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기시미 이치로는 프로이트, 융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알프레드 아들러 철학 전공자로 '인간은 변할 수 있고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라는 아들러 철학의 정수를 담은 <미움받을 용기>로 일본과 한국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사람이다.
이 책은 모든 것이 흔들리는 중년의 사람들에게 저자가 전하는 위로의 책으로 그동안 사람들이 그에게 했던 질문들과 그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에서는 상상한 대로의 불행은 결단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주제로, 내일의 불행을 기다리느라 오늘을 허비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우리는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을 걱정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미래를 걱정하느라 또는 과거를 떠올려서 오늘의 행복에 브레이크를 걸 필요는 없으니 오늘을 행복하게 살자고 말한다.
2장에서는 내 마음을 바꾸면, 주변 사람도 달라진다는 주제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미움받을 용기를 갖는다는 것은 '미움을 받으세요.'라는 의미가 아니라 '미움받기를 두려워하지 마세요.'라는 의미입니다. 미움받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고 싶은 말과 항동을 자제하기 때문에 타인과 충돌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사람 좋다는 소리를 들을지는 모르지만, 주체성 없는 삶을 삽니다. 누구에게나 웃는 얼굴로 대하는 동시에 자기주장은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신뢰를 잃게 됩니다.
반대로 미움받기를 겁내지 않고 서슴없이 말하고 행동하면 타인과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미움을 받거나, 원망을 듣거나, 상처를 입습니다. 그러나 주변에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역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며, 이는 자유로운 삶을 위해 치러야 하는 필수적인 대가입니다.(p.31)
사람은 누구나 자유로운 삶을 살 권리가 있고, 그렇게 살기 위해 미움받을 용기를 내라고 작가는 말한다.
우리 인생은 '해야 할 것',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나이가 든다는 것은 할 수 없게 된 것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가 나이 듦을 받아들이려면 할 수 없게 된 것이 아닌 '할 수 있는 것'과 '지금 살아있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할 수 있는 것'이 사라지는 때가 온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 강의를 들은 내용 중 기억나는 부분은 성인 초기엔 친근감과 고립감을 느끼고, 성인 중기가 되면 생산성과 정체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성인 후기가 되면 자아통정감과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그만큼 성인 후기가 되면 할 수 없는 것이 많아지고,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주변에서 그렇게 봐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 스스로 위축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작가는 '할 수 있는 것과 지금 살아있음'에 주목하라고 이야기한 듯하다.
또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부모 자식 관계 부분이다.
"부모가 가져야 할 단 하나의 목표는 자립입니다. 부모 자식 관계에서의 목표는 자립입니다."
부모는 지금 하는 행위가 자식의 자립에 방해가 되지 않는지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p.81)
부모의 역할은 자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사람답게' 성장하고 발전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부모가 아닌 인간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자식과의 관계를 맺어가야 하며 자식을 신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3장에서는 죽음 앞에 심각해지지 않을 것, 노후의 짐을 혼자 감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한다.
아이를 키울 때 부모는 아이가 오늘은 못 했지만, 내일은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지만, 반대로 자식은 부모의 내일을 비관합니다. 그러나 과거와 미래에 어떠해야 한다는 기대를 내려놓고 지금 여기를 함께하는 삶에 집중하면 많은 갈등과 다툼이 사라집니다.(p.104)
중년이라는 나이가 그런듯하다. 자식은 독립을 해야 할 나이가 되어가고, 부모님은 할 수 없는 것이 많아지는 그래서 위로 아래로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커지는 나이인 듯하다.
4장에서는 함께일 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주제로 이야기를 한다.
우리도 부모처럼 늙어가고, 병에 걸리고, 죽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 돌보는 부모는 바로 미래의 나 자신이다.
모든 분쟁은 자기와 타자를 분별하는 데서 시작된다. 상대의 처지가 되어서 생각하는 태도를 아들러는 '공감'이라 말하고, 같은 입장이라면 자신도 같은 말과 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나와 타자를 분별하는 것이 아닌, 타자를 내 안으로 포용하면 분쟁은 사라지게 되므로 '공감'을 강조한다.
또 그리스어로 선은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것', 악은 '자기에게 도음이 되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무엇이 선이며 악인가 하는 판단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며, 현명함은 이런 판단을 적확하게 내릴 수 있게 하는데, 현명해지려면 지식보다는 많은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저가가 생각하는 연장자의 역할은 젊은 사람들에게 지식보다는 지혜를 전승하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타자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인생을 살지 않는다면, 타자도 내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므로 타자에 대한 요구와 기대를 단념하는 것이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가 된다. 당연히 화를 낼 필요도 없어진다.
타자를 있는 그래도 인정하고 공감하는 삶을 산다면 자신의 삶이 더 풍부해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5장에서는 내일 피어나는 꽃이 될지는 오늘 내가 결정하는 것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한다.
인간은 외부의 자극에 단순히 반응하는 존재(반응자)가 아니라 행위자이므로 어떤 행위를 할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p.224)
이후 어떻게 살아갈지 결정할 수 있는 지점에 인간의 존엄성이 있습니다.(p.257)
다른 모든 사람이 내 곁을 떠나는 일이 있어도, 내 속성이 바뀌어도, 나는 나이고 타자의 평가는 나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믿는 사람은 그 무엇도 두렵지 않습니다.(p.268)
나 자신을 잃지 않으면 어떤 생활도 고통스럽지 않다. 내가 나로 존재하면 무엇을 잃어도 아깝지 않다.(p.269)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다른 누구의 삶이 아닌 내 인생을 사는 것이야말로 해낼 수 없는 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중년의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