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의 세계 - AI 소설가 비람풍 × 소설감독 김태연
비람풍 지음, 김태연 감독 / 파람북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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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인공지능으로 대체 가능한 직업은 사라질 것이고, 대체하지 못하는 직업만이 살아남게 될 테니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일을 찾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요즘 그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소설을 AI가 썼다니, 그것도 초단편 소설이 아닌 450페이지나 되는 장편소설을...

평소 소설을 처음 읽을 땐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는다. 글자 그대로 내용을 파악하려 노력하고, 두 번째 읽을 때 작가가 숨겨놓은 장치들을 발견하려 꼼꼼히 본다. 그렇게 두세 번씩 보게 되는데, '지금부터의 세계'라는 소설은 국내 최초 AI 장편소설이라는 타이틀이 붙었기에 처음부터 색안경을 벗고 보게 돼질 않았다.

누가 주인공이라 할 수 없는 지체장애인 수학자, 정신과 의사, 수학과 교수이자 벤처 사업가, 천체물리학자, 스님 이렇게 다섯 명이 각각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을 그린 소설인데, 답을 찾는 과정에 수학적인 논리를 이용한다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전문적인 수학 용어가 많이 나와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 마지막 후기에 AI 작가 비람풍을 감독한 자칭 소설 감독 김태연도 말하듯 처음 비람풍에게 소설을 맡겼을 땐 소설책인지 수학 책인지 구분하기가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AI가 가진 수학적 정보를 풀어썼을 거라 생각하니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소설 감독이 필요했고, 어떻게 이 장편소설이 탄생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소설 감독 김태연의 후기가 100페이지를 차지할 정도로 길다. 처음 시도하는 장편소설이라 감독으로써의 역할과 AI 작가 비람풍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그렇겠지만, 지금껏 읽은 소설 중 작가 후기가 가장 긴 소설이다.

"대학교 수학과에 입학해 2학년에 올라오면 통상 전공필수로 배우는 과목이 있습니다. 선형대수학이지요. 이 선형대수학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AI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하답니다. 선형대수학을 떠받치는 두 기둥인 행렬과 벡터가 AI의 토대이기도 하니까요. 행렬은 인공지능에서 데이터의 공간 변화, 인공지능 학습 등에 필수 도구랍니다. 인공지능이 멍청한 기계가 아니라 똑똑하게 만드는 수학적 무기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딥러닝의 심층 신경망에서 정보가 흐르는 과정 자체가 행렬 연산이거든요. 따라서 딥러닝의 피가 행렬이라고 보면 됩니다."(p.164)

우리나라 2015 개정 고등 교육과정에서 행렬이 빠졌다. 사실 고등학교 수학 중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 행렬인데, 그 부분을 과감히 삭제한 것이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행렬이 인공지능의 수학적 무기라고 AI조차도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데, 왜 그랬을까? 행렬을 삭제한다고 했을 때 수학자들의 반대가 많았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그래서 지금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행렬이 뭔지도 모른다. 행렬이 빠졌다고 했을 때 수학이 이렇게 흘러가면 안 되는데…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던 한 사람으로써 AI 소설가 비람풍에게 가장 공감이 가는 문장이었다.

소설의 처음엔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중반부로 가면서 큰 차이점을 못 느끼고 읽었던 것 같다. 제일 마지막 문장은 소설 감독 김태연도 놀랄만한 것을 AI 비람풍이 썼다고 한다.

다음 소설이 기대되며, AI 소설가 비람풍의 첫 장편소설이란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았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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