 빛나는, 훌륭한, 굉장한, 근사한 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다. 이 책을 추천한 소설가 최진영은 장엄 호텔을 생명처럼 느꼈다고 한다. 호텔이 주인공인 소설? 과연 어떤 소설일까?

소설은 제목과 상당히 다른 전개가 펼쳐진다.

장엄 호텔은 할머니가 죽은 뒤부터 더 이상 예전 모습이 아니다. 쉴 새 없이 변기를 뚫어줘야만 했다. (p.11)

제일 첫 줄이다. 첫 줄만 읽어도 장엄 호텔이 어느 정도인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화려하고 빛나는 것과 거리가 먼 오래되고 낡은 호텔. 책은 170페이지 분량으로 두껍지 않다. 인물도 화자인 '나', 아다와 아델 두 언니, 그리고 호텔 손님이 전부여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쭉 읽히는 소설.

'나'는 장엄 호텔에서 태어나 한 번도 이곳을 떠난 적이 없다. 할머니는 그녀가 평생 꿈꾸고 이뤄왔던 장엄 호텔을 손녀인 '나'에게 유산으로 남긴다. 유산을 상속받은 '나'는 아다와 아델 두 언니를 장엄 호텔에서 살게 하고, 그녀들과 호텔을 돌보며 살아간다.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땐 활기가 넘쳤고, 방마다 세면기를 설치한 호텔이 그 당시에는 별로 없었기에 그녀는 장엄 호텔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런데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가 호텔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문제점이 발견된다. 호텔은 늪에 세워진 유일한 호텔이었고, 배수관이나 목재 등이 좋은 재료로 지어지지 않아 계속 손을 봐야 했다. 처음에는 변기를 뚫는 일만 해도 괜찮았는데, 세월이 지나며 대들보, 지붕도 손을 봐야 하는 상태가 되고, 전염병, 흰개미와 파리의 습격 등 총체적 난국이 펼쳐진다. 호텔의 생이 우리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서 자랄 때는 잘 몰랐다가 나이가 들면 몸 여기저기 고장 났다는 신호를 보낸다. 병원을 드나들며 물리치료 등 고쳐 써보려 노력하지만, 한 번 병든 몸은 쉽게 좋아지지 않는다.

'나'에게는 끈질기게 불행들이 찾아온다. 작은 불행, 큰 불행 가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나아지는 것 없이 되풀이되는 인생이다. 책을 읽으며 장엄 호텔이 무너지는 걸로 끝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책의 제일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늪지대 어디에서도 장엄이 잘 보인다. 밤이면 네온사인이 빛나 아주 멀리서도 잘 보인다. 하늘과 눈 위에 두 점이 있다. 그건 장엄의 네온사인이 반사된 빛이다.(p.170)

처음부터 끝까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컴컴한 터널 속에 있는 기분이 드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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