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독맨션 2집 - Salon De Musica
불독맨션 (Bulldog Mansion)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별 표가 있네요. 저는 사랑하는 대상을 별점으로 평가하는 예법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불독맨션 두번째 음반에 대해서 한마디만 하지요. 이런 음반을 걸작이라고 합니다.

불독맨션 2집 - Salon de Musica


대저 인간사 급한 사람이 우물 파는 법이다. 일전에 나온 언니네 이발관의 네번째 걸작 음반 '순간을 믿어요'에 보인 메스컴의 그윽한 관심에 비추어 이 여름 불독맨션이 2년만에 공개하는 두 번째 진검승부 ‘살 롱 데 뮤지카(Salon de Musica)’의 리뷰도 느긋하게 즐겨볼까 생각했는데 이거 웬걸.. 음반 나온지 거의 2주가 넘어가는데도 문화일보 조선일보를 제외하고 어디서도 다루지 않는 것 아닌가. 특히 조선일보는 언니네 이발관도 불독맨션도 신보가 발매되자 마자 발빠른 리뷰를 선보임으로써 문화쪽에서는 만만치 않은 감수성과 순발력을 동시에 과시했다. 한겨레와 경향... 분발하길 바란다.

그러니 급한 사람이 우물 팔 수 밖에. 다른 사람 입 쳐다보지 말고 내 패 먼저 열어보이는게 인간된 도리가 아닌가 싶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전작 Funk 가 난장정신으로 무장한, 그야말로 법도 질서도 없이 폭발적으로 질주하는 뜨거움으로 가득한 음반이였다면 이번 불독의 두번째 맨션은 한마디로 '철' 든 음반이다.

무대뽀로 스트레이트 하게 달려나가던 펑크 정신에서 우리 불독은 2년 동안 인생의 달콤쌉쌀시큼상큼 한 맛 모두 알아버린 아자씨들의 우수 젖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전작 Funk가 온몸을 활화산으로 만들었다면 이번 음반은 라틴의 열풍 속에 가슴을 적신다. 근자의 언니네 이발관 신작음반이 마디마디 감각적으로 훑고 지나간다면 불독맨션은 마디마디 넘실넘실 흘러 넘어간다.

전부 16트랙으로 구성된 이 음반도 좋은 음반이 흔히 그렇듯 어느 한 곳 허투른 곳이 없다. 달리 좋은 음반이라고 하는가. 그래서 좋은 음반이지. 뭐 당연한 이야기지만 음반은 유기적으로 구성된 하나의 생명체다. 축구에서도 스트라이커, 미드필더, 수비수, 골키퍼 등등 자기 몫들을 다해야 좋은 경기를 하듯 좋은 음반도 그렇다. 올스타전이 재미없고 소위 베스트 음반이 재미없는 건 다들 주연들이라서 조연을 엑스트라를 아무도 안하기 때문이다. 이래선 좋은 작품 요원하다. 불독맨션의 음반들은 싱글 개념이 아니라 음반 개념이다. 각자 적재적소에 위치해서 존재감을 빛낸다. 하나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이 음악이 흐른다.

오프닝 You'd Expected, But We Are...는 도입부부터 범상치 않은 둔중한 베이스 연주로 시작되어 드라마틱한 현악기의 울림으로 이번 음반 분위기를 결정한다. 곡 후반부에 아~아~아~ 마이크 마이크 하는 이한철의 소리가 들리면서 바로 이어지는 다음 곡 Life Is...는 비애감 가득하다. 성공했다는 친구 장례식에 다녀와 밤새 울었던 인생은 어디를 가도 힘들고 거칠다. 물어도 대답없는 인생. 삶은 그렇게 가는 법. 나이 서른 넘은 양반들의 라이프가 스패니쉬 기타에 실려 바람부는 거리로 신문지 처럼 흘러간다. 하지만 이어지는 "사랑은 구라파에서"는 브라스를 전진배치 시키면서 가사는 쿨하게 리듬은 화려하게 스윙감 가득한 흥겨움으로 분위기 반전한다. 우리의 체리보이.. 사랑에 실패하지만 가슴에 묻어버린다. 이 애이불비의 정신. 불독의 장난기는 하도 진지해서 면전에서 웃음짓기는 힘들지만 참 재밌다. 사랑은 왜 구라파며 체리보이는 또 왜 나오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왜 체리보이인지..흐흐흐.. 그런거 생각하지 마라. 그냥 가사의 결과 리듬을 즐기면 된다.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여름 철 휴가 떠나 비치 파라솔 있는 해변가에 누워있는 것 같이 나른하게 퍼지는 러브 발라드 '그녀 이야기'는 또 얼마나 감미롭게 귀를 어루어만지는가. 베네수엘라 디스코밴드인 ‘로스 아미고스 인비지블레스’의 곡을 리메이크한 ‘엘 디스코 아모르(El Disc o Amor)는 이번 음반 타이틀 곡이다. 공연때 이 곡을 맴버들이 방방 뛰면서 불렀다고 하는데 그 장면을 상상하면서 곡을 들어보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그러고 나면 작년 2003년 11월에 공개되었던 컴필레이션 음반 Funny Day? Funky Day! 에 수록되어 많은 반응을 얻었던 O' My Sole이 분위기를 살리고 살리고 이어간다. 이 곡은 이번 Salon de Musica의 색깔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남미의 열기로 가득한 O' My Sole은 '우! 아우! 우! 아우!' 하는 코러스도 신나고 '난 미쳐버릴꺼야~~난 날아버릴꺼야~~'하는 후렴구도 깜찍발랄하기 이를 때 없다. 도대체 이 가사를 이한철 아니면 누가 소화하겠는가. 가사가 우박처럼 정신없이 쏟아지는 와중에서도 스패니쉬 기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시침 뚝 떼고 묵묵히 자기 갈길 가고 활활 불타오르는 피아노는 전속력으로 요기조기를 오르락 내리락 분주하게 왔다갔다 맹활약을 펼친다. 거기에 트럼펫이 멋들어지게 한 번 제껴주고... 이런 감정을 한마디로.. 신난다..고들 한다. 저 푸른 하늘같은 환한 미소처럼 밝게 비춰주는 불독맨션의 청혼가 '좋아요'는 이 음반에서 가장 찬란하며 화사하다. 여름 아침 햇살이 빛나는 것처럼 아름답고 예쁘고 반짝이며 그래서 즐겁고 사과를 한 입 베어먹은 것 같은 달콤한 행복이 입 안 가득 고인다.

이쯤에서 잠시 쉬어가는 시간. 막간극처럼 Salon 'Bley' 의 기타 선율이 55초 동안 귀를 풀어주고 나면 이제 2부가 시작된다.


룸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야후백과사전에 따르면 쿠바 민속춤곡의 총칭. 노예로 팔려온 아프리카 흑인의 원시적 리듬에 바탕을 두고 19세기초 쿠바의 아프리카계 주민들 사이에서 시작된 댄스리듬이며 마라카스·봉고 등의 특수한 악기를 사용한 빠르고 활기찬 2/4박자가 특색이라고 한다. 이번 음반에서 가장 애절한 '잘가라 사랑아' 는 이 룸바리듬을 사용했다는데 빠르고 활기차기 보다는 우수에 젖어 있다. 하긴 사랑이 떠나가는 마당에 무슨 먹고 살일 났다고 빠르고 활기차겠는가. 어두운 bar에서 맥주 한 잔 앞에 두고 눈은 빨개져도 이 악물고 속으로 눈물 삼키는 남자가 연상된다. 그렇게 남자들은 우는 걸 못한다. 한번 펑펑 울면 시원할 텐데. 하지만 불독은 울지 않는다. 괜히 쿨한 척. 그러고 나면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겠다는 듯 기타가 비장하게 흐르고 보컬은 기타의 그것보다 훨씬 더 비장하게 흐느끼듯 분노하듯 굳게 다짐하듯 스피커를 때린다. 이런 이한철의 보컬 이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가. 거친 세상.. 사랑을 잃어버린 세상.. 사랑이 지겨운 세상...링에 갇혀버린 이 모든 세상에 "Lucha! Amigo!(싸워라! 친구여!)"라고 절규한다. 전례없이 랩까지 구사하는 이한철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두번 다시 재현할 수 없을 만큼 절박하다. 장난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Lucha! Amigo!는 Salon de Musica의 뜨거운 심장박동이다. 이어지는 차차차 리듬에 신나는 '명탐정 차차차'는 장난기 다분하다. 노래 제목도 재밌고 가사는 더욱 재밌다. 반드시 잡고야 말겠다고 투지를 불태우는 '멍' 탐정 차차차와 이를 가볍게 비웃는 괴도가 각자의 시점으로 이야기하는 내용인데 다음에 어찌될런지 기대된다.


연주곡 'Soul Drive'는 이어폰을 꼿고 온 신경을 집중해서 그 리듬을 온 몸으로 흠뻑 느끼면서 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곡이야말로 "불독맨션 2집 - Salon de Musica"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이다. 그 그루브감을 당신은 버텨 견디어 낼 자신이 있는가. 영혼을 통채로 날려버릴 듯 한치의 허술함도 용납치 않는 이 위대한 트랙을? 후반부 쥐어짜듯 외치는 'change your life'는 또한 그 자체로 얼마나 긴장감 넘치는가. 한마디로 죽인다. 정말 죽인다. 그런 뒤에 투명한 빗방울처럼 톡톡 튀는 기타와 넉넉한 이한철의 목소리가 포근한 Summer Rain이 후반부를 장식한다. 쓸쓸함이 느껴지는 그래서 간주중의 휘파람 소리가 더욱 가슴에 와닿는 소품같은 The Classic Story Of Bulldog Mansion은 이 음반의 실질적인 엔딩곡이다. 디저트처럼 달콤하며 깔끔한 Closing Time 에서 음반 작업 끝난 뒤의 하고싶은 바램을 가벼운 마음으로 풀어본다.그리고 아직 모자란 분을 위해서. El Disc o Amor가 라디오용으로 편집되어 앙콜.

불독맨션의 2집은 좋은 뮤지션이 그렇듯 자기 색깔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자기 스타일을 중언부언하는 나태의 죄악을 혹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 펑크로 집약되는 첫번째 음반과 라틴음악으로 집약되는 두번째 음반 사이를 이어주는 공통분모는 역시 불독맨션만의 독보적인 그루브 감이라 할 수 있다. 박자는 만들 수 있어도 리듬은 아무나 타지 못한다. 이번 여름 우리는 의심할 필요 없는 아주 좋은 음반을 만났다. 고로 훌륭한 뮤지션들이 자본주의에서 성공할 수 있게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을 이제 실천하는 것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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