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모으는 것 못지않게 '잘' 쓰는 것도 중요하다
저자의 전작인 《돈의 심리학》은 몇 번이나 재독했을 만큼 높게 평가하는 책이다. 비유하자면 투자 분야의 '도덕 교과서'랄까. 투자자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어, 주기적으로 읽으며 마음을 다잡곤 한다.
이번에 읽은 《돈의 방정식》은 원제(The Art of Spending Money)에 걸맞게 돈을 모으는 방법이 아닌, '의미 있게 돈을 쓰는 기술'을 이야기한다. 돈은 모으기가 어렵지 쓰는 데 무슨 기술이 필요하냐며 의아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로또 당첨자나 젊은 나이에 억만장자가 된 스포츠 스타들이 몇 년 만에 파산했다는 이야기는 흔히 들려온다. 막대한 부를 거머쥔 이들이 왜 그토록 빠르게 몰락하는 걸까?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해 깊이 있는 해답을 제시한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저자의 핵심 주장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말고,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곳에 소비하라."
남들의 시선 대신, 내면의 기준을 따르는 삶
우리가 얼마나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잣대에는 '내면적 기준'과 '외면적 기준' 두 가지가 있다. 전자는 스스로 얼마나 만족하는지 측정하는 기준이고, 후자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평가하는 기준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타인의 시선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삶의 중심을 외면적 기준에 두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인생이 고달파진다.
물론 좋은 물건이 가진 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단, 물건의 가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즉,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효용성'을 위한 소비인가, 아니면 남들에게 내 위치를 과시하기 위한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기 위한 소비인가의 차이다. 남들의 시선을 좇지 않고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내가 가장 잘하는 일과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책에서는 남들의 겉모습과 내 내면을 비교하며 타인의 소비 기준을 맹목적으로 쫓는 현대인의 태도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저자는 "누군가는 당신보다 먼저 부자가 되기 마련이다. 그 자체는 비극이 아니다. 남이 자기보다 더 빨리 돈을 번다는 사실을 신경 쓰는 것이 비극이다"라고 일침을 가한다.
실제로 나는 자동차나 시계, 보석, 값비싼 술 같은 물질적인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여기저기 찌그러진 20년 된 자동차는 여전히 씽씽 잘 굴러가고, 손목시계는 무게감만 느껴져 아예 차지 않는다. 내 눈에는 다이아몬드나 큐빅이나 똑같아 보일 뿐이다. 대신 나는 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 새로운 경험을 쌓는 일을 정말 좋아한다. 그런 곳에 쓰는 돈은 거의 아깝지 않다. 남들의 시선이 아닌, 내가 진짜 행복해지는 곳에 돈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가 아니라, 내가 쌓아 올린 가치를 자랑하라
책에서는 소비를 자랑하기보다 자신이 스스로 쌓아 올린 가치를 자랑하라고 말한다. 나에게 대입해 보면 오랫동안 연습해 온 피아노 연주, 치열하게 해 온 공부, 그리고 차곡차곡 누적된 가족 여행의 사진들이 이에 해당한다. 흔히 사람들은 명품을 가진 '나'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그들은 명품 그 자체를 바라볼 뿐이다. 내가 무엇을 샀는지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해 왔는지가 진짜 나의 가치를 증명해 준다.
인생의 가장 훌륭한 조언은 바로 "미래에 후회할 일을 줄이라"는 것이다. 오늘을 충분히 즐기면서 동시에 미래에 투자하는 가장 최고의 방법은 바로 '좋은 추억'을 쌓는 것이다. 단, 좋은 추억을 만드는 데 꼭 큰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언젠가 아이와 함께 해외 호캉스를 떠나 비싸고 좋은 곳을 잔뜩 데려갔던 지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중에 아이에게 가장 좋았던 순간을 물어보니, 그저 호텔 물놀이장에서 놀았던 게 제일 재미있었다고 답했단다. 결국 무작정 아끼기만 하는 자린고비도, 대책 없이 쓰기만 하는 욜로(YOLO)도 정답은 아니다. 미래의 내가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내 곁의 소중한 이들과 소박하지만 확실한 추억을 나누는 것. 그것이 진짜 인생을 잘 저축하는 방법이다.
적당한 결핍과 지우기(소거법)가 주는 행복
좋은 삶이란 필요한 것을 모두 누리고, 원하는 것은 '일부만' 소유하는 삶이다. 갖고 싶은 것을 손가락 하나로 모두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떤 것에도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임을 예로 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돈을 주고 최고급 장비를 바로 사버리면(현질), 그 장비를 얻기 위해 과정을 즐기며 느끼던 재미와 기대감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약간의 결핍이 있어야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마침내 얻었을 때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단순한 삶이야말로 사치를 가장 값지게 즐기는 방법이기도 하다. 매일 단조롭고 단순한 삶을 살다가, 어쩌다 한 번씩 마주하는 사치와 일탈은 엄청난 짜릿함을 선물한다. 학창 시절이나 직장 생활을 할 때, 어쩌다 한 번씩 치는 '땡땡이'가 눈물이 핑 돌 만큼 짜릿했던 것처럼 말이다. 반대로 사치와 일탈이 매일같이 반복되는 삶은 아무런 자극도, 감흥도 주지 못한다.
내가 대학 전공을 고를 때의 경험이 떠오른다. 당시 어떤 전공을 고를지 고민하다가, 역으로 내가 선택했을 때 후회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분야부터 제외하기로 했다. 수학과 물리는 내 머리로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고, 생명공학이나 화학은 암기량이 너무 많다고 해서 탈락시켰다. 산업공학이나 산업디자인은 문과적인 느낌이 들어 또 제외했다. 그러고 나니 결국 몇 개 남지 않았고 선택은 훨씬 쉬워졌다. 안 될 것들을 지우면 진짜 정답이 보이는 소거법의 원리는 인생도, 소비도 마찬가지다.
원하는 것이 제로(0)인 삶, 이미 부유한 사람
지금 불행하다면 돈이 더 많아진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낮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요인은 손에 꼽힐 만큼 유한하지만,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은 끝이 없을 정도로 무한하기 때문이다. 까다로운 직장 상사, 연인과의 다툼, 아이의 말썽은 물론이고, 손가락에 박힌 작은 가시 하나조차도 우리를 단숨에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돈이 많아지면 무조건 행복해질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돈은 물질적 편리함을 줄 뿐, 일상의 무수한 불행까지 막아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진짜 행복은 통장 잔고를 채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불행들을 담담하게 다스리는 마음에 있다.
부를 측정하는 최고의 방법은 '가진 것'에서 '원하는 것'을 빼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어도 원하는 게 그보다 크다면 늘 가난할 수밖에 없고, 가진 게 적어도 원하는 게 없다면 이미 다 가진 것과 다름없다.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의 소중함을 먼저 발견하고 원하는 마음을 조금만 내려놓는다면, 우리는 지금 당장 마음으로 충분히 부유해질 수 있다. 행복한 부자는 더 많이 채우는 사람이 아니라, 덜 바랄 줄 아는 사람이다.
문득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지금 내가 원하는 건 뭘까?"신기하게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당장 가지고 싶은 물건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원하는 것'이 제로(0)에 가까운 나는, 이미 충분히 부유한 사람인 셈이다.
이 책은 남들과의 비교 속에서 길을 잃은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부의 기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울림을 준다. 다만, 구체적인 주식 투자법이나 자산 배분 같은 실전 가이드를 원하는 독자에게는 내용이 다소 고리타분하거나 철학적으로만 느껴질 수 있다는 아쉬움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숫자로 가득한 재테크 책들 사이에서, '지속 가능한 부의 태도'를 정립하고 싶은 이에게는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