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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8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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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상품의 평점을 넣어달라는 미친 소리에 그레고리 잠자를 본 동생만큼이나 기겁을 하며, 놀란 마음에 형식적으로 하나 찍어본다. 도대체 어떤 조커 같은 친구 머리 속에서 책에 대한 평점을 넣으라는 생각이 나왔는지 참으로 그로테스크하며 아라베스크한 세상이다 하는 생각을 한다. 잠시 후 이게 이렇게 욱할 일인가 하고 조금 반성을 하다 생각하는 와중에 또 다시 볼케이노와 같은 순수하고 뜨거운 열이 솟구친다. 지금 체온을 재면 건물 안으로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고 격리조치될 것이니 스스로에게 코끼리 잡는 마취총을 훅하고 쏘아본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우리 시대의 매우 뛰어나고, 훌륭한 작가이며 <The remains of the day>가 걸작이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읽는 것은 송은경 선생님이 번역한 <남아있는 나날>이라는 것이다. 번역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한국어도 제대로 못해 어버버대는 나의 입장에서 이 걸작을 접하게 해준 역자의 노고에 대해서 그저 무한한 감사함과 칭송 만이 있을 뿐이다. 


다만 민음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있다. <남아있는 나날>은 기존의 민음사 모던 클래식 시리즈로 2009년에는 65번으로, 그리고 불과 1년만에 2010년에는 34번으로 (그 사이 21권은 모던 클래식에서 안모던한 클래식으로 상승한 것인지, 아니면 편집부가 생각해보니 모던하기는 하지만 클래식은 아니었던 것 같다든지, 이유는 알 수 없이 번호가 변경되었지만) 다시 출간된 바 있다. 


그리고 먼 과거도 아닌 올해 2021년 4월 9일 거의 10년 남짓하여 "전면적 번역 개정을 거쳐 새로운 디자인과 판형으로 출간"되었으며 불과 4개월이 지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8권으로 다시 출간하였다.


그동안 모던 클래식에서 이제는 정전의 반열로 모시겠다는 편집부의 평가와 의지에 대해서는 동의에 찬 박수를 힘껏 보내지만 이렇게 빨리 <남아있는 나날>을 한 해에 두 번이나 표지를 바꾸어 출간하게 된 어떤 필연적인 연유가 있는 것인지는 궁금해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4월 출간은 전면적 번역 개정이라는 당위성이 있으나 8월 출간은 어떤 당위성이 있는가?


 '이제 <남아있는 나날>이 세계문학전집의 식구가 되었어요' 라는 환영회의 의미인가?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 다만 4월 출간할 때 더 신중히 고려해서 8월에 한 번에 해결했다면 나같이 별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이렇게 키보드 두드려되는 블랙 컨슈머를 만나지는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애정어린 시비를 걸어본다. 다행히도 이 글은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나도 쓴 이후에는 안읽을 거라서..) 혼자 투덜거림으로 남게 되어 기쁘다.


나는 출판사 책 소개에는 번역에 대한 소개도 있었으면 한다. 왜냐하면 번역을 할 만한 책은 왠만하면 가치가 있는 책이기에 그 책이 훌륭하다는 것은 전제로 하고, 그것이 전달되는 도착어에 대해 소개를 해주는 것이 읽는 독자에게는 더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번역자의 번역만큼이나 편집도 수차례 거칠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을 출간하는 편집자의 이야기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말이 두서 없는데 출판사의 책 소개가 다소 아쉽다는 이야기이다. 원작에 대한 평가는 충분하니 이 번역서에 대한 가치와 의의도 소개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위에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은 것은 이 텍스트의 장점이 3000이라면 0.00001 정도 되는 아쉬움일 뿐,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에서 <남아있는 나날>을 만나게 되어 너무나도 즐겁다. 민음사 고마와요. 어려운 상황에서 너무나 좋은 책 내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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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정치적 읽기
테리 이글턴 지음, 김창호 옮김 / 민음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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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셰익스피어 정치적 읽기>는 1996년 같은 출판사에서 이미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로 출간된 바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 판본과 비교하여 왜 새로 나오게 되었는지가 궁금하다.영어로 읽는 것이 아닌 바에 책소개에서 번역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아쉽다. 어쨌든 고마운 마음이 우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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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인문과학을 하는 분들은 웬만하면 읽었으면 좋겠다고 나 또한 생각한다. 이번에 두 번째 개정판이 반가운 이유는 먼저 컬러 도판, 디자인의 새로움에서 기인할  것이다. 문자 텍스트 뿐 아니라 이미지 텍스트의 중요함은 두 말 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이런 좋은 책이 다시 나온다는 것은 두 손 번쩍 들어 환영할 일이나 출판사에서 홍보를 할 때 디자인 컬러 도판 외에 나같은 문자쟁이에게는 전판과 달리 어느 면에서 번역이 달라졌는지 또한 알려주면 훨씬 더 책 구입에 도움이 될 듯하다. 

 

컬러 도판만 보강했다는 건지 번역도 다시 손 봤다는 건지 봤다면 어느 정도인지를 살짝만이라도 함께 알려줬으면 좋을 텐데 하는 배부른 아쉬움이 드는 것도 솔직한 심사다.

 

어쨌든 이런 좋은 책이 다시 새 옷을 입고 나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출판사에 넙죽 감사 드린다.

(개인적으로 책에 별점 먹이는 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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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세 - 독창회 I 1981-1999 (2CD)
이문세 노래 / 비타민엔터테인먼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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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문세. 라는 이름은 1980년대에 청춘을 보냈던 사람이라면 특히 남다른 애틋함이 있다. 주류에는 가왕 조용필을 필두로 전영록, 이용, 이선희가, 언더그라운드에서는 들국화 김현식 어떤 날 등이 서로의 영토를 침범치 아니한 백가 쟁명의 시대였지만 이문세는 주류와 언더그라운드를 넘나드는 모습이 있었다.  물론 인맥의 폭넓음이 음악성의 폭넓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문세에게는 영혼의 친구 이영훈이 있었고 그들이 만들어낸 성과들은 80년대 한국대중음악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고 평가해도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 

 이문세의 독창회 라이브는 라이브에서 이문세가 얼마나 능수능란한 아티스트인지 유감없이 보여준다. 많은 가수들이 샤우트로 관중들과 기를 주고 받는 것과 비교할 때 이문세가 관객들과 주고받는 스캣의 편안함과 유려함은 정말 돋보인다. <저 햇살 속의 먼 여행>이 기억에 남는 이유다. 뿐 아니라 재지하게 편곡한 <난 아직 모르잖아요>라든지 하이라이트로 작열하는 <붉은 노을> 이소라와 호흡을 맞춘 <이별 이야기> 보너스 트랙인 <그대>에 콘서트 대미를 장식하는 발라드 대곡 <그녀의 웃음소리 뿐>등 독창회 라이브는 깔끔한 편곡과 연주로 이어지는 완벽한 라인업이다.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휘파람>이 빠진 것이다.)   

 명반들이 거의 다 품절 및 절판이라 아쉬움이 많다. <불독맨션>, <이적 2집>, 전설적인 <우리동네 사람들>(구하고 싶어 미치겠다..한국100대 명반에서도 이 음반이 외면당한 것이 많이 유감이다. 우위를 논하는 것이 어리석지만 비슷한 스타일의 <낯선 사람들> 보다는 좀 더 농익은 음반이라고 생각한다) 등등 음반을 구하기가 힘들어지는데 좀 생각을 해봤으면 싶다.  

 그런 면에서 이 이문세라는 걸출한 아티스트의 라이브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독창회>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 정말.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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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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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계속 진행 중입니다)

  재개정 결정판. 삼정판이라는 단어보다 웬지 더 아련하다. 이제 김종건 선생님께서는 다시는 <율리시스>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재개정 '결정'판은 그 선언 인듯 하다.  애증어린 '율리시스'의 작업에 당신께서는 마침표를 찍겠다는.  나는 몇해 전 나온 <피네간의 경야> 이후 김종건 선생님의 행보가 정말 궁금했다. 조이스에 미쳐 한평생을 고스란히 바친 은퇴한 노교수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의 필생의 작업은 이제 끝나지 않았는가. 기껏해야 소품 격인 조이스의 편지나 비평문을 번역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도 남은 역할이 있다면 고목처럼 한국 조이스 학회의, 그러니까 영화판으로 이야기하자면 임권택 감독님 같은 큰 어른으로 남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 삼정판 혹은 재개정 결정판을 바라보며 전율과 숭고함에 사로잡힌다.  오래전 율리시스 강독회에서 선생님을 바로 옆에서 뵌 적이 있었다. 우연히도 나는 그 날 아침에서야 가블러판 새 책을 받았고 그래서 그 날 읽은 분량은 복사쪼가리로 들고 있었다. 슬쩍 슬쩍 곁눈질로 훔쳐 본 선생님의 책은 정말 닳아헤져 너덜너덜했고 손 때로 새까맸다. 아마 선생님께서도 방금 구입한 따끈따끈한 나의 매끈한 새 책을 보신 듯 하다. 다른 선생님들의 발표와 토론이 끝날 때까지 선생님은 단 한말씀도 하시지 않으셨다. 분명히 기억한다. 단 한마디도 하시지 않으셨다. 아마 젊은 선생님들의 활기넘친 토론에 당신의 작은 한마디라도 짐이 될 지 모른다는 깊은 배려의 발로일 것이다. (나이로 인한 역차별!!)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한 말씀 부탁하는 사회자의 이야기에 '많은 이론도 좋지만 우리 나라에서 지금 시급한 것은 <율리시스>의 올바른 번역'이라는 지극히 기본에 충실한 말씀으로 격려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번역.  한국에서 번역의 졸렬함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일전에 영미연에서 나온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는 번역판을 읽어서 안되는 이유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영어에 익숙치 않은 대한민국의 일반 독자들이 주요 영미문학 번역 작품을 읽고 감동 먹는 것은 대부분 두가지로 생각된다. 하나는 읽는 이의 뛰어난 감수성의 결과이고 또 하나는 의도된 착각이다.  그렇더라도 번역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한 길이다. 낮은 번역료에, 교수같은 경우 긴 시간을 투입한 것에 비해 평점에서는 논문 하나 쓰는 것만 못하거나 비등한 정도에 힘들이고 공들여 번역해 놓았더니 자기들도 번역은 안하면서 까대는 것에는 너도나도 앞장서는 당금의 비평문화에 '아주' 잘해야 가까스로 본전인 번역에 매력을 못느끼는 것도 분명한 현실이다. <워더링 하이츠>를 번역하신 유명숙 선생님께서는 <인생은 짧고 번역은 길다>라는 명언을 남긴 뒤 '다시는 번역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아쉬운 고별의 변으로 번역작업의 은퇴를 선언하셨다. 이런 척박하고 광팍한 현실에 그 누가 <율리시스>를 -< 해리포터>도 <반지의 제왕>도 아닌- 번역하겠다 나서겠는가. 돈 안되고 욕먹을 것이 뻔한 데 말이다. 사서하는 고생에서 쾌락을 즐기는 메저키스트가 아닌 이상에야.

 김종건 선생님의 <율리시스> 재개정 결정판을 보면 테니슨의 <율리시스>가 생각난다.  아직도 정신 못차린 율리시스가 늙어서도 주책맞게 제국주의적 야욕을 불태우며 동료들을 꼬셔 바다로 나가려 한다는 정치적인 견해도 가능하지만 대체적으로 이 시를 결코 멈추지 않는 도전정신을 그린 것으로 평가한다.  그 자신의 말대로 천재의 작품을 범재의 노력으로 쫓아간 숭고한 결정판이다. <춘향전> 이후의 <취화선> 이후의 다시 <천년학>으로 완숙해지는 임권택 감독님처럼 1968년 첫 번역 후 20년만의 개정판 <율리시즈> 를 내놓고 필생의 프로젝트 <피네간의 경야> 이후의 다시 전면 개정판인  <율리시스>로 귀환한  김종건 선생님도 멀쩡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조선, 중앙과 함께 혐오하는 신문이긴 하지만 <동아일보>의 리뷰를 보면(내가 못본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한겨레 오마이 경향에서는 왜 이 작품에 대한 리뷰가 없는 지 매우 이상하다.  선생님이 고려대라서 동아일보 쪽에서 관심을 더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든다. 어쨌든 이 기념비적 작품에 대한 미디어의 냉담함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  선생님 앞에는 <피네건의 경야>가 있다고 하니 <율리시스> 다음은 <피네간의 경야> 재개정판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김종건 교수님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잡설들이 길었다.  재개정 결정판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그렇다. 각자취향들은 다르겠지만 한국에서 영문학으로 밥드시거나 발가락 하나라도 담그고 계시는 분이 있으시면 집에 소장용으로라도 한권씩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 범우사판이였으면 내가 이렇게 건방떨지 않는다. 재개정 결정판은 전면개역이다. 어느 정도 손보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전면적으로 문체 자체를 손봤다. 그 결과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장점은 문장 자체의 군더더기를 없앰으로 인한 경쾌한 속도감과  뛰어난 가독성이다. 범우사판에서 느끼는 가장 큰 불만은 너무 자세하게 설명하려는 마음이 앞서서인지 글이 축축 늘어진다는 것이다.  안그래도 지루한 작품을 더욱 더 지루하게 느끼는데 크게 일조했다. 범우사판에서 김종건 선생님의 번역에 대한 느낌 엄청나게 성실하신 분이지만 엄청나게 언어에 대한 감각은 없군 이였다. 재개정 결정판을 보며 사죄드린다. 

 재개정 결정판에 대해 사람들은 이 번역이 <피네간의 경야>를 번역한 뒤에 나왔다는 것을 놓치고는 한다. 이것은 중요하다. <율리시스>에는 단어를 합쳐서 쓰는 조이스의 언어기술이 나온다. 당연히 사전을 찾아도 안나온다. 이 사람 왜 이럴까  졸린 눈을 껌뻑거리며 이를 갈며 머리 위로 김뿜어대며 합쳐진 단어를 따로 따로 쪼개 각자 찾아 의미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을 김종건 선생님은 재개정결정판에서는 <피네간의 경야>에서 단련된 한자조어라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사용해서 <율리시스>에 적용한다. 그런 뒤에 일반독자들의 까칠한 반응을 예상하신듯이 요즘 이너넷에서도 말만들어내는 것이 대세 라며 익숙해지면 즐거울 것이라 미리 응수하신다. 하긴 못할 것 무엇인가. 그게 불만이고 답답한 이는 자신이 더 나은 번역으로 청출어람 하면 될 일이다.

 이제 이 뒤에 붙을 나의 잡스런 쪼가리들은 이 기념비적 작품에 대한 질투와 존경 어린 수다다. (수다와 뒷담화는 나의 힘!)   

 

  <텔레마코스 에피소드 잡담>

  1. 개정판에서 잘못 제시했던 각주 7을 바로 잡음

  2. 38p 2. '사람을 부르는 길고 낮은(slow) 휘파람 소리를 불자'는 그냥 '느린'으로 놔두는 것이 좋음

  3. 39p 15. '그래 자네?'(Yes, my love)는 개정판과 삼정판 모두 '그래 자네'로 번역되었음. 하지만 작품에서 보이는 멀리건의 동성애적 제스츄어를 고려하면 '그래 자기?' 가 더 좋을 듯 싶음

 4. 40p 19. '바다는 앨지가 부르듯 그대로가 아니가'는 '아닌가'의 오자

 5. 40p 30. '누군가가 그녀를 죽었지'는 '죽였지'의 오자

6. 41p. 2. '멀리건이 말했다'는 '벅 멀리건이 말했다'의 누락

7. 43p 4~5. '벼룩을 제거하려는 이 개몸뚱이'(This dogsbody to rid of vermin)는 개정판의 '벼룩이 우글 거리는 개의 몸뚱이'를 바로잡음

8. 45p 6. '사각중정'(quadrangle)은 (개정판의 '네모난 뜰') 한자를 이용한 번역. 이번 삼정판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

9. 46p 9. '벌 멀리건'은 '벅 멀리건'의 오자

10. 50p 30~51p 1. '대관식에/ 대관식 날에!'(On coronation, Coronation day!)는 개정판의 '대관식에/대관식에/대관식의 축제일!'을 바로 잡음

11. 51p 15. '우리 숨막히겠어, 벅 멀리건이 말했다. 저 문 좀 열겠나. 자네?'(삼정판)는 '이거 질식하겠어. 하고 벅 멀리건이 말했다. 헤인즈 저 문 좀 열어주겠나, 자네?(개정판)에서 '헤인즈'의 누락. 원문은 'We'll be choked, Buck Mulligan said. Haines, open that door, will you?' 임. 누락은 있었지만 이 부분을 보면 삼정판의 번역이 개정판에 비해 단어 하나하나의 정확성을 더 보왔했음을 알 수 있음. 거기에 개정판에서 예외없이 보이는 인물들의 이야기 뒤에 붙어나오는 '~하고'를 삼정판에서는 삭제해서 원문의 맛을 더 살리고 아울러 읽으면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과 속도감을 느낄 수 있음. 이 점은 삼정판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

12. 53p 5. '늙은 (old) 그로건 할멈'은 개정판의 누락을 바로잡음

13. 54p 18. '멀리건이 말했다'는 개정판의 '벅 멀리건이 말했다'를 바로잡음

 14. 54p 23. '멀리건이 헤인즈에게'는 개정판의 '벅 멀리건이'를 바로 잡음

15. 55p 5. '시중드는 한 불멸의 비천한 모습(lowly form of an immortal serving)'은 개정판의 '시중드는 비천한 불사조의 모습'을 바로 잡음

16. 55p 11. '우리나라는 썪은 이빨과 썩은 창자로 득실거리지 않을꺼야'는 젊은 멀리건이 늙은 노파에게 말하는 것임으로 존칭을 쓰는 것이 자연스러움. '득실거리지 않을꺼에요' 정도.

17. 56p 9. '댁이 말하는 것이 프랑스 말인가요?'에서 sir가 누락. 개정판의 '당신이 말하는 게 프랑스 말인가요, 선생님?'이 맞음

18. 58.p 26. ' 벅 멀리건이 말했다, 그러자(then)'은 개정판의 누락을 바로 잡음

19. 60p 14~15. '그는 등 뒤에서 벅 멀리건이 무거운 목욕 타월을 가지고 고사리 또는(or) 풀 싹을 때려 꺾는 소리를 들었다'는 개정판의 ' 고사리와 풀의 갓 나온 줄기'를 바로 잡음.

20. 63p 3~6 '만일 누군가 나를 하느님으로 생각지 않는다면/ 내가 술을 빚더라도 공짜술을 마시지 못하리/ 그러나 물을 마셔야만 할지니 그리고 가라건데/ 만든 술도 분명히 다시 물이 되리라'는 개정판의 '만일 나를 하느님으로 생각지 않는 자는 내가 술을 빚을 때 마음대로 해야지 그리고 분명히 만든 술도 도로 물로 만들어 놓으리라'를 바로 잡음

21. 66 p 6. '그리고 셋째는, 스티븐이 말했다. 나에게 엉뚱한 짓을 요구하는 자야/ 이태리인이라? 헤인즈가 다시 말했다'는 개정판의 '그리고 세 번째로는, 하고 헤인즈가 다시 말했다'의 누락을 바로잡음. 특히 이 부분은 비평에서 많이 다루고 있는 부분이라 중요한 구절이였는데 범우사에서 기존의 3권에 별도로 한권으로 낸 주석본을 합치며 4권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누락되었지만 이번에 다시 바로잡혀 나옴. 개인적으로 이 삼정판에서 가장 만족하는 부분이기도 함. ^^

22. 66p 15. '우남 산끄땀 까톨리깜 에뜨 아뽀스똘리깜 에끌레지암'은 '에뜨(et) 우남 산끄땀 가톨리깜 에뜨 아뽀스똘리깜 에끌레지암'의 누락.

  (수다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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