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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이 글은 계속 진행 중입니다)

  재개정 결정판. 삼정판이라는 단어보다 웬지 더 아련하다. 이제 김종건 선생님께서는 다시는 <율리시스>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재개정 '결정'판은 그 선언 인듯 하다.  애증어린 '율리시스'의 작업에 당신께서는 마침표를 찍겠다는.  나는 몇해 전 나온 <피네간의 경야> 이후 김종건 선생님의 행보가 정말 궁금했다. 조이스에 미쳐 한평생을 고스란히 바친 은퇴한 노교수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의 필생의 작업은 이제 끝나지 않았는가. 기껏해야 소품 격인 조이스의 편지나 비평문을 번역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도 남은 역할이 있다면 고목처럼 한국 조이스 학회의, 그러니까 영화판으로 이야기하자면 임권택 감독님 같은 큰 어른으로 남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 삼정판 혹은 재개정 결정판을 바라보며 전율과 숭고함에 사로잡힌다.  오래전 율리시스 강독회에서 선생님을 바로 옆에서 뵌 적이 있었다. 우연히도 나는 그 날 아침에서야 가블러판 새 책을 받았고 그래서 그 날 읽은 분량은 복사쪼가리로 들고 있었다. 슬쩍 슬쩍 곁눈질로 훔쳐 본 선생님의 책은 정말 닳아헤져 너덜너덜했고 손 때로 새까맸다. 아마 선생님께서도 방금 구입한 따끈따끈한 나의 매끈한 새 책을 보신 듯 하다. 다른 선생님들의 발표와 토론이 끝날 때까지 선생님은 단 한말씀도 하시지 않으셨다. 분명히 기억한다. 단 한마디도 하시지 않으셨다. 아마 젊은 선생님들의 활기넘친 토론에 당신의 작은 한마디라도 짐이 될 지 모른다는 깊은 배려의 발로일 것이다. (나이로 인한 역차별!!)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한 말씀 부탁하는 사회자의 이야기에 '많은 이론도 좋지만 우리 나라에서 지금 시급한 것은 <율리시스>의 올바른 번역'이라는 지극히 기본에 충실한 말씀으로 격려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번역.  한국에서 번역의 졸렬함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일전에 영미연에서 나온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는 번역판을 읽어서 안되는 이유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영어에 익숙치 않은 대한민국의 일반 독자들이 주요 영미문학 번역 작품을 읽고 감동 먹는 것은 대부분 두가지로 생각된다. 하나는 읽는 이의 뛰어난 감수성의 결과이고 또 하나는 의도된 착각이다.  그렇더라도 번역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한 길이다. 낮은 번역료에, 교수같은 경우 긴 시간을 투입한 것에 비해 평점에서는 논문 하나 쓰는 것만 못하거나 비등한 정도에 힘들이고 공들여 번역해 놓았더니 자기들도 번역은 안하면서 까대는 것에는 너도나도 앞장서는 당금의 비평문화에 '아주' 잘해야 가까스로 본전인 번역에 매력을 못느끼는 것도 분명한 현실이다. <워더링 하이츠>를 번역하신 유명숙 선생님께서는 <인생은 짧고 번역은 길다>라는 명언을 남긴 뒤 '다시는 번역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아쉬운 고별의 변으로 번역작업의 은퇴를 선언하셨다. 이런 척박하고 광팍한 현실에 그 누가 <율리시스>를 -< 해리포터>도 <반지의 제왕>도 아닌- 번역하겠다 나서겠는가. 돈 안되고 욕먹을 것이 뻔한 데 말이다. 사서하는 고생에서 쾌락을 즐기는 메저키스트가 아닌 이상에야.

 김종건 선생님의 <율리시스> 재개정 결정판을 보면 테니슨의 <율리시스>가 생각난다.  아직도 정신 못차린 율리시스가 늙어서도 주책맞게 제국주의적 야욕을 불태우며 동료들을 꼬셔 바다로 나가려 한다는 정치적인 견해도 가능하지만 대체적으로 이 시를 결코 멈추지 않는 도전정신을 그린 것으로 평가한다.  그 자신의 말대로 천재의 작품을 범재의 노력으로 쫓아간 숭고한 결정판이다. <춘향전> 이후의 <취화선> 이후의 다시 <천년학>으로 완숙해지는 임권택 감독님처럼 1968년 첫 번역 후 20년만의 개정판 <율리시즈> 를 내놓고 필생의 프로젝트 <피네간의 경야> 이후의 다시 전면 개정판인  <율리시스>로 귀환한  김종건 선생님도 멀쩡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조선, 중앙과 함께 혐오하는 신문이긴 하지만 <동아일보>의 리뷰를 보면(내가 못본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한겨레 오마이 경향에서는 왜 이 작품에 대한 리뷰가 없는 지 매우 이상하다.  선생님이 고려대라서 동아일보 쪽에서 관심을 더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든다. 어쨌든 이 기념비적 작품에 대한 미디어의 냉담함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  선생님 앞에는 <피네건의 경야>가 있다고 하니 <율리시스> 다음은 <피네간의 경야> 재개정판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김종건 교수님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잡설들이 길었다.  재개정 결정판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그렇다. 각자취향들은 다르겠지만 한국에서 영문학으로 밥드시거나 발가락 하나라도 담그고 계시는 분이 있으시면 집에 소장용으로라도 한권씩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 범우사판이였으면 내가 이렇게 건방떨지 않는다. 재개정 결정판은 전면개역이다. 어느 정도 손보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전면적으로 문체 자체를 손봤다. 그 결과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장점은 문장 자체의 군더더기를 없앰으로 인한 경쾌한 속도감과  뛰어난 가독성이다. 범우사판에서 느끼는 가장 큰 불만은 너무 자세하게 설명하려는 마음이 앞서서인지 글이 축축 늘어진다는 것이다.  안그래도 지루한 작품을 더욱 더 지루하게 느끼는데 크게 일조했다. 범우사판에서 김종건 선생님의 번역에 대한 느낌 엄청나게 성실하신 분이지만 엄청나게 언어에 대한 감각은 없군 이였다. 재개정 결정판을 보며 사죄드린다. 

 재개정 결정판에 대해 사람들은 이 번역이 <피네간의 경야>를 번역한 뒤에 나왔다는 것을 놓치고는 한다. 이것은 중요하다. <율리시스>에는 단어를 합쳐서 쓰는 조이스의 언어기술이 나온다. 당연히 사전을 찾아도 안나온다. 이 사람 왜 이럴까  졸린 눈을 껌뻑거리며 이를 갈며 머리 위로 김뿜어대며 합쳐진 단어를 따로 따로 쪼개 각자 찾아 의미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을 김종건 선생님은 재개정결정판에서는 <피네간의 경야>에서 단련된 한자조어라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사용해서 <율리시스>에 적용한다. 그런 뒤에 일반독자들의 까칠한 반응을 예상하신듯이 요즘 이너넷에서도 말만들어내는 것이 대세 라며 익숙해지면 즐거울 것이라 미리 응수하신다. 하긴 못할 것 무엇인가. 그게 불만이고 답답한 이는 자신이 더 나은 번역으로 청출어람 하면 될 일이다.

 이제 이 뒤에 붙을 나의 잡스런 쪼가리들은 이 기념비적 작품에 대한 질투와 존경 어린 수다다. (수다와 뒷담화는 나의 힘!)   

 

  <텔레마코스 에피소드 잡담>

  1. 개정판에서 잘못 제시했던 각주 7을 바로 잡음

  2. 38p 2. '사람을 부르는 길고 낮은(slow) 휘파람 소리를 불자'는 그냥 '느린'으로 놔두는 것이 좋음

  3. 39p 15. '그래 자네?'(Yes, my love)는 개정판과 삼정판 모두 '그래 자네'로 번역되었음. 하지만 작품에서 보이는 멀리건의 동성애적 제스츄어를 고려하면 '그래 자기?' 가 더 좋을 듯 싶음

 4. 40p 19. '바다는 앨지가 부르듯 그대로가 아니가'는 '아닌가'의 오자

 5. 40p 30. '누군가가 그녀를 죽었지'는 '죽였지'의 오자

6. 41p. 2. '멀리건이 말했다'는 '벅 멀리건이 말했다'의 누락

7. 43p 4~5. '벼룩을 제거하려는 이 개몸뚱이'(This dogsbody to rid of vermin)는 개정판의 '벼룩이 우글 거리는 개의 몸뚱이'를 바로잡음

8. 45p 6. '사각중정'(quadrangle)은 (개정판의 '네모난 뜰') 한자를 이용한 번역. 이번 삼정판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

9. 46p 9. '벌 멀리건'은 '벅 멀리건'의 오자

10. 50p 30~51p 1. '대관식에/ 대관식 날에!'(On coronation, Coronation day!)는 개정판의 '대관식에/대관식에/대관식의 축제일!'을 바로 잡음

11. 51p 15. '우리 숨막히겠어, 벅 멀리건이 말했다. 저 문 좀 열겠나. 자네?'(삼정판)는 '이거 질식하겠어. 하고 벅 멀리건이 말했다. 헤인즈 저 문 좀 열어주겠나, 자네?(개정판)에서 '헤인즈'의 누락. 원문은 'We'll be choked, Buck Mulligan said. Haines, open that door, will you?' 임. 누락은 있었지만 이 부분을 보면 삼정판의 번역이 개정판에 비해 단어 하나하나의 정확성을 더 보왔했음을 알 수 있음. 거기에 개정판에서 예외없이 보이는 인물들의 이야기 뒤에 붙어나오는 '~하고'를 삼정판에서는 삭제해서 원문의 맛을 더 살리고 아울러 읽으면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과 속도감을 느낄 수 있음. 이 점은 삼정판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

12. 53p 5. '늙은 (old) 그로건 할멈'은 개정판의 누락을 바로잡음

13. 54p 18. '멀리건이 말했다'는 개정판의 '벅 멀리건이 말했다'를 바로잡음

 14. 54p 23. '멀리건이 헤인즈에게'는 개정판의 '벅 멀리건이'를 바로 잡음

15. 55p 5. '시중드는 한 불멸의 비천한 모습(lowly form of an immortal serving)'은 개정판의 '시중드는 비천한 불사조의 모습'을 바로 잡음

16. 55p 11. '우리나라는 썪은 이빨과 썩은 창자로 득실거리지 않을꺼야'는 젊은 멀리건이 늙은 노파에게 말하는 것임으로 존칭을 쓰는 것이 자연스러움. '득실거리지 않을꺼에요' 정도.

17. 56p 9. '댁이 말하는 것이 프랑스 말인가요?'에서 sir가 누락. 개정판의 '당신이 말하는 게 프랑스 말인가요, 선생님?'이 맞음

18. 58.p 26. ' 벅 멀리건이 말했다, 그러자(then)'은 개정판의 누락을 바로 잡음

19. 60p 14~15. '그는 등 뒤에서 벅 멀리건이 무거운 목욕 타월을 가지고 고사리 또는(or) 풀 싹을 때려 꺾는 소리를 들었다'는 개정판의 ' 고사리와 풀의 갓 나온 줄기'를 바로 잡음.

20. 63p 3~6 '만일 누군가 나를 하느님으로 생각지 않는다면/ 내가 술을 빚더라도 공짜술을 마시지 못하리/ 그러나 물을 마셔야만 할지니 그리고 가라건데/ 만든 술도 분명히 다시 물이 되리라'는 개정판의 '만일 나를 하느님으로 생각지 않는 자는 내가 술을 빚을 때 마음대로 해야지 그리고 분명히 만든 술도 도로 물로 만들어 놓으리라'를 바로 잡음

21. 66 p 6. '그리고 셋째는, 스티븐이 말했다. 나에게 엉뚱한 짓을 요구하는 자야/ 이태리인이라? 헤인즈가 다시 말했다'는 개정판의 '그리고 세 번째로는, 하고 헤인즈가 다시 말했다'의 누락을 바로잡음. 특히 이 부분은 비평에서 많이 다루고 있는 부분이라 중요한 구절이였는데 범우사에서 기존의 3권에 별도로 한권으로 낸 주석본을 합치며 4권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누락되었지만 이번에 다시 바로잡혀 나옴. 개인적으로 이 삼정판에서 가장 만족하는 부분이기도 함. ^^

22. 66p 15. '우남 산끄땀 까톨리깜 에뜨 아뽀스똘리깜 에끌레지암'은 '에뜨(et) 우남 산끄땀 가톨리깜 에뜨 아뽀스똘리깜 에끌레지암'의 누락.

  (수다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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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독맨션 2집 - Salon De Musica
불독맨션 (Bulldog Mansion)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별 표가 있네요. 저는 사랑하는 대상을 별점으로 평가하는 예법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불독맨션 두번째 음반에 대해서 한마디만 하지요. 이런 음반을 걸작이라고 합니다.

불독맨션 2집 - Salon de Musica


대저 인간사 급한 사람이 우물 파는 법이다. 일전에 나온 언니네 이발관의 네번째 걸작 음반 '순간을 믿어요'에 보인 메스컴의 그윽한 관심에 비추어 이 여름 불독맨션이 2년만에 공개하는 두 번째 진검승부 ‘살 롱 데 뮤지카(Salon de Musica)’의 리뷰도 느긋하게 즐겨볼까 생각했는데 이거 웬걸.. 음반 나온지 거의 2주가 넘어가는데도 문화일보 조선일보를 제외하고 어디서도 다루지 않는 것 아닌가. 특히 조선일보는 언니네 이발관도 불독맨션도 신보가 발매되자 마자 발빠른 리뷰를 선보임으로써 문화쪽에서는 만만치 않은 감수성과 순발력을 동시에 과시했다. 한겨레와 경향... 분발하길 바란다.

그러니 급한 사람이 우물 팔 수 밖에. 다른 사람 입 쳐다보지 말고 내 패 먼저 열어보이는게 인간된 도리가 아닌가 싶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전작 Funk 가 난장정신으로 무장한, 그야말로 법도 질서도 없이 폭발적으로 질주하는 뜨거움으로 가득한 음반이였다면 이번 불독의 두번째 맨션은 한마디로 '철' 든 음반이다.

무대뽀로 스트레이트 하게 달려나가던 펑크 정신에서 우리 불독은 2년 동안 인생의 달콤쌉쌀시큼상큼 한 맛 모두 알아버린 아자씨들의 우수 젖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전작 Funk가 온몸을 활화산으로 만들었다면 이번 음반은 라틴의 열풍 속에 가슴을 적신다. 근자의 언니네 이발관 신작음반이 마디마디 감각적으로 훑고 지나간다면 불독맨션은 마디마디 넘실넘실 흘러 넘어간다.

전부 16트랙으로 구성된 이 음반도 좋은 음반이 흔히 그렇듯 어느 한 곳 허투른 곳이 없다. 달리 좋은 음반이라고 하는가. 그래서 좋은 음반이지. 뭐 당연한 이야기지만 음반은 유기적으로 구성된 하나의 생명체다. 축구에서도 스트라이커, 미드필더, 수비수, 골키퍼 등등 자기 몫들을 다해야 좋은 경기를 하듯 좋은 음반도 그렇다. 올스타전이 재미없고 소위 베스트 음반이 재미없는 건 다들 주연들이라서 조연을 엑스트라를 아무도 안하기 때문이다. 이래선 좋은 작품 요원하다. 불독맨션의 음반들은 싱글 개념이 아니라 음반 개념이다. 각자 적재적소에 위치해서 존재감을 빛낸다. 하나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이 음악이 흐른다.

오프닝 You'd Expected, But We Are...는 도입부부터 범상치 않은 둔중한 베이스 연주로 시작되어 드라마틱한 현악기의 울림으로 이번 음반 분위기를 결정한다. 곡 후반부에 아~아~아~ 마이크 마이크 하는 이한철의 소리가 들리면서 바로 이어지는 다음 곡 Life Is...는 비애감 가득하다. 성공했다는 친구 장례식에 다녀와 밤새 울었던 인생은 어디를 가도 힘들고 거칠다. 물어도 대답없는 인생. 삶은 그렇게 가는 법. 나이 서른 넘은 양반들의 라이프가 스패니쉬 기타에 실려 바람부는 거리로 신문지 처럼 흘러간다. 하지만 이어지는 "사랑은 구라파에서"는 브라스를 전진배치 시키면서 가사는 쿨하게 리듬은 화려하게 스윙감 가득한 흥겨움으로 분위기 반전한다. 우리의 체리보이.. 사랑에 실패하지만 가슴에 묻어버린다. 이 애이불비의 정신. 불독의 장난기는 하도 진지해서 면전에서 웃음짓기는 힘들지만 참 재밌다. 사랑은 왜 구라파며 체리보이는 또 왜 나오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왜 체리보이인지..흐흐흐.. 그런거 생각하지 마라. 그냥 가사의 결과 리듬을 즐기면 된다.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여름 철 휴가 떠나 비치 파라솔 있는 해변가에 누워있는 것 같이 나른하게 퍼지는 러브 발라드 '그녀 이야기'는 또 얼마나 감미롭게 귀를 어루어만지는가. 베네수엘라 디스코밴드인 ‘로스 아미고스 인비지블레스’의 곡을 리메이크한 ‘엘 디스코 아모르(El Disc o Amor)는 이번 음반 타이틀 곡이다. 공연때 이 곡을 맴버들이 방방 뛰면서 불렀다고 하는데 그 장면을 상상하면서 곡을 들어보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그러고 나면 작년 2003년 11월에 공개되었던 컴필레이션 음반 Funny Day? Funky Day! 에 수록되어 많은 반응을 얻었던 O' My Sole이 분위기를 살리고 살리고 이어간다. 이 곡은 이번 Salon de Musica의 색깔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남미의 열기로 가득한 O' My Sole은 '우! 아우! 우! 아우!' 하는 코러스도 신나고 '난 미쳐버릴꺼야~~난 날아버릴꺼야~~'하는 후렴구도 깜찍발랄하기 이를 때 없다. 도대체 이 가사를 이한철 아니면 누가 소화하겠는가. 가사가 우박처럼 정신없이 쏟아지는 와중에서도 스패니쉬 기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시침 뚝 떼고 묵묵히 자기 갈길 가고 활활 불타오르는 피아노는 전속력으로 요기조기를 오르락 내리락 분주하게 왔다갔다 맹활약을 펼친다. 거기에 트럼펫이 멋들어지게 한 번 제껴주고... 이런 감정을 한마디로.. 신난다..고들 한다. 저 푸른 하늘같은 환한 미소처럼 밝게 비춰주는 불독맨션의 청혼가 '좋아요'는 이 음반에서 가장 찬란하며 화사하다. 여름 아침 햇살이 빛나는 것처럼 아름답고 예쁘고 반짝이며 그래서 즐겁고 사과를 한 입 베어먹은 것 같은 달콤한 행복이 입 안 가득 고인다.

이쯤에서 잠시 쉬어가는 시간. 막간극처럼 Salon 'Bley' 의 기타 선율이 55초 동안 귀를 풀어주고 나면 이제 2부가 시작된다.


룸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야후백과사전에 따르면 쿠바 민속춤곡의 총칭. 노예로 팔려온 아프리카 흑인의 원시적 리듬에 바탕을 두고 19세기초 쿠바의 아프리카계 주민들 사이에서 시작된 댄스리듬이며 마라카스·봉고 등의 특수한 악기를 사용한 빠르고 활기찬 2/4박자가 특색이라고 한다. 이번 음반에서 가장 애절한 '잘가라 사랑아' 는 이 룸바리듬을 사용했다는데 빠르고 활기차기 보다는 우수에 젖어 있다. 하긴 사랑이 떠나가는 마당에 무슨 먹고 살일 났다고 빠르고 활기차겠는가. 어두운 bar에서 맥주 한 잔 앞에 두고 눈은 빨개져도 이 악물고 속으로 눈물 삼키는 남자가 연상된다. 그렇게 남자들은 우는 걸 못한다. 한번 펑펑 울면 시원할 텐데. 하지만 불독은 울지 않는다. 괜히 쿨한 척. 그러고 나면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겠다는 듯 기타가 비장하게 흐르고 보컬은 기타의 그것보다 훨씬 더 비장하게 흐느끼듯 분노하듯 굳게 다짐하듯 스피커를 때린다. 이런 이한철의 보컬 이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가. 거친 세상.. 사랑을 잃어버린 세상.. 사랑이 지겨운 세상...링에 갇혀버린 이 모든 세상에 "Lucha! Amigo!(싸워라! 친구여!)"라고 절규한다. 전례없이 랩까지 구사하는 이한철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두번 다시 재현할 수 없을 만큼 절박하다. 장난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Lucha! Amigo!는 Salon de Musica의 뜨거운 심장박동이다. 이어지는 차차차 리듬에 신나는 '명탐정 차차차'는 장난기 다분하다. 노래 제목도 재밌고 가사는 더욱 재밌다. 반드시 잡고야 말겠다고 투지를 불태우는 '멍' 탐정 차차차와 이를 가볍게 비웃는 괴도가 각자의 시점으로 이야기하는 내용인데 다음에 어찌될런지 기대된다.


연주곡 'Soul Drive'는 이어폰을 꼿고 온 신경을 집중해서 그 리듬을 온 몸으로 흠뻑 느끼면서 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곡이야말로 "불독맨션 2집 - Salon de Musica"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이다. 그 그루브감을 당신은 버텨 견디어 낼 자신이 있는가. 영혼을 통채로 날려버릴 듯 한치의 허술함도 용납치 않는 이 위대한 트랙을? 후반부 쥐어짜듯 외치는 'change your life'는 또한 그 자체로 얼마나 긴장감 넘치는가. 한마디로 죽인다. 정말 죽인다. 그런 뒤에 투명한 빗방울처럼 톡톡 튀는 기타와 넉넉한 이한철의 목소리가 포근한 Summer Rain이 후반부를 장식한다. 쓸쓸함이 느껴지는 그래서 간주중의 휘파람 소리가 더욱 가슴에 와닿는 소품같은 The Classic Story Of Bulldog Mansion은 이 음반의 실질적인 엔딩곡이다. 디저트처럼 달콤하며 깔끔한 Closing Time 에서 음반 작업 끝난 뒤의 하고싶은 바램을 가벼운 마음으로 풀어본다.그리고 아직 모자란 분을 위해서. El Disc o Amor가 라디오용으로 편집되어 앙콜.

불독맨션의 2집은 좋은 뮤지션이 그렇듯 자기 색깔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자기 스타일을 중언부언하는 나태의 죄악을 혹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 펑크로 집약되는 첫번째 음반과 라틴음악으로 집약되는 두번째 음반 사이를 이어주는 공통분모는 역시 불독맨션만의 독보적인 그루브 감이라 할 수 있다. 박자는 만들 수 있어도 리듬은 아무나 타지 못한다. 이번 여름 우리는 의심할 필요 없는 아주 좋은 음반을 만났다. 고로 훌륭한 뮤지션들이 자본주의에서 성공할 수 있게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을 이제 실천하는 것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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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상하게도 내게 그리스는 러시아와 겹쳐져서 읽힌다. 그러니까 영화에 있어서는 타르코프스키와 앙겔로폴로스가 겹치고, 소설에 있어서는 카잔차키스와 토스토예프스키가 겹치는 것이다. 아마도 앙겔로폴로스와 카잔차키스는 내가 그리스를 살펴보는 두 개의 창문일 것이다.그리고 다음. 이 두 명의 그리스인들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 시적 영감의 원천인 호메로스의 신화에 기대어 이야기를 풀어낸 바 있다. 앙겔로폴로스는 '율리시스의 시선'으로 카잔차키스는 '오딧세이'로. (율리시스는 문학에 있어서 꺼지지 않는 모티프이다. 이미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모더니즘의 최고봉으로 올라섰다......고 그런다. ^^)

그리스인 조르바는 역시 남성 화자의 입을 빌기 때문에 여성에 관한 관점은 내가 읽기에는 단지 성적 욕구의 대상, 그리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거기에 조르바의 어떤 변명을 고려한다고 치더라도 말이다.) 그것이 나를 무척이나 불편하게 만든다.그렇지만 그렇게만 읽고 끝내기에는 이 소설의 파워는 정말이지 대단하다. 마지막에 화자와 조르바가 모든 것이 끝장나고 난 최대의 절망후에 해변에서 양고기를 구으면서 함께 춤추는 장면은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날 정도이다.

조르바를 읽으면서 나는 카잔차키스가 니체와 베르그송에 경도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곤했다. (후기를 보니 역시 그랬다) 머 니체, 베르그송 하니까리 복잡한 거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니체와 베르그송은 하나의 아이콘이다. 치열한 생의 긍정이라는. (니체는 허무주의의 대명사 아니냐....라고 여쭙는 분이 계시다면 니체의 초인 사상을 어떻게 해명하실 건지 다시 친절하게 여쭙고 싶다. 니체에 있어 허무주의는 없음이 아니라 없음을 긍정하는 힘이다~~~~라고 들뢰즈가 말했던가? 가물가물~~~)

조르바가 감동적인 것은 지금 이곳에서의 삶에 대한 끝없는 애정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랬다. 춤과 산투리로 풀어내는 언어들 -이래서 예술은 위대한 것이여~~ 그리고 나는 아직도 학삐리의 티를 못벗어났는지 이 대사가 눈물이 찡하도록 와닿았다.두목 사람들 좀 그대로 놔둬요, 그 사람들 눈뜨게 해주려고 하지 말아요! 그래, 띄어 놓았다고 칩시다. 뭘보겠어요? 비참해요! 두목, 눈감은 놈은 감은대로 놔둬요. 꿈꾸게 내버려 두란 말이에요.

만일에 ..... 만일에 말이죠 만의 하나, 그사람들이 눈을 떴을 때, 당신이 지금의 암흑세계보다 더 나은 세계를 보여줄 수 있다면...... 보여줄 수 있나요? 나 역시 궁금하다. 우리모두가 다 같이 행복할 수 있는 세계가 말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야기 하지 않았던가. 유토피아가 없는 지도는 볼 필요가 없다고. 거기에는 가야할 곳이 없기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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